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젠택배 매각에 나선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베어링PEA)가 엑시트 실현을 위해 콧대를 낮춰 시장 참가자들의 눈높이를 맞췄다. 로젠택배가 4000억원의 비싼 몸값으로 새 주인 찾기에 난항을 겪자 배당을 통해 매각가를 3500억원 수준으로 내린 것이다. 낮아진 금액에 시장 참가자들이 매력을 느끼고 매각 과정이 급물살을 탈지 귀추가 주목된다.
2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로젠택배는 지난 1월 모회사인 셔틀홀딩스에 500억원가량 배당을 했다. 셔틀홀딩스는 홍콩계 사모펀드 베어링PEA가 로젠택배 인수를 위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이다. 로젠택배 지분 100%를 갖고 있어 사실상 베어링PEA가 투자금 500억원을 회수한 것이다. 이로써 로젠택배의 몸값은 3500억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로젠택배는 국내 업계 4위 기업으로 당초 시장에 나왔을 때 롯데그룹, SK그룹, 카카오모빌리티 등 대기업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이들 모두 지난 1월 실시한 예비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높은 인수가격과 소비자 간 거래(C2C)에 치우친 사업구조 등이 불참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신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시장은 ‘인수가 4000억원이 너무 비싸다’고 입을 모았다. 로젠택배 점유율은 10% 안팎으로 업계 빅3(CJ대한통운·한진·롯데글로벌로지스)와 차이가 크다. C2C 모델로 사업을 영위하는 탓에 자체 물류터미널 설립비용 발생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규모가 작은 만큼 수수료 경쟁력이 낮고 인수 후에도 추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어서 가격이 너무 높게 책정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택배물량 증가와 양호한 현금흐름 등은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부분이다. 로젠택배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427억원, 244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9%, 18% 증가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449억원으로 전년 213억원에 비해 두 배 넘게 늘었다. 회계기준이 변경된 영향이 크지만 영업이익 등을 따져볼 때 성장한 것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코로나19 사태로 택배업계가 호황기를 맞은 점도 긍정적이다. 상장사인 한진의 지난 1분기 매출이 지난해 1분기보다 12.9%나 증가했다. 로젠택배 역시 비슷한 추이를 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JC파트너스,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PE), 웰투시인베스트먼트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은 재매각 시 투자금 회수에 어려움이 따를 가능성을 열어뒀다. 안정적인 실적을 기반으로 인수 후 안정적 배당 수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베어링PEA가 로젠택배의 기업가치를 높였음에도 엑시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즉 이런 사항들을 고려했을 때 4000억원은 역시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로젠택배의 기업가치를 두고 참가자들의 고민이 깊어지자 결국 베어링PEA가 눈높이를 맞추기로 결정했다. 큰 손들이 등을 돌리고 남아있는 인수후보자들의 자금 조달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미루는 등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로젠택배 몸값 인하는 인수희망 기업에 자금조달 부담 완화로, FI에는 엑시트 부담 감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시장에서 ‘매각 가격 조정’이 관건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신세계 등 인수전에 등을 돌린 대기업 등 전략적 투자자(SI)들도 다시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한편 베어링PEA는 로젠택배를 2013년 미래에셋운용PEF로부터 1580억원에 인수했다. 2016년 CVC캐피탈파트너스에 로젠택배를 3300억원에 넘기기로 하고 주식매매계약(SPA)까지 체결했다 무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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