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축통화 패권에 금이 간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로 최근 미국 달러화 약세가 지속하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오히려 달러가 더 강해졌다는 외신의 분석이 나왔다.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따른 단기 가치 하락일 뿐 장기적으론 달러화에 대한 전 세계의 의존도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7월 달러가치 하락...기우에 불과해
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달러화 가치는 여전히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과 비슷할 뿐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글로벌 은행'으로서 연준의 역할을 극대화했고, '통화가 많이 공급될수록 통화가치가 떨어진다'는 경제학 교과서의 원리가 아직까지 기축통화인 달러화에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선 매체는 지난달 들어 크게 떨어지고 있는 달러화 가치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한 달간 달러화 인덱스는 4%나 급락하면서 약 10년 만의 최대 낙폭을 기록했지만,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은 아니다. 2018년 초반 당시 달러 인덱스는 89 선까지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이날 93 선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지난 3월 초 94~95 선을 소폭 밑도는 정도다.
미국 재무부 관료 출신인 마크 소벨은 "단기적으로 달러 가치가 떨어졌다고 해서 글로벌 기축통화의 지위가 위협받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지나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경제위기 클수록 달러 의존도도 높아진다"
오히려 연준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14개국 중앙은행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으며, 전 세계 달러화 의존도를 한껏 높여놨다.
현재 연준은 캐나다·영국·유럽연합(EU)·스위스·일본 등 5개 중앙은행과의 기존 스와프협정을 유지하면서, 한국은행(BOK)을 비롯한 9개 중앙은행을 추가한 상태다.
앞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역시 통화스와프 협정에 만족을 표하며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제에 불확실성이 지속하는 동안 통화스와프 규모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통화스와프와 별개로,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맡기면 달러화를 공급하는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 거래도 시행 중이다.
이에 따라 5월 말까지 코로나 사태 동안 연준은 전 세계 중앙은행에 약 4490억 달러(약 540조원) 규모의 달러를 공급했다. 뉴욕 월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막대하게 풀어놓은 돈과는 별개로 전 세계 중앙은행에 막대한 유동성을 직접 수혈한 셈이다.
달러 표시 국채 매입을 통한 달러화 공급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미국 재무부가 경기부양책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 빚을 내면 연준이 이를 매수해 미국 행정부의 유동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AP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의 차입 규모는 3분기 9470억 달러(1130조원)에서 4분기에는 1조2200억 달러(1450조원)로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구조는 글로벌 경제가 달러화에 갈수록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WSJ은 국제결제은행(BIS)의 자료를 인용해 글로벌 외환시장의 하루평균 거래액 6조6억 달러 중 88%가 '달러 기반'이라고 지적했다.
런던의 통화전문가 스티븐 젠은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달러 통화가 부족해지면서 연준의 개입으로 이어진다"면서 "이 경우, 달러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은 강해진다. 어떤 다른 통화보다도 달러화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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