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십년간 ITC가 내린 조기패소(Default Judgment)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은 최종결정에서 바뀐 적이 없다는 점에서 SK이노의 위기감은 크다. 양사가 전향적인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SK이노의 미국 내 배터리 사업 손실은 막대할 전망이다. 다만 수년간 계속된 소송 과정에서 피해규모 산정이 쉽지 않아 협상 타결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22일 LG화학과 SK이노에 따르면, 미국 ITC는 21일(현지시간) 공개한 판결문을 통해 "SK이노의 문서 훼손 등 증거인멸 행위는 영업비밀 탈취를 숨기기 위한 범행 의도를 가지고 행해진 것이 명백하다"면서 "조기패소 판결만이 적합한 법적제재"라고 밝혔다.
특히 ITC는 "SK이노는 소송을 인지한 지난해 4월 9일부터 증거 보존 의무가 발생했으나,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소송 관련 문서를 삭제하거나 삭제되도록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특히 증거인멸 행위에 민감한데, 이번 소송은 증거인멸과 포렌식(디지털 증거보존) 명령 위반 등 법정 모독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ITC는 소송 과정에서 증거 보존을 제1원칙으로 삼는다.
ITC는 "SK이노의 증거인멸이 LG화학의 소송 진행에 피해를 준 것은 물론 판사가 공정하고 효율적인 재판을 진행하는 데도 걸림돌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기패소 결정이 단순히 SK이노에 대한 처벌뿐 아니라 "다른 사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위반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유사 소송의 전례로 삼을 것임을 시사했다.
ITC는 또한 SK이노의 행위로 인해 “LG화학이 피해를 본 것이 명백하다”고 판결했다. 이번 조기패소 예비결정은 ITC의 행정판사가 내린 것으로 ITC의 최종결정(Final Determination)은 오는 10월 5일까지다.
마음이 급해진 SK이노는 지난 3일 ITC의 예비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ITC가 다음달 17일까지 이의신청 검토 여부를 결정하는데 SK이노로선 큰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수십년간 영업비밀침해 소송에서 ITC의 최종결정이 예비결정과 달리 이뤄진 경우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특허침해 소송에서도 예비결정이 그대로 최종결정으로 유지된 경우는 90%에 이른다.
때문에 ITC가 10월 5일까지 예비결정 판결문 원안대로 최종결정을 내릴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SK이노의 미국 관세법 337조(저작권 침해 제재 규정) 위반 사실은 그대로 인정되고 수입금지 조치를 당하게 된다.
수입금지 조치가 시행되면 SK이노는 LG화학의 영업비밀을 침해해 생산했다고 인정되는 제품(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소재) 등을 미국 내에서 아예 팔 수 없게 된다. SK이노는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2022년 양산을 목표로 2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인데, 양산 계획 차질과 영업 손실이 막대할 전망이다.
때문에 배터리 업계는 ITC의 최종결정 전에 양사가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협상타결의 쟁점은 SK이노가 LG화학 측에 과거 손실 등을 감안해 산정할 예정인 배상금액이다. 수년 간의 피해 규모 산정을 두고 양사 간 이견이 첨예할 전망이라 상당한 시간 소요와 논란이 예상된다. LG화학 측은 SK이노 측이 제안하는 배상금액 협상안에 대해 배임 문제를 포함해 적정 수준을 면밀히 따질 것으로 보인다.
LG화학 관계자는 “조기패소 예비결정이 내려질 정도로 공정한 소송을 방해했던 SK이노의 행위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려있는 상태로 남은 소송 과정에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K이노 측은 “원만하게 (LG화학 측과) 합의하도록 최선의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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