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장이 이번 인사에서 물러날 것이란 업계 일각의 관측을 보기 좋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이 사장 퇴진설의 근거는 비록 건설업 업황 침체 탓이긴 해도 지난해 경영실적이 저조한 데다 삼성그룹의 전반적인 임원 인사 구도가 50대 젊은 최고경영자(CEO) 발탁으로 가닥이 잡혔던 점 등이다.
특히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인사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5년 제일모직과 합병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았던 이 사장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해임을 촉구한 것도 이 사장 거취의 불투명성을 높인 이유다.
그러나 정작 인사의 뚜껑을 연 결과 당초 관측과 달리 이 사장이 올해 유임됐다. 그 배경으로 무엇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은 점이 꼽힌다.
이 사장은 기업 중장기 경영 전략을 짜는 대표 전문가로 알려졌다. 또 중장기 경영전략에 맞춰 사업 성과를 구체화할 수 있는 추진력과 재무적 안정도 도모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장의 이같은 전문성과 업무능력은 과거 그룹 경영의 사령탑이었던 구조조정본부 경영전략실 임원으로 일할 때 이미 그룹에서 검증받았고 이런 점이 이 부회장 눈에 들어 이 부회장의 든든한 '믿을 맨'으로 자리잡았다는 게 회사 안팎의 전언이다.
이 사장은 그룹 구조조정본부 경영진단팀 담당임원, 전략기획실 전략지원팀·경영진단파트 담당임원을 지냈다.
또 삼성전자에서 감사팀과 경영진단팀 담당임원으로 재직한 후 2015년부터 삼성물산 모든 사업부문의 CFO를 겸임했다. 그 만큼 삼성물산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무 스타일이 치밀하고 깐깐하되 합리적이란 소문도 자자하다.
이 사장은 1985년 삼성SDI 전신인 삼성전관에 입사해 관리팀, 해외운영팀, 말레이시아법인 지원팀, 감사팀을 거쳤다. 삼성SDI PDP사업부 멕시코 법인장도 맡았다. 이 때문에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이 사장은 삼성그룹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핵심업무를 맡았다”며 “삼성물산에서도 CFO를 역임하는 등 역량있고 검증된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 사장이 시민단체 퇴진 압박, 실적 부진 등의 악재 속에서도 회사의 평가와 이 부회장의 신임을 확인한 만큼 올해에는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당장 지난해 큰 폭으로 떨어졌던 실적을 회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약속했던 ‘2020년까지 매출 60조 달성’의 원년을 맞아 주주들의 기대에도 부응해야 해서다.
이 사장은 취임 첫 해인 지난 2018년 영업이익 1조1000억원으로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으며, 시공능력평가 1위를 유지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지난해는 사뭇 달랐다. 실적이 곤두박질한 것이다. 이 사장이 이끄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30.1%가 감소했다.
건설부문의 수주잔고 회복도 그가 이뤄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지난해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수주잔고는 2017년 대비 10% 넘게 감소했다.
삼성물산은 2016년 1만171가구를 공급했지만 지난해에는 3331가구 공급에 그치는 등 주택사업에서의 소극적인 자세가 가장 큰 영향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 하락폭은 5대 건설사 중 가장 큰 수치다.
올해에는 지난 몇 년간 소극적이었던 도시정비사업시장의 재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2015년 이후 재건축과 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에서 새로운 수주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분양, 건설, 공급 등 기존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국내 주택사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수주잔고의 급락으로 이어지면서 이 사장은 지난해 1월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재건축사업에 참여하며 3년만에 도시정비사업 진출에 나섰다.
올해에는 관련 조직 개편을 통한 도시정비사업 수주확대로 매출 도모를 이뤄야한다는 숙제를 안게 됐다.
이 부회장이 공들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이 사장의 주요 과제로 손꼽히고 있다.
이 사장은 지난해 말 사우디아라비아에 직접 날아가 80억 달러 규모의 키디야 프로젝트의 복합 스포츠시설 건설사업에서 협력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맺었다.
아직 초기이지만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다면 삼성그룹 계열사의 동반진출은 물론 삼성물산의 수주 확대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이 사장의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 사업을 구체화한다는 전략이다.
이 부회장의 신뢰를 한몸에 받는 만큼 이 사장의 어깨도 그만큼 무거워진 셈이다.
이 사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2020년은 삼성물산의 역량과 경쟁력을 보여주고 새로운 10년의 성장을 약속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사장이 올해 산적한 과제를 안고, 성과를 통해 반등을 이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