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젊은 사업가를 양성하고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한 획을 그으며, 무언가 '남기기'에 힘썼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9일 오후 11시 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이다.
김우중 회장이 별세하며 대우그룹 랜드마크였던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의 기구한 운명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김 회장의 기쁨과 눈물이 서린 대우빌딩은 그가 남긴 것의 일부다. 1977년 완공된 지상 23층, 지하 2층의 대우빌딩은 완공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오피스 빌딩이었다. 서울역 바로 앞에 위치해 처음으로 상경한 사람들을 압도시켜 '짐승 같다'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 <외딴밤>에서는 빌딩을 '열여섯의 나, 모내기가 끝나던 마지막 날 밤기차를 타고 집을 떠난다. 그날 새벽에 봤던 대우빌딩을 잊지 못한다. 거대한 짐승으로 보이는 저만큼의 대우빌딩이 성큼성큼 걸어와 엄마와 외사촌과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라고 묘사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먼저 불이 켜지고 가장 늦게 불이 꺼지던 대우빌딩은 대우그룹이 승승장구하던 시절 한국 경제 고도성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처음부터 대우빌딩의 부지는 아니었다.
1974년 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7층 규모의 교통회관으로 계획했던 건물을 대우그룹에서 인수해 23층으로 재설계했다. 김 회장은 임직원이 모두 모여 일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고자 했다. 정사각형의 거대하고 독특한 이 건물은 현재 설계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 4월 15일 대우그룹이 해체되며 주인 없이 갈 곳 잃은 비운의 10년이 시작된다. 금호그룹이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대우빌딩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소유가 된다. 하지만 반 년 만에 외국계 투자 회사인 모건 스탠리가 당시 국내 빌딩 거래 사상 최고가인 9600억원에 인수하게 된다.
2009년에는 대우빌딩이 새단장을 한다. 2009년 4월 9일 대우빌딩의 새 이름은 '서울스퀘어(Seoul Square)'로 결정됐다. 해외 랜드마크 빌딩이 '스퀘어'로 불리는 것에 착안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해 11월 16일 대우빌딩은 리모델링을 마치고 '서울스퀘어'로 재개장했다. 리모델링 당시에 높이 108m, 폭 100m인 초대형 공사 가림막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리모델링한 서울스퀘어는 옛 대우빌딩 시절과 외관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2009년부터 빌딩 전면에 발광다이오드(LED)로 구성해서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구 대우빌딩은 남산타워를 가리고 조경을 해친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리모델링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얻고자 했다. 현재까지 서울스퀘어의 미디어캔버스는 서울역의 상징성과 맞물려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3년 후인 2010년 모건스탠리는 높은 공실률에 못 이겨 서울스퀘어를 매각했고, 한국 대형 오피스빌딩 시장에서 처음으로 투자에 실패한 외국계 자본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후 싱가포르계 투자회사인 알파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에 약 8000억원을 받고 서울스퀘어를 매각했다. 이때 모건스탠리는 막대한 손해를 입고 한국 내 부동산운용 부문 사업을 전면 철수했다가 최근 업무 재개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4년 드라마 '미생'은 서울스퀘어의 옥상과 사무실 등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서울스퀘어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기업 직원군을 상징하기도 하고, 한국경제에 의미 있는 건물이라 선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드라마 방영 당시 '대우맨'이 연상된다며 많은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올해 3월 NH투자증권은 9800억원에 서울스퀘어를 인수했다. 한때 높은 공실률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재 서울스퀘어의 임대율은 98%다. 본 건물은 초역세권에서 또 다른 서울 랜드마크 역할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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