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다카다 겐조는 1939년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태어났다. 현명한 셋째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겐조는 학창 시절 성적이 우수했지만 내성적인 아이였다. 어린 시절 또래와 어울리기보다는 누나들의 패션 잡지를 보는 것을 즐겼다.
당시 잡지 부록으로 온 패턴으로 옷을 만들며 놀았던 겐조는 고베 대학교에 진학했고, 누나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기모노 매장에서 아름다운 자연이 그려진 교 유젠(견직물 염색 방법) 실크 원단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후 대학을 중퇴한 겐조는 도쿄로 건너가 문화복장학원에 진학하고, 생계를 위해 도장일을 하며 3년간 학업에 정진한다.
1960년 소엔 잡지 패션 콘테스트에서 소엔상을 받은 겐조는 일본 패션계에서 신인 디자이너로 주목받기 시작하고, 졸업과 함께 기성복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그가 살던 아파트가 철거되면서 거액의 보상금을 받은 겐조는 유럽으로 향하게 되고 6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파리에 도착한다.
파리에 남기로 결심한 겐조는 매일 새로운 디자인을 스케치하고, 디자이너 부티크와 잡지사를 찾아가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이며 바닥부터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다. 디자이너 루이 페로의 눈에 띈 겐조는 여러 백화점의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시작으로 후에 'Relation Textiles'에서 니트 디자인 테크닉을 익히게 된다.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을 계기로 젊은이들이 전통적인 패션에서 벗어나 저항적인 패션을 요구한다는 것을 간파한 겐조는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기로 결심한다. 1970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부티크 '정글 잽'을 오픈한 겐조는 자금이 충분치 않아 새로운 원단을 구하지 못해 일본에서 사 온 유카타용 프린트된 실크와 면 원단 등 값싼 원단으로 옷을 만들었다. 마의 잎사귀 문양의 일본 직물로 만든 헐렁한 셔츠가 1970년 엘르 잡지 표지를 장식하면서 겐조는 스타 디자이너로 주목을 받고, 정글 잽은 젊은이들의 아지트로 부상한다.
1976년 미국에 진출한 겐조는 정글 잽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이름을 딴 '겐조'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특히 여행 중 얻은 영감을 통해 디자인을 새롭게 창조해냈고, 전 세계의 전통 의상으로부터 얻은 컬러, 패턴 등을 혼합해 현대적인 패션으로 재창조해냈다.
하지만 1980년대 불황이 찾아오면서 겐조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원단 원가 상승으로 사업적으로 타격을 받은 겐조는 1983년 남성복 라인 런칭을 시작으로 진, 주니어, 베베, 메종 등 사업을 다각화했고, 1988년부터는 향수 라인을 런칭해 시련을 이겨냈다.
겐조 디자인 하우스는 1993년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인 LVMH에 인수됐고, 후원을 받으며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던 겐조는 1999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2005년 이후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에서 가구 등을 디자인해오던 겐조는 2009년 20년간 살아온 집과 평생 수집했던 예술품을 모두 경매에 넘겨 처분했고, 2010년 파리의 한 갤러리에 자화상을 전시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었다.
하지만 겐조는 코로나19를 이기지 못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감염됐던 겐조가 프랑스 파리 인근 뇌이쉬르센의 한 병원에서 8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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