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거리 운종가(雲從街). 조선 시대 종로 일대에 붙여졌던 이름이다. 종로는 왕이 사는 궁궐이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로 바뀌는 수백 년간 한국의 대표 상권으로서 위상을 이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종로 상권이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2일 아주경제 기획취재팀이 찾은 종로는 더 이상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번화가가 아니었다. 완연한 겨울바람만 드문 인적과 곳곳에 놓인 '임대' 입간판 사이를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아주경제신문 기획취재팀은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서울시 종로구 SC제일은행본사와 대각선으로 보신각이 있는 종로1가 사거리(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종로2가 사거리, 그 아래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2·14번 출구까지, 종로1~3가 왕복 8차선 양편 1.66㎞ 거리의 건물을 전수조사했다. 종로1가 사거리에서 종로3가 사거리까지 거리는 각각 830m다.
종로통(通)으로 불렸던 지역 내 상가 임대 상황 분석을 통해 위기의 실체를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조사 지역 내에서는 총 32개 건물에 '임대' 팻말이 붙어있었다. 단순 평균치로 50여m마다 임대 팻말이 하나씩 붙어있는 셈이다.
종각역에서 종로3가로 이어지는 대로변에서 전체 임대라고 적은 미니 현수막 등 알림글 32개 중 무려 20개는 상가들이 가장 많이 입점하는 저층(1~3층) 매물용이었다. 이곳들은 이른바 '깔세'로 불리는 단기임대조차 들어오지 않은 채 완전히 비어있었다.
임대 팻말이 붙은 1층 상가 매물 중 2곳에는 저가 생활용품 '땡처리 매장' 등이 단기임대로 들어와 있었다. 이밖에 9개는 3층 이상 고층 사무실의 임대를 구하는 팻말이었다. 실제 비어있는 공실이 아니라 '임대'를 알선한다는 중개업소의 광고 1개도 임대 팻말에 포함시켰다.
임대를 구하고 있는 상가 20곳의 폐업 전 업종을 분석해봤다. 나날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외식산업 경기지수를 반영이라도 하듯 카페·음식점 등 요식업 매장이 5곳으로 가장 많았다. 온라인 판매의 성장으로 매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의류 매장도 4곳에 달했다.
그 외 이동통신사 대리점 2곳, 귀금속·안경 등 액세서리 매장이 2곳, 화장품 매장과 병원 각각 1곳이 폐업을 한 상황이었다. 이 중 4곳은 리모델링 혹은 신축 공사 이후 아직 입점 매장을 찾지 못했다.
지난 8월 폐점한 ‘유니클로 종로3가점’도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종로 관철동 ‘젊음의 거리’ 초입에 위치해 과거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던 전 ‘예본안과의원’과 청바지 브랜드 ‘뱅뱅’ 매장은 각각 6년째, 3년째 텅 비어있다.
지난 12일 찾은 종로대로.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눈길이 가는 팻말들이 있었다. A4용지, 전지, 입간판, 대형 현수막까지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메시지는 하나였다. '임대 문의'.
이날 오전 10시 30분, 보신각 사거리의 종로타워에서 종로3가 방향으로 100m도 지나지 않아 첫 임대 팻말을 발견했다. ‘올리브영 종각점’ 옆에 위치한 과거 ‘SK텔레콤’ 대리점이었다. 낡은 대리점 간판과 그 아래 A4와 A1용지로 각각 출력한 ‘임대 010-전화번호’ 팻말이 보였다. 유리 외벽 너머로 보이는 텅텅 빈 내부 모습에서 이미 오랫동안 공실 상태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취재해보니 이 점포는 2년 가까이 비어있는 상태다.
걸을수록 종로의 공실 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탑골공원 앞 종로2가 사거리 건널목까지 300m를 채 걷지 않았는데도 벌써 7개의 임대 팻말을 볼 수 있었다. 1~2층을 통째로 사용했던 ‘나이키 종로점’과 KT 대리점 등 대형 브랜드 매장부터 귀금속 상가 내 3.3㎡(1평) 남짓 될까 말까 한 쪽방 점포, 사무실, 폐점한 카페까지, 한 동네에서 몇 개월은 있어야 전부 볼까 말까 한 폐업 유형이 그 짧은 거리 안에 모두 들어있었다.
종로2가 사거리를 건너 탑골공원과 종로3가에 들어서자 유동인구는 다시 많아지면서 다시 활기를 보였다. 그러나 종로3가의 끝자락에는 지난 8월 일본 불매운동 국면에서 폐점해 논란이 됐던 3층짜리 ‘유니클로 종로3가점’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종로타워에서 종로3가역 2번 출구까지 대로변 830m를 지나는 동안 총 14개의 임대 팻말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종로2가로 접어들자 눈에 띄게 공실이 늘었다. 한때 서울 대표 번화가 중 하나로 꼽혔던 관철동 ‘젊음의 거리’로 향할수록 유동 인구는 확연히 줄었다. 특히 종로2가 사거리에서 보신각이 있는 종각역 4번 출구 방향까지 300m 구간 내 임대 팻말은 9개에 달했다. 거의 한 집 걸러 하나의 임대 팻말이 붙어있는 수준이었다.
지역별로는 종로3가보다 종로2가가 대로변 공실이 훨씬 더 많았다. 해당 구간의 종로2가 공실은 23개로 9개인 종로3가보다 155.5%나 많았다.
방향별로 보면 종로타워 대로변보다 보신각 대로변의 공실이 더 많았다. 종로타워 쪽은 공실은 14개인 반면, 보신각 방면은 18개에 달했다.
◇통계에도 나타나는 상권의 쇠퇴···종로 젊음의 거리 매출 감소 10% 넘어
이날 확인한 종로 상권의 침체 분위기는 부동산 정보업체 ‘KB리브온’에서 매달 제공하는 상권분석 데이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KB리브온에 따르면 종로2가 사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500m의 상권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쇠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종로2가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해당 구역은 세부적으로 △종로2가 인사동 △종로2가 젊음의 거리 △종로3가 CGV 방향 △종로3가 서울극장 방향 4개의 상권으로 나눠진다.
올해 12월 기준 해당 구역의 점포 수는 총 3010개로 총 매출 규모는 전년 동기(1642억1000만원)보다 3.1% 감소한 1591억3000만원을 기록했다. 매장당 평균 매출 역시 54억8000만원에서 52억9000만원으로 줄었다. 특히 6개월간 40개의 점포가 사라진 소매업과 요식업(5개)이 약세를 보였다.
특히 △종로2가 젊음의 거리 △종로2가 인사동 2개 구역 모두 작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10%가량 감소하며 시장의 하향세가 확연했다.
기자가 직접 걸어 다닌 '젊음의 거리' 상권에는 440개의 점포가 있었으며, 상권의 전체 매출은 361억3000만원으로 지난해 12월 402억1000만원보다 10.1%나 줄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4개 구역 중 감소 폭이 가장 큰 것이다. 매장당 평균 매출도 87억6000만원에서 82억1000만원으로 감소했다.
같은 종로2가 구역이면서 842개의 점포가 있는 인사동 상권의 매출 규모는 301억8000만원으로 전년 동기(334억2000만원) 대비 9.7% 줄었으며, 매장당 평균 매출 역시 39억8000만원에서 35억8000만원으로 줄었다.
반면, 서울극장이 위치한 종로3가 구역 305개 점포의 전체 매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5.5% 늘었으며, 종로3가 CGV 방향의 경우 매출은 0.8% 감소했지만, 감소 폭은 미미했다.
◇‘부동산도 문 닫는 종로통’, 유례없는 상황...대기업 직영점도 탈출 중
어두워진 종로 부동산 경기에 주변 중개업소들은 입도 문도 굳게 닫아버렸다. 스마트폰 지도에서 검색해 처음 찾아간 중개업소는 아예 폐업한 상태였다. 심지어 해당 건물은 한 층을 제외하면 모두 공실 상태였다. 다음으로 방문한 중개업소에 취재를 요청하자, 관계자는 "요즘 답답하다.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한사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몇 군데를 더 방문해 취재 의도를 설득한 끝에서야 어렵사리 몇 마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J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최근 체감상 종로통 공실률은 10~15% 정도"라며 "1~2년 전부터 천천히 계속 안 좋아지긴 했지만, 지난 9월부터는 눈에 띌 정도로 임대가 다시 안 채워져서 공실이 많아진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파는 사람이 열이면 새로 하는 사람이 하나"라며 “상권은 세입자가 빠지기 시작하면 쉽게 들어가지 못한다"고 걱정을 풀어놨다.
D공인중개법인 관계자는 “종각 관철동에서 종로2가까지 종로통 어디에서도 유사 이래 이런 적이 없었다“며 ”요즘 체감은 IMF보다 더 심하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IMF 때도 종로 라인이 이 정도인 적은 없었다. 서울서 오래 살아본 사람은 아는데, 이렇게 빈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때 종로2가는 들어오려고 해도 공실 자체가 없었고 2가보다 못하다고 치는 종로3가마저도 지하 조그만 가게 권리금이 5억~10억원씩 붙던 때가 있었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두 중개업소 모두 상권 불황으로 개인 자영업자뿐 아니라 큰 기업도 버티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J중개업소 대표는 "공실 증가는 종로 장사조차 이제 근근이 버티는 것도 힘들어졌다는 의미"라며 "수익을 못 내니까 기업들조차도 쭉 빠졌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기업들도 긴축 상태인 것 같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화장품, 통신사 등이 종로에 상징성 있는 '안테나샵'(상품 판매보다 상품·고객·지역 정보 수집 혹은 브랜드 홍보가 목적인 시범 점포)을 유지해왔는데, 이제는 수익이 나는 구조로 바꾸거나 적자를 못 버티고 철수한다”며 “지금 상황에서 새로 들어오는 기업이 없어 비싼 가게들은 빈 채로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D중개법인 관계자는 “월세가 몇천만원이라도 수익이 생기면 들어가는 게 생리다.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장사하는 사람들은 타산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다. 뭐라도 장사가 돌아가면 무리해서라도 들어오겠지만, 지금은 겁나서 권리금이 없어도 못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인조차 이렇게 계산하는데, 똑똑한 사람들을 데려다 돈 주면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는 대기업들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권리금 없어도 안 들어와”...‘요지부동’ 최고 수준 종로 임대료
D중개법인 관계자는 현재 사실상 권리금이 사라진 상태인데도 공실률이 높다는 점에서 종로 공실 현상이 심각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종로통은 권리금이 몇천만원에서 10억원 대까지 붙어있었지만, 지금은 수익이 임대료도 맞출 수가 없으니까 권리금을 내지 말고 들어오라고 해도 비어있다”며 “권리금을 내고 들어왔던 사람들도 다 포기하고 나간다. 100㎡(30평)대 매장에서 권리금 2억·시설비 1억5000만원·임대료 500만원 수준이라고 하면, 몇 달 버텨보다 결국 정리하는 경우 거의 5억원을 버리고 나간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 모을까 말까 하는 돈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근본적으로 상권 침체와 비싼 임대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종로 공실 상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J중개업소 대표는 "인사동 방면은 수요자층의 50% 이상 외국인 관광객이고 관철동은 직장인 내수 수요”라며 "지금은 젊은 직장인들도 여유가 없어 연말인데도 돈을 쓰지 않고 있고, 사드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무역갈등으로 일본인들이 확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명동보다 관광 산업 규제가 많아 업종 전환이 쉽지 않은 인사동은 관광객들 돌아오기만을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Y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임대료도 비쌌던 데다 유동인구도 줄어드니 종로2가가 많이 죽었다"며 "아무리 종로라도 사람 빠진 상권에 있는 빈 점포에 들어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사라는 건 다 같이 하는 것"이라며 "옆 가게는 다 닫았는데 혼자서 열심히 해보겠다고 셔터 올리고 나와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종로통 점포 임대 시세는 권리금과 시설비를 제외하고 1층 66㎡(20평) 기준 3.3㎡당 월 50만~80만원 선이다. 보증금은 2년 치 월세다. 보증금 1억5000만~2억원, 월 임대료는 1200만~1500만원 선인 것이다. 잘 나가는 매장이라면 3.3㎡당 100만원을 넘을 정도로 시세보다 20~50%까지 높아진다.
실제 이번 조사 대상 건물 중 유니클로 종로3가점이 입점했던 종로3가 23-1, 1~3층(684㎡·207평)의 경우, 보증금은 15억원, 월 임대료는 4500만원이었다. ‘에뛰드하우스’가 입점했던 종로2가 71-6, 지하 1층~1층(총 83㎡·25평) 매장은 보증금 4억원, 권리금 3억원, 월 임대료 1700만원이었다. 이 두 매장의 임대료는 모두 약 10년 전 계약한 금액 수준이다.
뱅뱅이 있던 종로2가 84-8, 1층(221㎡·67평)은 보증금 5억원에 월 임대료 5000만원, 2층(628㎡·190평)은 보증금 4억원에 월 임대료 4000만원 수준이다.
과거 SK텔레콤 대리점이었던 종로2가 7, 1층(165㎡·50평)이 보증금 2억원에 월 1500만원 수준이라 이날 조사한 매물 중 임대료가 낮은 편이었다.
Y중개업소 대표는 “과거 법인기업들이 브랜드 가게를 낸다고 통으로 빌리면서 임대료를 비싸게 올려놨다”며 “최근 그 기업들이 다 빠지고 비싼 임대료만 그대로 남으니 개인들은 들어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D중개법인 관계자 역시 “물론 임대 시세야 있지만, 새 계약을 할 때는 결국 건물주가 부르는 게 값이다”며 “종로통 1층 장사는 큰 기업체나 할 수 있지 일반 개인은 못 들어간다. 개인 점포를 내서 할 수 있는 규모나 구조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비싼 임대료는 실제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감정원의 ‘상업용 부동산 임대 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종로 상권(8만1100원)보다 ㎡당 평균 임대료가 높은 곳은 △명동(29만4600원) △강남대로(12만5400원) △광화문(10만600원) △남대문(9만400원) △동대문(8만7200원) △신사역(8만4500원)으로 손에 꼽을 수 있다.
문제는 공실이 많아져도 임대료는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정원 통계상으로도 올 1분기와 2분기 종로 상권의 평균 임대료는 ㎡당 7만9700원, 8만1200원으로 거의 변동이 없는 상태다.
D중개법인 관계자는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안 낮춘다. 전에 받아오던 만큼은 받으려고 한다”며 “서민들이야 몇백만원, 몇천만원으로 죽어 나가지만, 부자들은 생각과 개념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돈 가진 사람들은 (보신각 옆) 옛 종로서적 자리와 파이롯트 매장 같은 건물을 몇 년을 그대로 비워놔도 상관 안 한다. 나중에 팔 때 제값 받고 팔면 몇 년 치 못 받은 임대료도 모두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만난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종로 공실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J중개업소 대표는 "특정 이유 하나가 있다기보단 전체적으로 맞물려있어 이런 상황은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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