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4+1’ 협의체에서 공수처 기소권을 견제하는 ‘기소심의위원회’ 설치를 없던 일로 하기로 지난 23일 결정했다. 기소심의위원회는 공수처의 막강한 권력을 감시하는 공수처 유일의 통제 장치다. 반면에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안의 하나로 검찰이 불기소할 때 그 이유를 외부에 공개해 일반인들의 감시를 받게 할 것을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소수의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기소심의위원회는 거부하면서 여론에 의한 감시를 민주적 통제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겠다니 현 정권이 말하는 민주적 통제가 무엇인지, 그걸 통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든다.
‘민주적 통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의 기본 이념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말할 때마다 ‘민주적 통제’를 빼놓지 않았다. 지난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될수록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선을 앞두고서는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지 않도록 민주적 통제가 제대로 행해지는 검찰로 거듭나라는 게 국민 요구”라고 했다.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사와 기소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검찰이니 통제는 당연하다. 문제는 민주적 통제의 내용과 방식이다. 현 정권이나 현 정권 지지세력이 말하는 민주적 통제라는 것을 보면 불특정 다수 일반인들의 직접 참여에 의한 통제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주장이 우려되는 이유는 그게 현실화될 경우 ‘포퓰리즘 통제’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문적 검토나 심사숙고를 거치지 않으면 판단할 수 없는 사안까지 일반인들의 감정과 느낌으로 옳고 그름을 정하는 여론몰이, 인민재판식 통제가 포퓰리즘 통제다.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지난 9일 권고한 검찰 불기소 결정문 공개부터가 그렇다. 불기소 결정문이란 불기소 이유를 기재한 문서를 말한다. 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이 고위 공직자의 비리 등 중요 사건 피의자들을 불기소한 때는 불기소 결정문을 검찰청 홈페이지에 게시해 일반인들이 열람이나 검색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공개 대상 피의자는 국회의원, 장·차관, 판·검사,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 고위 공직자나 기타 언론에 보도돼 사회적 이목을 끈 중대 사건 관련자다. 검찰개혁위는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하면 검찰권 행사의 적법성 및 불기소 처분의 적정성 여부를 외부에서 쉽게 감시할 수 있다”며 “이는 검찰권 행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불기소 결정문을 고소인이나 고발인 같은 사건 관련자들만 검찰에 신청해서 볼 수 있다.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하면 법원이 재판을 통해 수사와 기소의 적정성 여부를 심사한다. 그런데 불기소하면 재판 절차가 없어 불기소가 타당한지를 재판을 통해서는 검증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불기소 결정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장치를 둘 필요는 있다.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하면 검찰이 여론의 비판을 의식하게 되고 그래서 불기소 결정에 좀 더 신중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검찰개혁위,"불기소 땐 그 이유 외부 공개하라"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검찰 통제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는 어렵다. 검찰개혁위원회는 "외부에서 쉽게 감시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불기소 결정의 타당성 여부를 판단하려면 법리, 증거 법칙, 적법 절차, 판례 등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일반인들에게 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설사 이런 지식을 갖춘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불기소 결정문만을 보고 타당성 여부를 검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많게는 수백, 수천 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을 일일이 읽어봐도 판단이 쉽지 않을 텐데, 고작해야 몇 장짜리 결정문만을 보고 어떻게 "쉽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하면 법리와 합리적 추론보다는 감정과 느낌에 따른 심판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처럼 세상 모든 일을 진영에 따라 흑백 논리로 판단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불기소된 당사자가 우리 편이면 불기소 결정이 무조건 옳다고 옹호할 것이고, 반대 편이면 무조건 잘못됐다며 편파 수사, 축소 수사, 봐주기 수사라고 비난할 게 뻔하다. 당장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아무개 불기소 결정이 잘못됐다”는 청원이 올라오고 여기에 동참해달라는 여론전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전 정권 지지자와 현 정권 지지자 간에 세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청원 동참자들이 많을수록 불기소 결정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검찰을 비난하고 나설 것이다. 이게 바로 인민 재판이고 ‘포퓰리즘 통제’다. 사법 절차를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증거와 논리에 따라야 할 수사와 기소가 세 대결의 정치판으로 바뀌고 만다.
참여연대가 지난 10월 개최한 검찰 개혁 토론회에서는 검찰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 지방 검사장을 주민 직선으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검사장 직선제는 이번에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다. 현 정부와 ‘코드’를 같이하는 일부 시민단체나 교수들이 진작부터 주장해왔다. 이들은 지방 검사장을 주민 직선제로 해야 검찰의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되고 민주적 통제도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진영 논리로 두 쪽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에서 검사장을 직선으로 뽑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눈을 감아도 훤히 보인다. 보수 진영 대 진보 진영, 현 정권 지지파와 반대파 간의 세 대결이 될 게 뻔하다. 시·도교육감 선거가 바로 그랬다.
더 큰 문제점은 선거 이후다. 보수 진영 지지로 당선된 검사장과 진보 진영 지지로 당선된 검사장 간에 형사 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똑같은 민노총 불법 행위나 집회시위법 위반 행위를 놓고 보수 진영 검사장은 수사와 처벌의 강도를 높이고, 진보 진영 검사장은 낮출 수 있다. 똑같은 고위 공직자 비리라도 그가 보수 정권 사람이냐 진보 정권 사람이냐에 따라 수사의 강도와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국가 형벌권은 법과 원칙에 따라 전국적으로 일관되게 집행돼야 한다. 그 형벌권을 검사장마다 자기 지지자들을 의식한 정치적 고려에 따라 행사하면 그게 바로 포퓰리즘이다.
◆일본은 '일반인 11명+변호사 참여' 심사회서 검찰 통제
포퓰리즘 방식이 아니더라도 검찰을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검찰심사회와 미국의 기소 배심(대배심) 제도다. 대배심이 부당한 기소를 막기 위한 것인 데 비해 검찰심사회는 부당한 불기소를 막기 위한 것이란 점에서 검찰심사회를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검찰심사회는 일반 시민 중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심사 위원 11명으로 구성되며,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할 경우 그 타당성 여부를 심사한다. 검찰심사회의 구성과 운영 방식에는 주목할 대목이 많다. 먼저 검찰심사회는 검찰 소속이 아니라 각 지방 법원과 지원 소속이다. 2017년 기준으로 전국 법원과 지원 소재지 165곳에 검찰심사회가 설치돼 있다. 심사위원 추첨은 법원이 임명한 심사회 사무국장이 판사와 검사가 참석한 가운데 실시한다.
불기소 처분의 타당성 심사는 검사의 요청에 따라 하는 게 아니다. 불기소 처분된 사건의 고소인이나 고발인 또는 범죄 피해자와 그 유족의 신청을 받아 한다. 신청이 없더라도 검찰심사회 직권으로 심사할 수도 있다. 심사회는 검사에게 출석해 진술하거나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할 수 있고, 공공기관과 민간단체에 사실 조회를 할 수 있다. 신청인 또는 증인이나 참고인을 불러 심문할 수도 있다. 심사위원의 법률 지식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변호사 중에서 심사 보조원 1명을 위촉해 법률적 조언과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심사회는 2012~2016년에 매년 평균 2000여건을 심사했다.
검찰심사회는 불기소가 잘못이라고 판단되면 ‘기소가 상당하다’는 의견을 낸다. 검사가 여전히 기소를 하지 않으면 재심사를 한다. 여기서 또 기소 의결이 나면 자동 기소된다. 이 경우 법원은 변호사 중에서 공소 제기와 유지를 담당할 사람을 지정해 검사 직무를 하게 한다.
일본의 검찰심사회에 비견될 수 있는 제도가 우리나라 검찰에도 있다. 2010년 도입된 검찰시민위원회라는 것이다. 시민위원회는 일반 시민 11~15명으로 구성되며, 기소나 불기소의 적정성 여부를 심사한다. 그러나 일본 검찰심사회와 비교해 여러 면에서 문제점이 많다. 시민위원회는 법원이 아니라 검찰청 소속이다. 위원 위촉도 검찰이 한다. 위원회 심사는 검사가 요청할 때만 한다. 위원회는 검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을 뿐 증인을 심문하거나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는 없다. 위원회 결정에 검사가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도 없다.
이처럼 시민위원회는 구성과 운영이 모두 검찰 주도로 이뤄진다. 그만큼 검찰 통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민위원회 도입 목적은 검찰권 행사에 국민 의견을 반영해 수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그 목적인 것이다. ‘민주적 통제’를 그처럼 외치는 문재인 정권이라면 시민위원회라도 대폭 보완해서 일본 검찰심사회만큼이라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법 운영도 '촛불' 식으로 하면 큰 문제
그러나 현 정권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표명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기는커녕 공수처 법안에 있던 기소심의위원회마저 없애버렸다. 당초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에 올라 있던 법안에는 일반 시민 7~9명으로 구성된 기소심의위원회가 있었다. 공수처 검사는 기소심의위원회 의결에 따라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했다. 기소심의위원회는 공수처 기소권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민주적 통제 장치로서, 일본의 검찰심사회에 비하면 초보적 수준이다. 그런데 이마저 없애버린 것이다.
불기소 결정문 공개가 불특정 다수 일반인들의 참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내지 참여민주주의 방식이라면, 공수처 기소심의위원회나 일본의 검찰심사회는 미리 선정된 소수의 시민이 참여하는 간접민주주의 내지 심의민주주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참여민주주의 방식은 민주성은 최대한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은 검토와 토론 과정을 거칠 수 없고, 전문성보다 대중의 여론과 검정에 좌우되기 쉽다. 그래서 포퓰리즘으로 흐를 위험이 크다. 심의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보다 민주성에서는 좀 떨어지지만, 심사숙고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 포퓰리즘은 피하면서 시민 참여에 의한 민주적 통제는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참여민주주의 방식으로 할 일이 있고 심의민주주의 방식으로 할 일이 있다. 보통사람의 일반적 상식으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전자로 해도 문제 없다. 그러나 전문성과 깊은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면 후자로 해야 한다. 불기소 타당성의 검증 같은 검찰 기소권 통제는 일반적인 상식과 감정으로 할 문제가 아니다. 전문적 지식과 심사숙고가 필요한 사안이다. 참여민주주의 방식보다 심의민주주의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참여민주주의 방식만을 중시한다. ‘촛불’에 맛 들인 정권이라 사법 운영도 촛불 혁명 식으로 하려는 것이라면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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