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데 마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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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완 기자
입력 2020-01-08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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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지원(변호사)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

▲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 오지원 사무처장

2009년 형사법정, 작고 마른 체구의 아주머니가 수의를 입고 피고인석에 서 있다. 그녀의 까맣고 주름진 얼굴은 그녀의 삶이 녹녹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몇 년전에 절도죄로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고 또다시 마트에서 그림을 훔치다 걸렸다. 그림 가격은 30만원 정도였지만 동종 전과가 여러 번이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상태였다.

보통 마트절도의 경우 생필품을 훔쳐 나오는 게 보통인데 그녀는 자신의 몸집보다 더 큰 그림을 가지고 나왔다. 낑낑대며 큰 그림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 씨씨티브이에 다 찍히고 있는데도. 그 그림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녀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둔 주부였다. 그녀의 남편 월급은 한 달에 200만 원.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라고 하지만 그녀에겐 지체장애아인 아들이 있었다. 고등학생인 그 아들은 아직도 엄마의 손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적합한 특수교육을 시키는 데는 많은 돈이 들어갔다. 엄마는 18년이 되도록 외출 한 번 마음 놓고 해 보지 못하고 아이를 위해 늘 집과 집 주변을 멤돌았다. 자신을 위해 생활비를 쓸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늘 야근에 시달리던 남편은 착했다. 언제나 지친몸을 이끌고 밤늦게 돌아왔고, 그녀와 함께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어두운 집에서 자라지 않는 아이와 함께, 아니 '혼자'였고 우울증을 앓게됐다.

그 와중에 시어머니가 심하게 아프셨고 그 돌봄노동까지 모두 그녀의 몫이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마트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밝고 환하고 잘 정리된. 그녀는 그 곳에서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고 집 근처에 마땅히 갈 곳도 없던 그녀는 자주 마트에 갔다. 그리고 그 그림을 발견했다.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30만 원은 그녀에게 너무나 큰 돈이었다. 그림은 그녀가 소유하고 싶지만 소유할 수 없는 부러운 이들의 삶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충동적으로 그림을 가지고 나왔고, 이렇게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형벌과 구금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몇 년간의 우울증 치료와 적절한 외출과 산책, 미술관과 공연 관람, 돌봄노동의 분배를 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월 200만 원의 4인 가정, 그것도 아픈 이들이 있는 가정에서 그녀가 그런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 노동을 대체할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인력까지 필요하다.

이런 여건은 개인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삶의 무게가 갑자기 몇 배 무거워지는 각종의 위기 앞에서 좌절하고 쓰러지며 때때로 범죄라는 일탈행동도 하게 된다.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은 그녀 자신이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극도의 빈곤 속에서 한계를 극복했던 사람이다. 그녀는 하버드 졸업생들에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인간의 힘, 상상력을 기초로 세상을 바꾸라"고 했다.

"지위와 영향력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것, 힘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것, 자신과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간직할 것"등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데 마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라고... 그녀의 범죄 뒤에 녹아있는 그녀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녀를 위해 공연관람 3번 무료로 시켜줄게 하는 일시적, 시혜적인 정책을 펴내는 일꾼이 아닌,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지역 네트워크 안에서 아이를 맡기고 금전적인 부담 없이 공연을 보고 박물관에 가고, 공부를 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또 그녀의 남편이 야근 없이 적정한 시간 일하고 가정 안에서 돌봄노동을 함께 나누는 가정친화적인 직장을 만들고자 하는, 그런 대안을 가진 일꾼을 기대한다.

같은 맥락에서 공공 보육시설과 유치원이 많이 생기는 일은 정말 바라는 일이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OECD국가 중 하루 평균 근로시간 최장, 야근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에서 공공 보육시설만 늘어난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까?

아무리 잘 갖춰진 시설이라 해도 하루 종일 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파김치가 되도록 일해야 한다면 그것이 국민들이 바라는 행복인가. 부모들은 적정 시간 근로하고 적정 시간 육아를 통해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나는 법조인, 또는 공무원이기 이전에 국민의 자세에서 말하고 싶다. 세상을 바꾸는데 마법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리더의 섬세한 상상력, 공감능력과 배려는 필수이다. 국민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일꾼들의 약자 공감력, 상상력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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