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1983년 8월 24일 육군에 입대해 1983년 10월 25일 육군 제7보병사단 제3연대 제4대대 제3소대에 자대배치 받았다. 1984년 군단 군견병으로 차출돼 1985년 5월 경 육군 제7보병사단 전초대대 325GP에서 군견병으로 근무하다가 1985년 6월 20일 절취한 수류탄 1발로 자폭, 전신파면창으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당시 군 수사기관은 A씨의 자살 원인에 대해 평소 아버지의 잦은 주벽으로 인한 가정불화와 장기간 초소(GP) 근무에 대한 회의를 느낀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유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휴가를 나와 가족들에게 ‘선임하사의 구타 및 폭언이 너무 심해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고, 가족들이 ‘조금만 참아라’고 조언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35년 희생 대가, 보상금 2000만 원과 가해자 처벌 불가능
그러나 A씨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A씨의 명예 회복을 위해 35년의 세월을 쏟아부은 유족들에게 돌아온 것은 보상금 명목으로 지급될 2000만원이 전부였다.
유족들은 군과 가해자를 상대로 국가배상을 제기하고자 했다. 그러나 국가배상법 상의 이중배상금지 조항이 발목을 잡았다.
헌법 제29조 제2항은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해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라고 규정해, 군인·군무원 등에 대한 이중배상금지가 명문화돼 있다.
이중배상금지에 관한 헌법 조항은 1967년 국가배상법의 전면 개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국가배상법은 1961년 제정, 1967년 전면개정되면서 군인·군무원은 직무수행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국가보상제도에 의해 별도의 보상을 받기 때문에 다시 배상을 받는 것은 이중배상이라고 판단해 금지했다.
◆이중배상금지 조항에 또다시 눈물, 합당한 보상받을 방안은
유족들은 헌법에 명시된 이중배상금지 조항에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A씨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직계 가족이 없는 상태(부모 사망, 자녀 없음)이기에 국가유공자나 보훈보상대상자 신청 자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A씨를 괴롭혀 죽음에 이르게 한 선임하사는 공소시효 만료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고, 이미 전역하였기에 군 당국의 징계도 받지 않았다.
현재 유족들이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은 A씨가 당한 가혹행위가 아닌 국가기관의 부실했던 수사에 초점을 맞춰 승소하는 것뿐이다.
2017년 국가배상 판결이 좋은 예다. 육군부사관으로 근무하던 B중사는 1994년 부대 창고에서 스스로 총을 쏴 사망했는데, 군 당국은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한 사망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유족들은 2016년에 재조사를 요청했다. 조사 결과 해당 부대 중대장의 가혹행위로 인해 B 중사가 자살한 사실과, 중대장이 B중사의 유서를 발견한 뒤 이를 소각해 사건을 은폐한 사실이 밝혀졌다.
B중사는 순직이 인정됐다. 이에 유족들은 국가가 사망 원인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당시 군 수사기관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라며 B중사 유족에게 2억 4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한민국은 성문헌법국가다. 따라서 헌법개정 절차를 통해 헌법개정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중배상금지에 관한 헌법 조항의 위헌성을 제거할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A씨 유족들이 B중사 판례를 참고해 동일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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