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별세를 기점으로 신동빈-신동주 형제 간 화해, 유산 분배 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15년 일명 ‘형제의 난’으로 불린 경영권 분쟁을 야기한 신동빈 롯데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은 사실상 5년여 만에 한자리에 마주 섰다.
지난 19일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에서 부랴부랴 달려온 신동빈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은 서울아산병원 병실에서 임종을 지켰고, 빈소가 꾸려진 후에도 상주로서 함께했다.
특히 별세 당일 저녁에는 신준호 푸르밀 회장 등 일가족 30여명이 모인 가운데 초례(장례를 시작하고 고인을 모시는 의식)를 함께 치렀다. 롯데그룹도 모처럼 창업주 일가가 한자리에 모인 모습을 공개하며 두 사람의 화해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장례위원장인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은 20일 기자 브리핑에서 두 사람에 대해 “(빈소에서 보니) 교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지난 1년 3개월 동안 서로를 외면한 채 직접 소통하지 않았다. 2018년 10월 신동빈 회장의 국정농단·경영비리 재판 2심 선고 이후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공식석상에서도 만난 일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의 출소 이후 신동주 전 부회장이 화해의 편지 등을 보낸 사실을 공개했지만, 이것마저 한·일 롯데 ‘분리 경영’을 전제로 한 것이라 그 진정성을 의심 받았다. 결국 신격호 명예회장도 두 아들의 화해를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러나 신 명예회장의 장례식 이후 두 사람이 자연스레 화해할 경우, 한·일 롯데는 보다 안정적인 경영 여건을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변수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계속해서 일본 롯데 경영권을 노리며 이사직 복귀에 나설 경우다. 그동안 두 사람은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격한 다툼을 벌이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부재 이후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 복귀를 노린다면 과거보다 관계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약 1조원 규모에 달하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유산 분배가 향후 경영권에 영향을 줄지도 관심사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올해 1분기 기준 국내에서 롯데지주(지분율 3.10%), 롯데칠성음료(1.30%), 롯데쇼핑(0.93%), 롯데제과(4.48%) 등의 상장사 지분을 보유했다. 비상장사인 롯데물산 지분(6.87%)도 갖고 있다.
일본에선 광윤사(0.83%), 롯데홀딩스(0.45%), LSI(1.71%), 롯데그린서비스(9.26%), 패밀리(10.0%), 크리스피크림도넛재팬(20.0%) 등의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 4500억원대의 인천 목상동 골프장 부지도 신 명예회장의 부동산이다.
하지만 정신건강(치매) 문제로 신 명예회장의 재산 관리는 2017년부터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으로 확정된 사단법인 선이 맡아왔다. 한정후견이란 일정한 범위 내에서 노령, 질병 등으로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법률행위를 대리하는 제도다.
신 명예회장이 사망한 만큼 한정후견은 종료되고 법에 따른 재산의 상속 절차가 개시된다. 유언장이 있으면 그에 따라 상속이 이뤄지지만, 롯데그룹 측은 유언장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소유 지분은 아내와 자녀들에게 분할 상속될 가능성이 크다.
신 회장이 엄청난 재산을 남겼지만, 향후 유산 분배 문제가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을 크게 흔들진 않을 것이란 게 재계의 중론이다. 신 명예회장의 일본 비상장 계열사 보유 지분이 크지 않고, 지난해 6월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재선임되는 등 옥고를 치르는 중에도 일본 주주들의 신임을 받는 등 ‘원톱 체제’를 굳힌 상태다.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일본 롯데 이사 선임건은 무려 6차례나 부결되면서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정리됐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본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도 최종적으로 패소해 경영복귀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이를 반영하듯 실제로 이번 장례 기간 동안 일본 롯데 관계자 수십명이 빈소를 찾아, 신동빈 회장을 위로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재계 관계자는 "신 명예회장의 재산 분배는 한정후견 절차에 따라 이뤄지며, 보유 지분 전부가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100% 갈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어떤 식으로 배분되든 롯데홀딩스 핵심 주주들이 신동빈 회장을 절대 신뢰하고 있어, 현재 롯데 지배구조나 경영권을 흔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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