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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경'.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부터 반세기 만에 최악의 홍수, 메뚜기떼까지, 올해 삼재(三災)가 닥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 사회가 흉흉하다. 민심이 불안한 틈을 타서 대중을 현혹시키려는 책 한권이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평안경(平安經)>이라는 책이다.
책은 개인의 심신 평안에서부터 남녀, 연령별 평안, 공공장소(기차역 공항, 항구 등), 각계 각층, 전 세계, 더 나아가 우주의 평안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300여 페이지가 온통 "OOO평안(平安)"이라는 단어의 나열과 반복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눈의 평안, 귀의 평안, 코의 평안, 혀의 평안...", "출생평안, 한달평안, 백일평안, 한살평안, 두살평안, 세살평안...(중간생략), 99살평안", "시안기차역 평안, 정저우기차역 평안, 상하이 훙차오역 평안···". 글자 수가 총 10만자라면 5만자가 '평안'으로 채워졌다는 얘기다. 황당무계하다.
2019년 말에 출판된 이 책은 평소 같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텐데. 올여름 사회가 불안한 틈을 타서 중국 대륙에서 화제가 됐다. 중국 관료, 학자, 매체들은 '평안경' 띄우기에 나섰다.
학자들은 "국경을 뛰어넘는 대대로 이어질 대작", "과거·현대를 통틀어 탄생한 첫번째 평안경", "풍부한 내용으로 삼라만상을 다 아울렀다”고 칭송했다. 지린(吉林)성 관영 인터넷매체인 지린망엔 "이 책을 읽고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사명을 깨달았다", "평안의 철학과 진리를 깨달았다"는 등 관료들의 독후감이 올라왔다. 지린성 기관지 지린일보는 ‘평안경’ 공익낭독 심포지엄을 개최했다는 보도자료를 게재했고, 지린성 정부 신문판공실은 이를 공식 웹사이트에 전재했다.
그런데 이 책을 지은 저자의 배경이 심상찮다. 허뎬(賀電) 지린성 공안청 2인자인 상무부청장이다. 게다가 책값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한권에 299위안(약 5만원). 중국에서 웬만한 책값이 50위안을 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바가지'다.
여론의 비난이 들끓었다. 평안경이라는 책 한 권이 빚어낸 한 편의 코미디는 중국 비대한 관료조직의 부조리함, 맹목적인 권력 숭배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으며, 중국 관료사회의 현대화를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각에선 부패 의혹도 제기됐다. 이 책이 창작·출판되고 판매·선전될 수 있었던 데는 분명 권력의 힘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중국 관영매체들이 나서서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중국 국영 CCTV는 "'평안경'의 출판, 웃지못할 코미디. 별것도 아닌데, 너무 띄워줬다"고, 상하이 정부 산하 인터넷매체 동방망은 “간단한 어구의 중복에다가 논리도, 주제도 없다. 초등학생 글쓰기 수준보다도 못하다"고 꼬집었다.
중국 최고 감찰기구인 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까지 나서서 "중국의 평안은 인민들이 고용, 주거, 건강, 심리 등 방면에서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환경을 만드는 것이지, 경을 왼다고, 구호를 외친다고 평안할 수 있겠는가, 황당무계한 환상일 뿐이다"라고 경고했다.
결국 이 책은 지난 29일 일제히 판매가 중단됐으며, 지린성 당국도 '평안경' 합동조사단을 만들어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중국경제망은 "평안경을 철저히 조사해 인민을 평안케 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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