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20일 오후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에 통과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중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린 조항에는 웹하드사업자 외에 카카오와 네이버 같은 부가통신사업자 역시 불법 음란물을 삭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가통신사업자’가 불법 촬영물 유통을 막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어 죄형법정주의를 어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7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회의 때도 의원들은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가능성과 죄형법정주의 위배를 우려했다. 개정안은 21대 국회의 개정안에 대안을 맡기자는 여당 측 의견과 함께 가결됐다.
◆n번방 방지법, 텔레그렘엔 ‘선언적 의미’뿐
이날 본회의에 앞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해당 법안이 텔레그램 같은 해외 사업자를 제재할 수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재차 나왔다. 개정안에는 “국외에서 이루어진 행위라도 국내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적용한다”는 조항이 포함됐지만 선언적 의미 이상의 효과는 없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하지만 의원들은 성 착취물의 2차 유통 방지 효과를 이유로 법안 통과에 의견을 모았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 책임자를 두도록 하는 내용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포함돼 통과됐다.
통신요금인가제 폐지를 다룬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1991년 도입된 기존 요금인가제는 유무선 통신시장에서 1등 사업자가 새 요금제를 낼 때 정부 인가를 받게 하는 제도였다. 1등 업체가 새 요금제로 시장 점유율을 과도하게 올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해당 법안은 2016년 정부가 발의했다.
이 때문에 1위 사업자 SK텔레콤은 통신요금과 이용 조건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인가 받고, KT와 LG유플러스가 비슷한 요금제를 내왔다. 앞으로 1위 사업자는 정부에 신규 요금제 인가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한 과거와 달리 알뜰폰 등 사업자가 다양해 요금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시민단체들은 해당 법안이 통신사만 배불리게 된다며 반대한다. 이미 현행법이 기존 서비스 요금 인하를 신고제로 두고 있어 저가 요금 경쟁 대신 요금 인상 빗장만 풀게 된다는 주장이다. 개정안에는 신고된 요금제가 “이용자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과기부 장관이 신고 접수일부터 15일 이내에 반려할 수 있다고 적시됐다. 시민단체 오픈넷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15일 안에 어떻게 시장 상황을 전부 파악해 요금의 적정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참여연대도 19일 이같은 유보신고제 조항의 불명확성을 지적했다. 기존 인가제는 공급비용과 수익, 비용·수익의 서비스별 분류 서비스 제공방법에 따른 비용 절감, 공정한 경쟁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 평가하도록 명시됐지만 이번 개정안은 부실 심사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디지털 적폐로 지목된 공인인증서 독점 지위는 전자서명법 개정안 통과로 21년만에 폐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정한 공인인증기관이 발급하는 공인인증서의 독점 지위를 없애고 공인·사설 인증서 모두 전자서명으로 인정하는 내용이다. 인증서는 향후 ‘카카오페이’와 이동통신3사의 ‘패스’ 앱 등 간편 전자서명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글로벌 CP(콘텐츠 제공 사업자) 역차별 해소법으로 불린 일명 ‘넷플릭스법’도 국회 문턱을 넘었다. 통과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대통령령이 정한 부가통신사업자가 안정 수단 확보와 이용자 요구 사항 처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국내에 주소 또는 영업소가 없는 부가통신사업자는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야 한다. 다만 국내 서버 설치와 망 사용료 협상 의무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은 해외 사업자의 서비스 안정 수단 마련을 위한 영업 방침 변화의 첫 계기로 평가된다. 그간 페이스북과 넷플릭스 같은 해외 인터넷사업자의 무임승차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카카오와 네이버 등 국내 사업자는 통신사에 수백억원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 넷플릭스 등은 이미 통신사들이 사용자에게 통신료를 받고 있어 ‘이중청구’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정부와 국내 업체를 상대로 한 해외 콘텐츠사업자들의 ‘공격형 방어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넷플릭스는 트래픽 관련 망 운용·증설·이용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지난달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8월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방통위는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자사 서버 접속 경로를 임의로 바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이용자 접속 속도를 떨어뜨렸다고 보고 2018년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했다. 서울행정법원은 현행법상 해외 사업자 제재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해 방통위 처분을 취소했다.
소프트웨어(SW)산업 진흥법 개정안도 통과돼 불공정 발주 관행이 차단될 길이 열렸다. 업계는 발주기관의 불확실한 요구사항과 사업 적정대가 미지급 등 공공 SW 사업의 고질병이 고쳐질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국가기관장은 SW 사업 발주 시 사업 요구사항을 상세히 작성해야 한다. 개정안에는 SW 지식재산권 보호 조항과 SW교육·안전 분야 신설, SW 융합 촉진과 SW 안전 확보 조항 등이 추가됐다.
SW업계는 진흥법 개정안 통과를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SW업계 생태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업계는 향후 시행령이 법 취지에 맞게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재난 대응 강화를 골자로 한 방송통신 발전 기본법 개정안은 정보통신망법과의 법체계 논란으로 법사위에서 보류됐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