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승계' 원칙은 옛말…'형만한 아우'에도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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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강지수 기자
입력 2020-07-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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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맏이의 눈물로 보는 승계의 법칙]

  • 한국테크·웅진·녹십자 등 형제 후계경쟁시키며 역량 검증

  • '차남 총수' 아버지, 첫째 고집 안해…둘째들 속내는 복잡

 

[데일리동방] 동생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창업자의 빈 자리를 채워온 장자 우선주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형만 한 아우’의 도약이 주목받는다. 때로는 장자를 우선하면서도 동생의 능력을 키우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냉엄한 경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승계의 새로운 유형이 코로나 시대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데일리동방은 기업 총수들이 오래된 가치를 버리는 이유를 찾아보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편집자]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조양래 회장은 지난달 차남인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 사장에게 그룹 지분 전량(23.59%)을 넘겼다. 첫째 아들과 둘째가 보유한 그룹 지분 차이가 두 배 넘게 벌어졌다. 
 
웅진그룹 후계 구도는 혼전을 거듭한다. 창업주 윤석금 회장 둘째 아들인 윤새봄 전무가 2개월 전부터 보통주 170만여주를 사들이며 형 윤형덕 전무 지분을 넘어서면서다. 윤새봄 전무가 보유한 ㈜웅진 지분은 16.41%로, 윤형덕 전무 12.97%보다 3.44%p(포인트) 앞섰다.
 
3세 경영을 시작한 녹십자도 둘째로 무게 추가 기우는 모습이다. 물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고(故)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 2세인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이 실질적 녹십자 창업주다. 현재 허영섭 전 회장 차남인 허은철 GC녹십자 대표가 실질적 후계자로 손꼽힌다. 그러나 현재 그룹을 이끄는 창업주 다섯째 아들 허일섭 회장 장남인 허진성 상무가 고속 승진 중이다.
 
◆차남은 차남이 알아본다
 
'장자 승계'에 집착하지 않은 기업은 차남 총수인 경우가 많다. 본인들이 둘째인 만큼 승계는 반드시 장남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풀이한다. 차남을 후계자로 낙점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조양래 회장도 본인이 둘째다.
 
효성그룹 창업주 고 조홍제 회장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한국타이어를 물려받아 1985년 계열에서 분리했다. 형은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동생은 조욱래 DSLD(옛 동성개발) 회장이다.
 
제약회사 녹십자도 마찬가지다. 녹십자의 실질적 창업주로 불리는 허영섭 전 회장은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의 둘째 아들이다.

허 전 회장은 2009년 지병으로 숨지면서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가족에게 넘겼다. 장남은 상속자에서 제외했다. 둘째 아들 허은철 GC녹십자 대표가 2.49%, 셋째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대표가 2.57% 지분을 가져갔다. 당시 녹십자 전무였던 허은철 대표는 아버지 타계 1개월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5년 1월에는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하며 빠르게 후계자 자리를 꿰찼다.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가 4월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laughing@ajunews.com]

◆경영에 같이 참여하며 후계자 경쟁
 
차남이 후계자로 점쳐지는 기업은 형제가 나란히 경영에 참여하며 경쟁을 벌이는 구도다. 한국타이어테크놀로지그룹 조양래 회장 두 아들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경험을 쌓아왔다.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은 1997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했다. 차남 조현범 사장은 이듬해인 1998년 한국타이어 차장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두 사람 경영 방침은 차이를 보였다. 조현식 부회장은 신사업 추진과 공격적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다. 반면 동생 조현범 사장은 M&A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사명을 '한국테크놀로지'로 바꾸는 데도 동생 역할이 컸다. 조양래 회장은 변화를 주도하는 차남 손을 들어준 것으로 업계는 본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두 아들 또한 2008년부터 나란히 경영에 참여 중이다. 이들이 보유한 그룹 지분은 취득 첫해인 2009년부터 줄곧 유사했다. 두 형제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한 윤 회장 의중을 반영했다고 분석한다.
 
'코웨이' 매각 이후 균형이 무너졌다. 웅진그룹은 당시 신사업으로 진출했던 태양광·정수기 렌털사업 등에서 고배를 마셨다. 기업회생절차까지 이어지는 위기도 겪었다. 회사는 자금 마련을 위해 2013년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코웨이를 팔아야 했다. 당시 웅진코웨이에 있던 큰아들이 주도했다.
 
코웨이는 웅진그룹 성장을 이끌어 온 핵심 사업이다. 무엇보다 윤 회장 애정이 각별했던 분야다. 이 때문에 지난해 3월에는 매각 때보다 웃돈을 주고 되샀다. 매각 5년 7개월 만이다. 이번엔 차남이 주도했다. 자연스레 윤 회장 신뢰가 둘째 아들에게 쏠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서울 중구 코웨이 본사. [사진=조현미 기자 hmcho@ajunews.com]

◆둘째 어깨는 무겁다
 
경영권 승계가 점쳐지는 상황이지만 둘째 어깨는 무겁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두 형제는 나란히 재판에 넘겨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기업명이 같은 한국테크놀로지와 법정 다툼도 있다. 실적 회복도 과제다. 한국타이어 영업이익은 2017년 7934억원에서 2018년 7027억원, 지난해엔 5429억원으로 매년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올해 실적도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웅진그룹은 코웨이 재매각 이후 기업 안정성을 다져야 하는 과제가 있다. 코로나19로 교육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어 새로운 수익 모델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형제간 경쟁이 진행형이다. 윤석금 회장의 장남 윤형덕 전무는 2016년부터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신사업 '웅진투투럽' 대표를 맡아 매년 일정한 매출을 내며 그룹에 이바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84억원으로, 윤형덕 전무가 처음 대표를 맡았던 2016년보다 95.34%나 증가했다. 
 
둘째 윤새봄 전무는 디지털 교육 플랫폼 '놀이의 발견'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웅진씽크빅 사내벤처일 때부터 직접 기획·총괄을 맡았다. 최근 최대 주주로 등극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녹십자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창업주 2세와 3세가 함께 경영 중이다.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와 작은아버지인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회장이 주축이다. 2017년부터는 허은철 대표 동생인 허용준 씨가 녹십자홀딩스 대표 자리에 올라 '삼각경영'을 펼치고 있다.

사촌 간 경쟁도 있다. 허일섭 회장이 장남 허진성 상무를 경영 전선에 내세우면서 승계 구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허진성 상무는 그룹에서 보폭을 넓혀 가고 있다. 2014년 3월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실 부장으로 입사한 지 4년 만에 녹십자바이오테라퓨틱스(GCBT) 상무로 승진했다. GCBT는 녹십자 북미사업의 핵심 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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