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인구 100만명 소도시 루저우(汝州)시 지역병원에서 직원은 물론 의사, 간호사까지 은행 대출을 강요받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보도했다. 재정난에 시달린 현지 정부가 병원, 학교 등 정부 산하기관에 자금을 조달하라고 압박을 가했다는 것. 해당 병원장은 낙후된 시설을 개조해야 한다며 건설비 명목으로 직원들에게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으라 강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속 성장 속 겹겹이 쌓인 지방정부 부채···40조 위안 넘어
이는 ‘부채의 늪’에 빠진 중국 지방정부의 척박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예다. 중국 지방정부 부채는 부동산거품, 그림자은행 등과 마찬가지로 중국 경제를 위협하는 ‘회색 코뿔소’라 불린다. 회색 코뿔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요인을 말한다.
지난 수년간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에 따라 지방정부 부채가 겹겹이 쌓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경기 둔화세가 커져 재정난에 직면한 지방정부로서는 빚을 갚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지방정부 부채는 이제 중국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게 시장의 진단이다.
중국 재정부에 따르면 8월말 지방정부 부채는 공식적으로 21조 위안(약 3512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3년 6월 말 10조9000억 위안에서 2배로 급증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보이지 않는, 이른 바 음성 부채까지 합치면 사실상 지방정부 부채는 공식 수치의 2배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도 앞서 2017년말 지방정부 부채가 이미 40조 위안에 달했다고 집계했다.
막대한 음성부채는 사실상 지방정부가 산하에 설립한 자금조달 기관, ‘지방정부융자플랫폼(LGFV, 地方政府融資平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방정부는 그동안 재정수입이나 지방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충당해 왔다. 은행에서 직접 대출받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산하에 LGFV를 설립했다. LGFV는 지방정부를 대신해 지방정부가 보유한 각종 부동산 등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거나 채권을 발행해 지방정부 사업 자금을 조달했다.
2009년 금융위기 발발 당시 중국 정부가 4조 위안을 퍼붓는 경기 부양책을 내놓자 지방정부는 LGFV를 무더기로 설립했다. 중국 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약 70만개 LGFV가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 LGFV가 짊어진 부채는 중국 정부의 지방정부 부채 공식 통계엔 잘 잡히지 않는다.
◆지방정부 디폴트···사회 불안 초래 우려도
문제는 지방정부로선 막대한 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경기 둔화 속 재정수입은 줄었지만 감세·복지 등으로 비용은 불어나 재정난이 악화했다. 올 1~9월 지방정부 재정수입 증가율은 3.1%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7.8%)의 절반 수준도 못 미치는 것으로, 11년 만의 최저치다. 오죽했으면 중국 곳간을 책임지는 류쿤(劉昆) 재정부장이 1월 직접 나서서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빠듯하게 살림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을까.
지방정부 부실 위험도 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법원은 올 들어 10월까지 831개 지방정부가 디폴트에 빠졌다고 집계했다. 지난해 100개에서 8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이들 지방정부가 체불한 금액은 69억 위안으로, 지난해 41억 위안에서 50% 이상 증가했다.
지방정부 디폴트로 자금을 빌려준 이들은 제때 돈을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산둥(山東)성 소도시 훙허(紅河)진 정부는 법원으로부터 5월까지 현지 부동산업체로부터 빌린 2600만 위안을 갚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자금이 마련되면 갚을 것이라며 늦장만 부리고 있다. 장시(江西)성 성도인 난창(南昌)시 정부도 1억6100만 위안을 갚으라는 법원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해 결국 디폴트를 선언했다. 앞서 동방원림처럼 지방정부 체불에 디폴트에 빠지는 기업까지 생겨났다.
지방정부 디폴트는 시장 불안감을 키우는 것은 물론 사회적 혼란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방정부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해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시위를 벌일 수도 있기 때문. 이는 사회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중국 공산당으로선 민감한 문제다.
◆ '경영난' 민영기업 자금수혈까지 떠맡아
지방정부 재정난에 지방정부 산하 LGFV도 잇달아 디폴트에 빠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로디움 그룹은 자체조사 결과, 올 1분기에만 LGFV의 디폴트가 13건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지난해 1년 통틀어 23건 발생한 것과 비교하면 올 들어 디폴트가 더 자주 발생한 셈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상환 만기가 도래할 중국 LGFV 채권은 2318억 위안어치다. 내년엔 무려 1조3000억 위안어치 채권 만기가 도래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앞서 9월 보고서에서 오는 2021년 말까지 앞으로 2년 반 동안 상환 만기가 도래할 LGFV 부채가 3조8000억 위안에 달할 것으로 관측하며, 이것이 중국 금융 시스템에 위기를 초래할 뇌관이 될 우려를 낳고 있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최근 LGFV엔 막중한 역할이 주어지며 그만큼 부채 부담이 커졌다. 자금난에 빠진 민영기업을 위해 은행 대출, 채권 발행 보증을 서주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경기 둔화 속 LGFV가 민영기업의 ‘백기사’로 변신했다고 소개했다. 지방정부가 현지 민영기업을 살리기 위해 LGFV를 동원해 구제금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중국의 루이비통’을 꿈꿨던 산둥성 섬유재벌 민영기업 루이(如意)과기그룹을 구제금융 지원한 게 대표적이다. 루이과기그룹은 지난 10월 부채 리스크를 이유로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이 기존의 B2에서 B3로 강등됐다. 이에 산둥성 LGFV인 지닝건설투자그룹이 35억 위안을 투자해 루이과기그룹 지분 26%를 매입하며 구제금융에 나섰다. 심지어 디폴트 우려가 있는 루이과기그룹의 채권 20억 위안어치 담보도 섰다.
중국 궈성증권에 따르면 현재 LGFV가 담보를 선 채권이 중국 전체 채권의 70%에 달한다. 또 200여개 LGFV가 중국 내 기업에 모두 5조9000억 위안어치 신용담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는 LGFV 총자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LGFV가 담보를 선 11개 민영기업과 9개 국유기업이 디폴트를 선언했고, 이에 LGFV가 전액 혹은 부분 채무까지 대신 상환한 것이다.
예를 들면, 지난 4월 윈난(云南)성 LGFV인 쿤밍산업개발투자는 현지 6개 기업이 공동 발행한 4억 위안짜리 채권에 대해 2개 민간기업 대신 1억5549만 위안 채무를 상환했다. 하지만 9월까지 이들 두 기업으로부터 회수한 액수는 이 중 절반도 채 안 된다.
이미 대다수 LGFV가 거액의 빚더미에 올라 앉아있는 상황에서 추가 부채 부담을 과연 견딜 수 있을지 시장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보증을 선 민영기업이 디폴트에 빠지면 연쇄 파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들어서 현재까지 중국기업 디폴트 액수는 1100억 위안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한 해 1220억 위안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70만개 LGFV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중국 지도부도 지방정부의 음성부채가 금융시스템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이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재정부가 최근 70만개에 달하는 LGFV 부채 변동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공개한 게 대표적이다.
시스템엔 LGFV가 실제 보유한 부채와 부채 종류, 만기일, 부채 상환 여부, 리스크 평가 등 정보가 담겼다. LGFV의 채무 상환일은 두 달 전 당국에 자동으로 통보되고, 해당 LGFV와 주관부처는 열흘 이내 채무 상환 준비 현황을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각 지방정부의 채무 불이행이나 보유자산 변동 상황도 매달 업데이트 된다. 뒤늦게 보고하거나 데이터를 조작한 게 발각되면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이밖에 최근 중국이 '금융통' 인사를 잇달아 지방정부 '넘버2'인 부성장(혹은 부시장)으로 발탁하고 있는 것도 지방정부 부채 리스크 해소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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