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파국을 면하기는 했지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둘러싼 한·일 갈등부터가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니다. 일시 봉합했을 뿐이다. 그 뿌리인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양국의 실효성 있는 조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터질 수 있다. 한·일 갈등은 한·미·일 삼각협력체제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맞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구멍을 내는 것으로 인식됨을 새삼 확인했다. 지소미아 파동의 전 과정에서 이 정부는 사전에 이런 거시적인 관점까지 갖고 판단하고 대처했는가? 합리적 유권자라면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게 총선의 쟁점이 될 것이고, 또 되어야 한다. 일본에선 벌써 “양보 없는 퍼펙트 승리를 거뒀다”는 자평(自評)이 나오는 판이다. 청와대는 즉각 “오히려 우리의 판정승”이라고 반박했지만 석연치 않다. 대체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
한·미 방위비문제는 한·미동맹의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칠 중대한 문제다. 미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인 스티브 비건(대북특별대표)은 지난 21일 워싱턴을 방문한 이인영(민주당), 나경원(한국당) 등 3당 원내대표들에게 “한·미동맹의 리뉴얼(renewal·재설정, 갱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분담금 요구액 50억 달러를 깎아보겠다고 찾아간 사람들에게 “분담금 협상이 어렵고 힘든 협상이 될 것”이라면서 한 말이다. 한·미동맹의 위상변화는 1970년대 이래 한·미관계를 논할 때마다 거론되어온 단골메뉴지만 이번엔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한·미동맹의 재설정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나 일부 감축은 없을 것인지가 사활적 관심사다.
북핵문제는 재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이 정부는 과연 북한의 비핵화를 끝까지 추구할 의지가 있긴 한지, ‘민족 우선’ 논리 속에서 그럭저럭 시간만 보내다가 끝내 북의 핵보유를 용인하고 마는 건 아닌지, 이에 맞서 우리도 핵개발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실로 걱정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총선 이슈가 있을 리 없다. 한·미동맹이 거의 전부였던 과거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문제들이 이젠 국가의 존립에 영향을 미칠 현안이 됐다. 총선이 아무리 지역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라고 해도 이런 이슈들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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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이 정권의 대북정책에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믿을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프로세스는 브레이크 없는 열차가 되어 질주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더한 과속(過速)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속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김정은에게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간청해 저자세 논란을 낳고, 귀순의사를 밝혔다는 탈북어민을 추방하듯 돌려보내 안팎의 비난을 사는 일들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대통령의 ‘과속’도 상대방의 긍정적 호응만 있다면 말리기만 할 건 아니다. 의욕과 열정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주변국들로부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과속이라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엔 김정은이 9·19 군사합의를 무시하고 적대행위 금지구역인 서해상에서 포사격까지 해대지 않았는가. 진보 정권이므로 남북관계에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이젠 벗어날 때도 됐다. 이런 고언(苦言)조차도 자주적 대북 화해 노력에 딴죽을 거는 걸로 본다면 할 말이 없다.
4월 총선에서 합리적 유권자들의 판단을 구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지만 지금 분위기로서는 기대난이다. 보수 야당의 통합은 어려워 보이고, 설령 통합이 된다고 해도 여당을 중심으로 한 거대 진보·좌파 진영을 이길 길은 없어 보인다. 결국 대외정책도 총선 승패에 그냥 한 묶음으로 묻어갈 확률이 매우 높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대외정책만큼은 객관적 이성적 판단의 영역에 머물러 있으면 좋으련만 희망사항에 그칠 것이다.
국내정책은 잘못되면 고치거나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대외정책은 바꾸기 어렵다. 상대방이 있기 때문이다. 대외정책을 양면 게임이론(two-level game theory)으로 설명한 건 푸트남(Robert D. Putnam)이다. 그는 외교정책이 성공하려면 상대국과의 협상에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합의안이면서, 동시에 국내 유권자들로부터도 동의를 받을 수 있는 합의안이 돼야 한다고 봤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지소미아 유예 결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조국 전 민정수석이 들고 나온 죽창가에 정작 찔린 건 토착왜구로 몰린 우리 국민 다수였다. 대북 저자세 외교로 국격(國格)과 국민 됨에 상처를 입은 것도 우리 국민이다.
국가란 주어진 체제(system) 속에서 살아 숨쉬는 유기체다. 동북아라는 체제 속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남한, 북한이라는 유기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산다. 그중에서도 한·미·일 3국은 자신들끼리 또 하나의 하위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하나를 건드리면 나머지 둘이 즉각 반응하게 돼 있다. 지소미아 파기로 일본을 건드리면 미국이 반응하리라는 걸 몰랐다면 실망스럽고, 알았는데도 강행했다면 무모했다. 이처럼 체제이론(system theory)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유용한 틀 중의 하나다.
외교는 흔히 대중외교(mass diplomacy)와 엘리트외교(elite diplomacy)로 나뉘기도 한다. 이 SNS시대에도 이런 구분은 의미가 없지 않다. 대중영합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한 외교보다는 전문성과 경륜을 신뢰할 수 있는 엘리트외교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외교만큼은 최고의 인재들에게 맡겨야 한다. 이왕이면 남북관계에 대한 소양도 있는 인재라면 더 좋을 것이다.
허나, 이런 얘기를 지금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총선은 다가오고(12월 17일부터 예비후보 등록), 헤치고 나가야 할 길은 아득해 보인다. 이 총리는 2022년 대선을 대외정책에 강한 지도자가 나올 호기(好機)로 봤다. 나는 4월 총선을 냉철하고 슬기로운 유권자들이 탄생할 호기로 보고 싶다. 그게 유일한 해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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