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양성 판정 후 잠적했던 불법체류 베트남인을 모국어 문자메시지로 설득해 병원에 이송 시킨 '귀화 경찰관'이 화제가 되고 있다.
보건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새로운 확산 경로로 떠오른 부천 'A나이트 클럽(이하 A나이트)'에 대해 비교적 빠른 역학조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베트남 출신 귀화 경찰관 이보은 경장(34)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확인됐다. 만약 코로나19에 감염된 불법체류자가 계속 숨어 있었다면 A나이트 감염원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18일 방역당국과 경기 광주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이태원 소재 'B클럽'을 다녀왔던 베트남인 K씨(32)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여 지난 15일 지인이 사는 부천시 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아 검사를 받았다. 이태원 클럽 방문자는 신원을 묻지 않겠다는 방역당국 지침에 따라 K씨는 검사에 앞서 자신의 휴대전화 연락처를 제외하곤 이름과 주소 등 개인정보를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방역당국은 다음날인 지난 16일 양성판정을 받은 K씨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연락을 시도했으나, 불법 체류자였던 K씨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고 강제출국될 것을 우려해 휴대전화를 꺼놓았다.
휴대전화 위치 정보(GPS)를 조회해 경기도 광주시로 소재 확인은 됐으나 연락을 받지 않는 한 그의 거주지도, 직장도, 동선도 알 길이 막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가 확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경기 광주경찰서 소속 '이보은 경장'은 불법체류자라는 K씨의 신분을 고려해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 그의 '모국어'인 베트남어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베트남 사람인 경찰관입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 전화를 받아주세요." 이보은 경장은 국내에 단 8명뿐인 베트남 출신 귀화 경찰관이었다.
설득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번갈아 수십통 쌓인 뒤에야 K씨는 비로소 전화를 받았다. 가까스로 K씨와 연락이 닿은 이 경장은 K씨가 코로나 검사로 인해 불법 체류로 인한 처벌을 받거나 강제 출국을 당할 일이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계속 전했다. K씨는 한국말이 서툴러 당국이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불법체류자 단속을 유예한 사실을 몰랐고, 강제 출국이 두려워 집 안에 숨어있던 상황이었다.
이후 이 경장은 곧바로 방역당국에 이 상황을 보고해 K씨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방역당국은 K씨 주변 접촉자들을 검사해 직장 동료 S씨(43)의 확진 사실을 밝혀냈고, 또 지난 10일 자정을 전후로 부천 소재 'A나이트'에 다녀온 사실도 확인했다. K씨가 강제 출국을 우려해 확진 판정을 받고도 수면 아래로 숨어버렸다면 주변 동료 확진자는 물론 'A나이트'가 감염 경로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조차 영원히 묻혀 버릴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 경장은 "K씨는 언어도 서투르고 신분상의 어려움도 있어서 확진 판정을 받고 그야말로 '멘붕' 상태에 빠져 있었던 상황"이라며 "최대한 친근감을 느끼도록 안심을 시키려 노력한 게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이 되기 전 다문화 가족 센터에서 일했던 그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사건에 휘말리거나 남편에 의한 폭력 피해를 보는 경우를 많이 보며 도울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경찰이 되고 이런 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한편 방역당국은 이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9일 오후 11시 48분부터 10일 0시 34분 사이 부천 'A나이트'를 방문한 사람에 대해 자발적으로 진단검사를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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