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도전’이었다.”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이 20일 장례위원장으로서 고(故)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을 추억하며 꺼낸 말이다. 황 부회장은 “부장 시절부터 신 명예회장을 모셨다. 24년간 같이 일하면서 추억이 많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생전에 고인은) 창업은 창조다. 열정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도 많이 하셨다”면서 맨손으로 츄잉껌 사업으로 시작해 국내 재계 순위 5위의 대기업을 일군 신 명예회장의 리더십을 칭송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리더십은 흔히 ‘현해탄 경영’으로 회자된다. 1949년 일본에서 츄잉껌이 히트를 치면서 제과업으로 기반을 닦았다. 이후 1967년 한국에서도 롯데제과를 설립,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그의 셔틀 경영이 시작됐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홀수 달에는 한국,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무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했다. 아무리 재벌 총수라도 웬만한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신 명예회장이 향년 99세까지 장수할 정도로 탁월한 체력을 소유한 점도 현해탄 경영을 가능케 했지만, 그의 ‘도전 정신’이 기반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분석이다.
‘유통 거인’의 멈추지 않는 열정은 고스란히 신동빈 롯데 회장에게 이어졌다. 신 회장 역시 한-일 롯데를 오가며 살뜰히 경영을 챙기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일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꾸준히 배워, 한국 롯데의 주요 임원들과도 무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형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한국 임원들과 소통할 때 통역이나 아내를 앞세워 대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신 회장은 아버지 신격호 명예회장이 경영했을 당시 한국어와 일본어를 결재 서류에 동시에 쓰게했던 관례도 타파했다. 한국에서는 한국어만, 일본에서는 일본어만 쓰도록 한 것. 이로 인해 롯데 계열사 대표와 주요 임원들이 일어를 별도로 공부해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됐다.
신 회장은 일본에서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MBA를 마쳐 영어에도 능통하다. MBA를 마친 뒤 노무라증권 영국 런던지점에서 7년여간 근무했을 정도로 국제 경제에 대한 감각과 식견을 쌓았다. 신 회장의 이러한 글로벌 경영 감각은 ‘뉴롯데’로 가는 초석이 됐다.
신 회장은 일본 롯데상사 이사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한 뒤,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상무로 한국 롯데에 첫 입사해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후 신 회장은 아버지를 보필하며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러시아, 미국 등에 식품, 화학, 유통, 호텔 사업을 다방면으로 펼쳐왔다.
특히 지난해 롯데케미칼의 미국 투자가 단연 화제였다. 지난해 5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롯데케미칼 에탄크래커(ECC) 공장을 준공한 것. 투자 금액만 총 31억 달러(약 3조6000억원)에 이른다.
신 회장의 통 큰 투자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빅 이벤트’를 성사시켰다. 신 회장은 준공식 직후 미국 백악관 오벌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한국 재계 총수 중 트럼프와의 첫 만남이자, 신 회장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순간으로 기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 회장의 과감한 투자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직접 소개하며 치하했다.
롯데 측은 신 명예회장의 타계 이후에도 신동빈의 글로벌 경영은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일 양국에서 ‘원 리더’ 입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데다, 아버지 별세를 기점으로 형제간 화해 가능성도 점쳐지기 때문이다.
한때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지만, 이번 장례를 함께 치르면서 공감대를 형성한 두 사람이 화해의 물꼬를 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황각규 부회장은 이날 기자브리핑에서 전날 신동빈, 신동주 형제가 초례에 참석한 상황에서 대화를 나눴는지를 묻자 “나란히 계셨으니 교감하지 않으셨겠냐”면서 둘 사이의 화해 무드를 조심스레 전했다.
한편 신 명예회장이 별도의 유언장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고인의 롯데 관련 소유 지분은 분할 상속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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