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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국회의원까지 나서 영수증 만지지 말라고 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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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욱 기자
입력 2019-12-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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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스페놀A, 내분비계장애물질로 호르몬 체계 교란

  • 영수증 용지서 EU안전기준 초과량 검출

  • 산자부, 영수증 용지의 비스페놀A 안전기준 신설 예고

  • 국회입법조사처, '사전주의 원칙' 입각 적극적 유해성 검토 강조

"하루빨리 비스페놀A 안전기준을 신설해 국민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이다. 비스페놀A는 도대체 어떤 물질이기에 국회에서까지 이토록 강한 어조의 경고가 나온 걸까.

흔히 BPA로 불리는 비스페놀A는 전 세계적으로 젖병, 식기, 캔, 포장재, 감열지 등에 널리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물질은 내분비계장애물질, 생식독성물질, 고위험우려물질 후보군으로 지정돼 있다. 독성이 그만큼 강하다는 이야기

문제는 이처럼 위험한 물질이 일상생활 깊숙히 파고들어 와 있다는 점이다. 

식당, 편의점 등에서 물건 값을 치른 뒤에 건내주는 종이 영수증이나 은행 순번대기표, 영화관 티켓 등에 흔히 사용되는 용지가 바로 이 물질을 원료로 만들어진다. 지난 해 기준으로 국내 한 해 발급량이 129억 장에 달한다. 

이 용지를 보통 '감열지'라고 부른다. 열을 가하면 색이 드러나는 염료(발색제)를 이용해 정보를 표기하는데,  발색제로 사용되는 화학 물질 바로 비스페놀A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주고받는 영수증을 통해 사실상 모든 장소에서 매일 시민들이 비스페놀A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감열지는 유럽연합 기준의 최대 60배에 달하는 비스페놀A가 함유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내 감열지의 비스페놀A 함유량은 0.06~12,113㎍/g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유럽연합 기준은 200㎍/g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스페놀A, 인체 얼마나 유해한가?

비스페놀A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인체 내분비계 독성을 미치는 내분비계장애물질로 소위 '환경호르몬'으로도 불린다. 신체의 호르몬 체계를 교란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산모가 비스페놀A와 같은 내분비계장애물질에 노출될 경우 미량으로도 태아의 세포 분화 및 조직 발달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이를 생식독성 1B등급, 안구 피해도 1등급, 피부 민감도 1등급, 1회 노출 특정표적장기독성 3등급으로, 고위험우려물질 후보군으로 구분해 관리하고 있다. 

비스페놀A는 기름 성분에 잘 녹는 친지성을 갖고 있어, 화장품을 바른 피부를 통해 빠르게 흡수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해진다. 핸드크림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겨울철이나 화장품 사용량이 많은 사람들은 그 만큼 위험에 많이 노출되는 셈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행한 '비스 페놀A 함유 감열지의 유해성 및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핸드크림을 바른 채 비스페놀A가 도포된 감열지를 만지는 실험을 한 결과, 감열지를 만진 지 2초 만에 EU 기준치인 200㎍/g을 넘는 235㎍/g의 비스페놀A가 피부에서 묻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비스페놀A 범벅 영수증, 규제는 없나?

비스페놀A가 함유된 감열지에 대한 안전 기준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지난달 27일에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가 감열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전기준을 신설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실생활에 적용되기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초 국가기술표준원은 '식품위생법'에 젖병 등 영·유아용 기구 및 용기·포장에 비스페놀A 사용을 금지했지만 종이 영수증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제를 하지 않았다. 또한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화학제품안전법)'에 따라 제조 및 수입 금지가 가능한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에도 종이 영수증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다 지난 10월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신창현 민주당 의원이 비스페놀A가 함유된 감열지에 대한 안전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정부도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 국감에서 산자부가 감열지에 대한 안전기준을 마련해 관리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후 11월 27일 산자부가 국정감사 지적 내용의 후속 조치로, 제품안전정책 실무위원회를 열고 감열지의 위해성 평가 및 안전기준을 신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벽지 및 종이장판지'를 관리하고 있는 산자부가 감열지를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비스페놀A가 함유된 감열지 생산 및 판매를 규제할 구체적인 규제가 마련된 것이다.

신창현 의원은 13일 산자부의 감열지에 대한 안전기준 신설 결정을 두고 "궁극적으로 생활 화학 제품에 비스페놀A, 비스페놀S 등 페놀류를 포함한 환경호르몬 프리(Free)까지 가기 위한 기본적 단계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한다"며 "유해한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시민들의 건강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할 제도가 더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준치가 마련되려면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감열지에 사용된 비스페놀A에 대한 안정성을 평가하고 기준치를 마련하는 실무 작업에 최소 6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안전기준이 신설되면 비스페놀A 함유량에 따라 감열지에 대한 생산 및 수입 규제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영수증 용지 생산 업체에서는 제조 단가를 맞추기 위해 중국 등지에서 감열지를 수입해서 제품을 생산한다. 안전기준이 마련되면 비스페놀A 함유량이 기준치를 넘어서는 수입산 감열지의 수입과 생산을 규제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비스페놀A 안전 기준을 넘지 않는 감열지만 사용한 영수증이 시장과 시민들의 생활에 유통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이 지난 10월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후 약방문... 적극적인 사전예방 해야

향후 비스페놀A 함유 영수증에 대한 구체적인 안전 기준이 마련되면 이에 대한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비스페놀A처럼 그 심각성이 지적됐을 때 안전기준을 마련하는 '사후 대책'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못하며, 사전 예방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행한 '비스페놀A 함유 감열지의 유해성 및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는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나 불확실성·불가역성의 특징이 있는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사전주의 원칙에 근거해 학문적 연구 결과 및 해외 정책 사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가 언급한 '사전주의 원칙'이란 복귀할 수 없는 중대한 침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 원인과 결과 간 인과관계에 관한 과학적 확실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 조치를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증명될 때까지 미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사전주의 원칙'에 입각해 화학제품의 유해성을 검토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은 사실상 이미 마련돼 있는 상태다. 그 법적 근거가 바로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일명 화학제품안전법이다.

화학제품안전법 8조(위해성 평가 등)에 따르면, 실태조사를 한 결과 생활화학제품의 위해성이 우려되는 경우이거나 생활화학제품에 함유된 화학물질의 위해성이 크다는 우려가 국내외에서 제기되는 경우, 환경부 장관은 해당 생활화학제품에 대해 위해성 평가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화학제품안전법에 따르면 위해성 평가를 한 결과 위해성이 매우 커서 이를 막기 위한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해당 생활화학제품을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으로 지정·고시하기 전에 그 제품의 제조 또는 수입의 금지를 명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는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사전 예방 및 위해성 평가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산자부 등 소관 부처가 이를 활용해 피해를 예방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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