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칼럼] 변곡점에 놓인 북미대화, 돌파구 마련해야

[박종철 석좌연구위원] 

연말이 다가 오면서 북·미간에 데자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치 2년 전에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로 대응하던 모습이 재현되는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로켓맨이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하자 북한은 늙다리라는 표현으로 응답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군간부들과 눈덮인 백두산에서 말을 타고 모닥불을 피우며 항일투쟁 시절의 전의를 다짐하였다. 그리고 미국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라는 위협성 경고를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상황을 악화시킬 경우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으로 응수하였다.

2018년 평창올림픽은 한반도에 드리웠던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평화시대를 여는 듯했다. 북·미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갖고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리는 등 한반도평화가 자리잡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19년 한 해 동안 북·미협상이 답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북·미대화의 이상 징후는 2월 말 하노이의 북·미정상회담에서 나타났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기대와 달리 노딜로 귀결되었다. 6월 말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북·미 정상이 회동하는 반전이 있었으나 10월 초가 되어서야 실무협상이 열렸다.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안하였으나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새로운 셈법을 요구함으로써 빈손회담이 되었다. 지난주 서울을 방문한 비건 미 국무부 대북대표는 북한에게 판문점회담을 공식적으로 제안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북한은 어떤 셈법을 염두에 두고 있을까? 북한이 설정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면서 북한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분주하다. 동창리에서 미사일엔진실험을 하고, 연말에 노동당 전원회의를 소집하여 중대 결정을 할 것을 예고하였다.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북한이 생각하는 새로운 길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새로운 길은 대체적으로 핵억제력 강화, 자력갱생, 대중·러 관계 강화 등을 의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비핵화 대화와 새로운 길을 병행할 것인지, 아니면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고 나 홀로 가는 길을 택할지 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셈법도 복잡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서 탄핵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유일한 외교적 성과로 내세웠던 북한과의 대화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북한이 새로운 길을 택하고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경우, 이를 묵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력대응 카드를 꺼내기도 여의치 않다. 북한의 요구대로 스몰딜을 받아들일 경우 배드 딜이라는 여론의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북·미의 셈법을 고려하면, 두 개의 시나리오를 가정할 수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양측이 정면 대결을 피한 채, 적절한 수준에서 긴장을 유지하면서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으면서 체면유지를 할 수 있는 협상방안을 모색하고, 미국도 적절한 수준에서 압박을 유지하면서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긴장고조 시나리오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키고, 미국도 대북제재 강화, 정찰비행, 무력시위, 한미연합군사훈련 강화 등으로 대응함으로써 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위기상황이 고조된 다음, 양측이 줄다리기를 하다가 정면 대결을 피하고 새로운 협상을 할 수도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연말 연초는 협상을 위한 숨고르기 기간이나 새로운 판짜기를 위한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연말 연초에 교착상태의 장기화나 파국을 막고 북·미 협상 재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협상재개 방안을 마련하여 북·미의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타협안의 핵심은 양측이 일괄타결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하되, 이행은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비핵화의 목표 및 단계적 이행계획을 설정하고,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여 단계별·분야별로 상응조치를 실시하는 이행계획표에 합의해야 한다.

한반도 위기가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미간 정상을 포함한 각급 외교 채널을 동원해야 한다. 특히 비핵화의 일단계 조치로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신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시기 및 규모의 조정, 대북제재의 부분적 완화 등을 맞교환하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대화 창구를 가동해야 한다. 2018년 북·미협상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남북회담이 돌파구를 열었던 것과 같은 국면전환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대화 채널을 가동하는 한편, 특사파견 등을 통해 한반도정세에 대한 논의와 함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이행방안에 대해 협의해야 한다.

2018년 매서운 추위 속에서 평창올림픽이 한반도 평화의 봄을 열었듯이 올겨울 한파를 뚫고 한반도 평화의 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