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애비규환' 정수정 "임산부 역, 내가 못 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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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0-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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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비규환' 토일 역의 배우 정수정[사진=에이치앤드 제공]

토일은 계획이 다 있었다. 자격지심 없는 조신한 남편(신재휘 분)과 예의 있는 시댁 식구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라면 장밋빛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똑똑한 토일이 직장 생활을 하고, 그의 남편은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것. 그의 5개년 계획 일부였다.

그러나 토일의 부모님은 그의 계획이 못 미덥다. 토일의 엄마(장혜진 분)는 그에게서 철딱서니 없는 전 남편(이해영 분)의 얼굴을 떠올렸고, 15년간 토일을 살뜰히 키워온 새아버지(최덕문 분)는 그의 폭탄선언이 서운하다. "넌 왜 이렇게 극단적이니?" 누굴 닮았느냐는 말에 토일은 결심한다. '누굴 닮았는지 알아내겠다'는 의지로 무작정 고향 대구로 떠난다.

배우 정수정이 재기 발랄하고 파격적인 영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을 찍는다고 했을 때 모두 "왜?"냐고 물었다. 새침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사랑받은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 출신 정수정의 선택이 파격적으로 느껴져서다. 스크린 데뷔작을 독립영화로 선택, 임산부 역까지 맡게 된 정수정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정수정은 토일이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말하던 것처럼 당찬 말투로 모든 우려를 뒤집었다.

"'왜 독립 영화야?' '임산부 역이야?' '너 많이 내려놨더라'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때마다 저는 '왜? 내가 못 할 거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게 대답했어요. 영화가 공개된 뒤 오히려 '정말 토일이 같아'라고 칭찬해주셨고 엄청나게 뭉클했어요. 이런 게 성취감 아닐까요?"

영화 '애비규환' 토일 역의 배우 정수정[사진=에이치앤드 제공]


정수정은 어떤 작품, 캐릭터를 맡았을 때 그 자체로 봐주는 것이 최고의 칭찬이라고 말했다. 그때그때 맡은 바를 착실하게 해내면 어느새 자신이 원하는 바에 도달하리라 믿는다고 설명했다.

"어떤 고정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먼 미래까지 세세히 계획하는 편은 아니에요. 가수로 활동할 때도 그랬죠. 앨범 발표를 앞두고 엎어져 버릴 때도 있고…. 대신 주어진 일을 맡았을 때는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모든 걸 다 쏟고 털어버리는 식이죠."

낯설고 신선한 얼굴을 가진 정수정과 토일. 둘은 완벽한 일체감을 보이기도 하고 차진 합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정수정은 이따금 토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전 토일 같은 선택을 하지 못할 거 같아요. 의외로 겁이 많아서요. 토일과 닮은 면도 많지만, 그의 선택에 의문을 가질 때도 잦았어요. 심드렁하게 폭탄 발언을 한다거나, 임신 5개월까지 부모님께 알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모습들은 이해가 안 가기도 했어요."

최하나 감독은 정수정이 혼란을 느낄 때마다 "돈가스를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건 곧 토일의 상징이 됐다.

"감독님께서 원하는 톤이 나오지 않으면 '돈가스를 생각해요!'라고 외쳤어요. 하하하. 감독님과 리딩을 하다가 찾은 방법인데요. 토일이 부모님께 '나 임신했어'라고 폭탄 발언을 던지는 말투가 짐작도 가지 않아 애를 먹자, 감독님이 '나 점심에 돈가스 먹었어' 하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면 된다고 알려주셨어요. 무심하고 대수롭지 않게. '나 임신했어' '5개월이야' 하고요."

"왜 돈가스였나요?" 물으니 정수정은 웃음을 터트렸다. "돈가스를 좋아하신대요. 귀엽잖아요. 맛있고, 흔하고."

극 중 토일과 가족들의 모습 [사진=영화 '애비규환' 스틸컷]


1994년생인 정수정이 임산부를 표현하기까지 어려운 점도 많았다. 주변 임산부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했다.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막상 분장하고 나니 다 불필요해지더라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됐어요. 앉는 것, 걷는 것 모두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영화를 보고 많은 분이 '자연스러웠다'고 칭찬해주셨어요. 그 분장을 하고 종일 있으면 그렇게 돼요. 자연스럽게요."

영화 속 토일의 상황이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가 느끼는 감정이나 가족 간 갈등은 보편적이고 일상적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누구보다 가까이 이해를 나누기도 하는 관계 말이다. 정수정에게 "실제로는 어떤 딸이냐"고 묻자, 그는 "토일과 다르다"고 답했다.

"저는 말 잘 듣는 딸이었거든요. 그래도 닮은 구석을 찾아보자면 영화 말미 토일과 엄마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엔딩에서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은 닮은 것 같아요. 엄마는 항상 저를 서포트해 주셨고 뭘 하든 믿고 따라주셨거든요. 그런 엄마가 있었기에 '마이웨이' 할 수 있었고요."

닮았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싸웠던 토일과 엄마의 모습. 두 사람의 차진 호흡은 배우들의 케미스트리 덕이었다.

"장혜진 선배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했어요. 정말 아무 걱정도 하지 않게끔 도와주시더라고요. 혜진 선배, (최)덕문 선배 모두 열린 마음으로 제게 다가와 주셨고 대화를 나눌수록 닮은 점도 많이 발견했어요. 촬영하면서도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잘 지냈죠."

베테랑 배우들과 호흡을 하다 보니 배울 점도 많았다. 그는 현장에서 선배들을 지켜보며 많은 걸 익히고 또 덜어냈다.

"선배님들의 에너지가 정말 인상 깊었어요. 촬영이 길어지더라도 항상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존경심이 들었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촬영)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체력이 뚝 떨어지는 걸 느꼈었거든요. 체력이나 에너지를 안배하는 것도 중요한 거 같아요."

영화 '애비규환' 토일 역의 배우 정수정[사진=에이치앤드 제공]


영화 '애비규환'은 정수정의 스크린 데뷔작이지만, 2010년 드라마 '볼수록 애교만점'을 시작으로 벌써 연기 경력만 10년 차다.

"매 작품 할 때 한 번씩 좌절을 겪었어요. '잘할 수 있을까?' 홀로 걱정하고 견뎌내는 시간을 겪었죠. 꼭 '애비규환'만 그런 건 아니었고, 작품에 임할 때마다 혼자 박스에 들어가는 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생각하고, 리셋해서 또 한 번 달리는 거죠."

영화 '애비규환'이 개봉하고, 작품을 돌이켜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그의 필모그래피 속, '애비규환'은 생각만 해도 그리워지는 작품으로 남게 됐다.

"정말 그리울 거예요. 현장도, 좋은 평가도요. 이번 작품으로 좋은 말씀도 많이 들었는데. 이런 직접적인 평가는 처음이었거든요. '애비규환'으로 스타트를 끊고 앞으로 만날 작품, 현장에 더욱 기대가 생기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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