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동방] 삼성전자가 연구·개발(R&D)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규모는 영업이익 절반을 상회하고 글로벌 2위를 기록할 만큼이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하락하는 등 투입비용 대비 효율성은 너무 낮다. R&D 성과가 언제쯤 가시화할 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전자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19조9100억원이다. 연구·개발비 글로벌 2위에 이름을 올린 전년 18조3500억원보다 소폭 늘었다.
반면 지난해 매출은 230조4000억원으로 전년(243조7700억원)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영업이익도 27조7700억원을 기록하면서 2018년 58조89억원의 반토막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삼성전자는 꾸준히 연구개발비를 늘려왔다. 지난 2009년 R&D 비용이 7조65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10년 새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20조원이라는 규모는 삼성전자가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의 70%가량을 R&D에 투입한다는 의미다.
◆우수인력 영입 잇달아···국내외 연구소 37곳
삼성전자는 첨단 기술을 고급 연구인력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연구 분야 최고직인 '펠로우'에 위구연 하버드대 전기공학·컴퓨터과학과 석좌교수를 필두로 전 프린스턴대 교수 세바스찬 승 부사장·전 코넬대 교수 다니엘 리 부사장 등이 삼성전자에 들어와 R&D를 이끌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 연구 인력만 4만8000여명, 세계적으론 6만7000여명을 보유하고 있다. 직접 운영하고 있는 연구소만 37곳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영국 케임브리지·캐나다 토론토·러시아 모스크바에 AI연구소를 세워 현지 인재 영입에 힘쓰고 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13만5433건에 달하는 특허 주인이 됐다. 미국에 등록된 특허는 총 5850개로 2위에, 유럽에서는 5850건으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대부분 반도체·스마트폰·TV 등에 관한 특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개방형 반도체 설계자산(IP) 시스템 '리스크파이브'를 이용해 2세대 5G(5세대 통신)용 통신칩을 생산했다. 이 칩은 올해 선보일 삼성전자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넣을 계획이다. 리스크파이브 IP로 개발한 AI 이미지센서는 같은 시기 자동차용 반도체에 장착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할 때마다 해외 업체에 사용료를 지급했다. 모바일 반도체는 영국 ARM에, PC와 서버용 반도체는 미국 인텔에 각각 사용료 냈다. 두 회사가 시스템 반도체 설계도 본질이나 마찬가지인 IP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삼성전자가 리스크파이브 무료 반도체 설계도를 사용하면 생산 원가를 줄일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인텔의 견제와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공정기술 측면에선 지난해 4월 업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공정을 적용한 7나노(㎚, 1㎚=10억분의 1m) 제품 기술 개발에 성공해 양산을 시작했다. 6나노 공정 기반 제품은 대형 고객과 생산 협의를 하고 있다. 제품 설계가 완료되면 양산할 예정이다.
◆수익성 저조로 R&D 성과 가시화 더뎌
미래먹거리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비를 늘리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지난해 수익성이 큰 폭으로 후퇴하면서 R&D 성과 가시화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듯 보인다.
삼성전자 사업부문은 크게 CE·IM·DS(반도체·DP)·Harman 4개 부문으로 나뉜다. IM부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매출이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마찬가지다. 그중 지난해 가장 크게 매출과 영업이익이 하락한 사업부문은 DS 중에서도 삼성전자 주력사업인 반도체다.
지난해 반도체 사업부문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64조9400억원, 14조200억원이다. 전년 매출액 86조2900억원과 영업이익 44조57억원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실적 하락은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 속 정보통신기술(ICT) 수요 감소 탓이다. 2018년만 해도 연간 매출 중 30%를 웃돈 중국 시장이 무역갈등 격화에 따라 지난해 20%대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지난해 바닥을 찍은 반도체 D램 가격이 실적 하락의 직격탄이었다. 연구개발비와는 무관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내려앉는 수모를 겪었다. 같은 기간 인도 스마트폰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에 밀려 시장점유율 3위로 내려앉았다. 때문에 외부 환경을 통제하고 수익성 개선을 위해 규모 경제를 통한 원가절감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은 4차 산업혁명 엔진인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2030년 세계 1등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이를 위해 마련한 133조원 투자 계획 집행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산업 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파운드리(OEM‧위탁생산)다. 삼성전자 지난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17.8%로 1위인 대만 TSMC보다 34.9%포인트 낮다. 삼성전자는 58조원을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에 투입하면서 TSMC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투자 규모는 2018년 시스템 반도체 투자액의 두 배 수준이다.
올해 대규모 생산 공정도 전환할 예정이다. 공정 전환이 원활히 진행되면 원가절감에 달성하면서 수익성 개선도 꾀할 수 있다. 더불어 5G 시장 성장과 고화소 센서 채용 확대에 따른 고객 수요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디스플레이 시장에도 초격차를 더욱 벌려 갈 예정이다. 중국 저가 물량 공세로 고전하고 있는 중소형 디스플레이는 패널 생산 가동률을 높이고 판매를 늘리면서 폴더블 등 신규 제품에 대한 고객 수요에 대응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연간 판매량의 10%(약 3000만대)로 알려진 제조개발생산(ODM) 비중을 30%까지 늘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또한 가장 큰 목적은 원가절감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최근 역성장 하는 가운데 중저가 스마트폰 원가절감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번 신종코로바이러스 사태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과감한 투자를 통한 ’초격차 전략‘으로 실적 반등을 꾀하는 듯 보인다. 초격차는 시장 상황이 어려울 때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투자가 기반이다. 공급과잉은 수익성 악화를 유발한다. 언제나 그랬듯 승자를 결정하는 것은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지다. 지금 덜 벌면 미래 이익이 커진다. 규모의 경제는 선순환한다. 격차는 가격 지배력이다. 사업 시작 10년 만에 세계 1위에 올라서 현재까지 1위를 유지하고 있는 D램도 그랬다.
삼성전자가 규모의 경제를 통해 R&D 성과 가시화 시점을 가능한 빨리 당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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