# 트럼프는 그가 죽는 영상을 본 뒤 이렇게 조롱했다
2019년 10월27일 오전 9시(미국 워싱턴 시각). 미 정보부와 특수부대는 전날인 26일 알 바그다디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CIA는 몇 주전 그의 은신처 건물과 터널 구조를 파악한 뒤 8기의 헬기를 탄 델타포스를 보내 그곳을 폭격했다. 알 바그다디는 아내 둘, 자녀 셋과 함께 동굴로 도망갔다. 델타포스가 추격하자 그는 입고있던 자살폭탄 조끼로 자폭했다. 아내들 역시 그 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작동을 할 겨를도 없이 사살당했다.
미 정보요원들은 붕괴된 동굴에 깔린 한 시신 조각에서 DNA를 채취해 사전에 확보한 알 바그다디의 DNA와 대조한 결과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트럼프대통령은 알 바그다디의 최후를 담은 비디오를 봤다. 그는 “알 바그다디가 공포에 질린 채 겁쟁이처럼 울부짖다가 개처럼 죽었다”고 조롱했다.
그는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로 불렸는데 본명은 이브라힘 이븐 아와드 이븐 이브라힘 이븐 알리 이븐 무함마드 알 바드리 앗 사마라이다. 이름을 바꿔쓴 까닭은 본명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금기시하는 아랍권의 전통 때문이다. 아부 아크르는 진짜 이슬람의 칼리프였던 사람의 이름에서 땄고 알 바그다디는 ‘바그다드에서 온’이란 의미다. 즉 바그다드 출신의 지도자라는 얘기다. 알 바그다디의 고향은 사마라이지만 대학 공부를 했던 곳이 바그다드였기에 그렇게 붙였다. 그는 바그다드 이슬람 신학대학에서 철학 박사를 받았다. 이슬람 성직자였고 학자이기도 했다.
# 축구를 좋아하고 소심했던 소년
알 바그다디는 삼형제 중의 막내였다. 사마라에서 살던 어린 시절 그는 성격이 소심했고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고 한다. 자전거 타기를 즐겼고 축구광이기도 했다. 그들 삼형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큰 형인 샴시는 횡령 혐의로 이라크 감옥에 수감되어 있고, 둘째 형인 주마는 막내 동생의 경호원을 맡았다. 이번 공습에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다. 알 바그다디는 18세 때, 교수였던 하즈 이브라힘 알리 알바드리 할아버지의 권유로 바그다드 이슬람대(현재 국립 이라크대학교)에서 이슬람학 학사와 석사를 나온 뒤 율법(샤리아)학 박사까지 마쳤다. 29세 때인 2000년에 결혼을 했고, 2003년에 첫 아들을 낳았다.
그는 언제부터 이슬람 원리주의(살라피야)를 신봉하는 살라피스트가 되었을까. 할아버지였던 하즈 이브라힘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살라피야는 7세기 이전 그러니까 코란과 수나(일상생활 범례)를 왜곡되지 않은 채로 받아들인 초기 이슬람공동체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력 사용이 허용된다는 점이 문제다. 현대에 들어와서 이 사상은 급진 이슬람원리주의로 바뀌었고 2001년 9.11 미테러사건의 주역으로 주목받으면서 세계를 떨게하는 악의 근원으로 여겨지게 된다.
# 33세때 미군에 잡혔을 때 테러범 아닌 민간인 분류
알 바그다디는 바그다드에 살던 시절, 남녀가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결혼 장면을 보고, 신앙 모독이라고 외치며 춤을 추지 못하게 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런 그의 행위가 이미 오래 전부터 살라피스트였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살라피스트는 이슬람 수니파의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바그다드 셋집 주인이 알 바그다디에게 정당 가입을 권유했다. 정당 행위는 종교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알 바그다디가 청을 거절하자 이후 갈등이 생겨 그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었다.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뒤 그는 율법학 박사 자격으로 수니파 군사회의(무장단체)의 시리아위원회에서 활동한다.
2004년 그는 미군에게 체포되어 2월부터 12월까지 11개월간 이라크 남부 시아파 도시인 바스라에 있었던 부카 수용소에 수감된다. 당시 33세였던 알 바그다디는 미국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군사회의에 있었던 이슬람 학자로만 봤기 때문에 테러범으로 분류하지 않고 민간인 수용자로 분류한다. 이 시절 찍은 사진 한 장이 나중에 1천만 달러의 현상 수배 사진이 된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연합조직인 ‘전사들의 협의회’에 가입해 율법 자문역을 맡는다. 이 협의회에는 알 카에다 조직과 현지 투쟁조직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 전임 사령관이 죽은 뒤, 승계받은 '율법 고문'
알 카에다 조직을 주도하던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사망한 뒤, ‘전사들의 협의회’는 이라크이슬람국가(ISI) 건설을 선포한다. 그는 다시 이 단체의 율법 자문역이 되었고, ISI사령관(아미르)이었던 아부 우마르 알 바그다디에게 충성맹세를 한다. 2010년 미국과 이라크의 합동작전으로 아부 우마르 알 바그다디가 전사했고, 그는 ISI사령관에 오른다. 이때 얻은 가명이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였다. 아주 유사한 이름을 쓴 것은, 내부와 외부를 모두 겨냥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전임자와 같이 바그다드 출신인 점도 강조되었다.
율법학 고문이었던 알 바그다디는, 테러단체의 지휘관이 되면서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의 면모를 보여준다. 2012년 시리아 내전 때 자신들의 부하 중에서 시리아 출신들을 보내 잔혹하게 시리아 영토를 장악한다. 이들이 알 누스라 전선이다. 이듬해 알 바그다디는 ISI와 알 누스라 전선을 통합한다. 이에 알 누스라 쪽에서 반발을 하자 공격을 해서 조직원의 대부분과 시리아 동부지역을 빼앗았다. 알 누스라 전선은 시리아 북서부로 쫓겨났다.
# 그는 '국가'와 '황제'를 만들어내려 했다
2014년 이라크 반정부 시위가 거세지자, 팔루자를 점령해 들어갔고 세력을 키워 모술과 히트, 티크리트까지 함락시킨다. ISI는 이슬람국가(IS)로 개칭하고 아미르(사령관)라는 호칭을 칼리프(공동체 지도자, 황제급이다)로 바꿨다. 그해 여름, 세계는 자신이 칼리프라고 주장하는 알 바그다디의 영상을 보게 된다. “전세계 무슬림이여, 칼리프 국가에 동참하라”는 미션(지하드)을 던진 것이다. 이후 IS는 이라크, 시리아 뿐 아니라 리비아, 나이지리아, 시나이 반도,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예멘까지 발을 뻗쳤다.
알 바그다디가 기존의 다른 사령관들과 달랐던 점은 ‘공격’이라는 전투적 개념 이외에 ‘지배’라는 지적인 통치술을 구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는 부카 수용소에 있을 때 이라크군 장교 포로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이후 ISI활동 때 그들로부터 다양한 도움과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기존의 테러리스트와는 달리 그는 목표를 정해 영토를 확장했고, 그 점령지를 지배하면서 실질적인 ‘국가’ 개념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정규군 수준의 군대를 갖추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거기에 인터넷과 미디어콘텐츠로 전세계에 홍보를 했다. 이런 행위들은 이전의 테러리즘에서 볼 수 없었던 ‘지능적인 진화’라 할 수 있었다.
# 여러 번 사망 뉴스가 나왔던 장본인
그의 패색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모술에서였다. 미군과 이라크군은 합동 작전으로 모술에 입성했고, 알 바그다디는 모술의 성전인 모스크를 파괴하고 도망쳤다. 이후 이 사내는 여러 번 ‘부음’을 만들어냈다. 2016년 10월 독극물 암살 시도가 있었고 알 바그다디가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2017년 6월 시리아 공군의 공습으로 숨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해 7월 ISIS가 모술 서쪽에서 알 바그다디가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열흘 뒤 미국에선 그가 아직 생존해 있다고 말했다. 2018년에도 그의 뉴스는 나왔다. 2월 이라크 정보당국은 그가 시리아에 은신하고 있으며 다리와 신체 여러 부위의 골절로 스스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올해 봄인 4월30일 “조직원의 죽음에 복수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그의 영상이 공개되어 다시 충격을 줬다. 그리고 10월26일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그의 죽음을 확인한 것이다.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본다면 도와라.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멈추게 하라. 내가 신에게 복종하는 한 나에게 복종하라.” 그는 이런 말로 세계의 무슬림들을 끌어들이려 했다. 이 말은, 그가 이름을 빌렸던 전임 사령관 아부 바크르가 했던 말을 살짝 바꾼 것이다. “나는 신도 예언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기에 신의 길에서 벗어난 결단을 내릴 수 있으니, 내가 옳은 길을 가도록 하라.” 이렇게 겸허하고 조심스런 말을, 알 바그디다는 선동적이며 확신에 찬 말로 바꾸었다. 이렇게 해야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 가치의 좁은 시야에 갇힌 자의, 잘못된 '옳은 길'
무참한 죽음을 맞은 그가 말했던 ‘옳은 길’은, 수백만명을 죽게 하거나 고통받게 한 재앙의 길이었다. 그의 신념은 오직 좁디좁은 극단적 원리주의의 시야 속에 갇혀 있었고, 그밖의 모든 것을 악으로 돌리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독선의 길이었다. ‘겁쟁이처럼 울다가 개처럼 죽었다’는 트럼프 특유의 저열하고 전투적인 표현은, 이 기나긴 전쟁의 악랄한 양상을 증거하는 말임에는 틀림없지만, 듣는 귀는 개운치 않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악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배양되고 고무된 악행들의 에스컬레이션이라는 걸 이 사내는 보여준다. 트럼프가 저 살귀(殺鬼)같은 독재자를 기어이 처단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가슴이 서늘했을 사람이 또 있을 것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