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깨달음의 길목에 '부끄러움'을 두고 있다. 세상은 인간을 비루하게 만들고 꼴사납게 만들기 딱 좋게 되어 있지만, 극적인 순간마다 그것에서 구해주는 스파이더맨이 있는데, 그게 '부끄러움'이라는 것이다.
한 수행자가 길을 가다가 속옷이 풀려 땅에 떨어졌다. 그는 좌우를 돌아보고는 몸을 굽히고 조심스럽게 옷을 끌어당겨 입었다. 산이 그 모습을 보며 껄껄 웃는다. "당신은 참 이상도 하다. 사람이라고는 없는데, 옷이 벗겨졌다고 해서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수행자는 말했다. "우선 당신이 나를 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나 또한 나를 보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하늘도 태양도 땅도 숲도 나를 다 보았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어찌 수행의 옷자락이나마 잡을 수 있겠습니까?"
부끄러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참(慙)의 부끄러움이요 하나는 괴(愧)의 부끄러움이다. 참이란 스스로 부끄러워함이요, 괴는 누군가의 눈에 대해 부끄러워 함이다. 참의 부끄러움은 하늘이 알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요, 괴는 남이 알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우린 뒷부끄러움만 알았지, 정녕 숨길 수 없는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시치미 떼고 사는 편이다.
# 부끄러움을 알게 하는 놀라운 시스템
부끄러워 해야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부끄러워 해야할 것을 부끄럽다고 드러내는 일을 부끄러워 하는 것. 부끄러움을 숨기려 하는 마음이 부끄러움의 당위를 외면해버리는 것. 이 무치 때문에 그 실상을 놓치고 그 부끄러운 일을 개선할 기회를 놓친다는 것,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부끄러운 일 그것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 부끄러운 일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지혜를 얻을 기회를 돌보지 않는 것에 있다고, 저 오래된 수행자는 속삭이고 있다.
부끄러워 해야할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지치(知恥)라고 한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뜻이다. 마음 속에는 부끄러움을 알게 하는 놀라운 시스템이 있는데 이것을 염치(廉恥)라 부른다. '염'은 참는 마음이고 '치'는 부끄러운 마음이다. 염치는 부끄러운 마음에 스스로 자제하는 방어선이고, 스스로 자제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감지선이다.
'염(廉)'은 안에서부터 잡도리하는 기준이고 경계심이라면 '치(恥)'는 밖을 향해 내보내는 안의 반성과 뉘우침이다. 선을 지키지 못한 마음, 분수를 지키지 못한 마음, 자기를 지키지 못한 마음, 결국 참지 못한 삶을 징벌하는 스스로의 형벌체계가 바로 '부끄러움'이다. 그 부끄러움을 지탱하는 겉주머니는 아주 빈약해서 자주 그 알맹이를 잃어버린다. 부끄러워야 할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은 것은 이미 마음에 염(廉)이 없기 때문이다. 심장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란 무엇이겠는가. 죽은 사람이란 뜻이다. 더 이상 따뜻한 인간의 피를 흘려내보내지 않는, 죽은 목숨이란 뜻이다. 염치란 그래서 실은 목숨을 지키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 공자 사당에 주자가 써놓은 '염치'
중국 후난성(湖南省)의 창사(長沙)에는 악록서원(嶽麓書院)이 있다. 976년에 세워진 이 서원은 주희나 왕양명 같은 중국 스타학자들이 강의를 했던 곳이다. 양계초와 마오쩌둥도 여기서 공부를 했다. 악록서원에는 공자 사당이 대성전이 있는데, 그 성전 가는 길에 주희가 쓴 현판, '충효염절(忠孝廉節)'이 걸려 있다. 충효는 알겠는데 '염절'은 무엇이란 말인가.
염절은 염치와 절개를 뜻한다. 공자는 인의예지를 설파하면서, 인간 마음 속의 '경찰'을 지원했는데 그것이 염절이다. 염절 중에서도 염치가 수석경찰관이다. 순자는 염치라는 부끄러움의 기제를 인간의 중요한 덕목으로 보고 정치윤리의 핵심으로 꼽는다. 이것을 국가적인 윤리가치로 만들어놓은 사람은 관자(管子)였다. 관자의 예의염치론은,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에겐 교과서였고 야전교범이었다.
관자 목민편은 ‘나라엔 네 줄기 밧줄이 있어야 한다(國有四維)’고 통찰한다. 그 네 가닥의 밧줄(維는 벼리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물의 코를 꿰는 줄이다, 그물을 펴고 오므리는 긴요한 존재를 의미한다)은 뭔가. 바로 ‘예의염치(禮義廉恥)’다.
# 예의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지만, 염치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예(禮)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우는데, 백성이 지도자를 비웃는 ‘무례’의 나라다. 의(義)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로운데, 백성이 공권력을 비웃는 ‘불의’의 나라다. 염(廉)이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히는데, 온갖 잘못을 숨기는 ‘파렴(破廉)’의 나라다. 치(恥)가 끊어지면 나라가 망하는데,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치(無恥)의 나라다.
예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위태로운 정도이지만, 염치가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히고 망한다. 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국가를 이루는 윤리의 밧줄 중에서 핵심은, 반성하는 마음인 '염'과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치'였다. 정치는 말로 시작하며 말로 완성되는 것이다. 말은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 마음이 드러나는 '예의'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의 바탕을 만드는 '염치'가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다.
# 염치없는 혼군은 끌어내려라
염치는 부끄러움을 비판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인간은 부끄러운 일을 저지를 수도 있으며 부끄러운 말을 할 수도 있고 부끄러운 판단과 부끄러운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부끄러움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이다. 부끄러움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권력의 부끄러운 언행은 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국민에게 부당한 희생을 안길 수 있기에, 그 부끄러운 언행이 잘 정리되고 그런상황이 재발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옛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부끄러움의 세목을 구체적으로 성찰하고 직시하고 인정하며, 그 조목조목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 부끄러움에 대해 정당한 조치를 취하고, 부끄러운 일들을 재연하지 않도록 그 일을 수행의 밑천으로 삼는 것이다. 염치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 염치를 깨고 없애고 시치미 뚝 떼는 일이 파렴치하고 몰염치하고 후안무치한 것이다. 염치가 없는 왕이 혼군(昏君)이며, 그 무도한 리더는 왕좌에서 끌어내려도 무방하다는 '도덕적 단죄'를 내렸던 것도 유학자들이었다. 정치는 염치로 굴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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