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일 열린 전원회의에서 주한미군용 유류공급 시장에서 물량과 납품 지역을 배분하고 5차례 입찰에서 낙찰예정자와 투찰가격을 합의한 6개사에 시정명령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번에 제재를 받은 6개사는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지어신코리아, 한진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담합은 2005년 4월부터 2016년 7월까지 11년 넘게 이어졌다.
주한미군은 부대 운영에 필요한 물자를 주로 입찰을 통해 조달한다. 이 중 군용차량과 부대 난방용 유류 구매 입찰은 미국 국방조달본부가 실시했는데, 납지별 최저가격을 써낸 업체가 낙찰받았다.
정유사인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유류납품을 자체적으로 수행했고, 물류회사인 지어신코리아와 한진은 각각 현대오일뱅크와 S-OIL로부터 공급받은 유류를 납품했다.
사업자들은 모임이나 유선 연락 등을 통해 각자 낙찰받을 물량과 납지를 배분했다.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3차례 정기입찰(2005년, 2009년, 2013년)과 2차례 추가입찰(2006년, 2011년)에서 납지별 낙찰예정자와 투찰가격을 짰다.
이들은 공급 물량과 납지는 대체로 균등하게 배분하되, 내수시장 점유율 등을 참고해 배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납지는 2009년 입찰 기준으로 최대 77곳으로 평택·군산 등 전국 곳곳에 있었다. 합의 대상이 된 물량은 전체 약 2억8000만 갤런(경유 2억6000만 갤런, 휘발유 2000만 갤런)으로, 리터로 환산 시 총 10억600만 리터에 달한다.
사업자들은 합의한 내용대로 입찰에 참여해 사전에 합의된 낙찰예정자가 낙찰받았고, 계약 기간 동안 각자 낙찰받은 자신의 납지에 유류를 공급했다.
이들이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짬짜미를 한 것은 주한미군용 유류공급 입찰에 2005년쯤부터 일부 납지에 유류탱크의 잔고를 40% 이상으로 유지·관리해야 하는 의무(자동충전조항)가 도입돼서다. 다음 해부터는 이러한 의무가 대다수의 납지로 확대·적용됐다.
공정위는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유류를 수송하는 것 외에 각 납지별 유류 잔고를 수시로 점검하고 충전해야 하는 등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했다"며 "이로 인해 입찰 당시 공급 비용이 얼마나 소요될지 예측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담합 배경을 설명했다.
사업자들은 이러한 공급 가격 예측과 계약 이행 방안을 논의하는 모임을 갖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물량과 납지배분 등에 관한 합의에까지 이르렀다.
공정위는 6개사에 담합 재발을 막기 위해 향후 행위금지명령과 함께 교육명령을 함께 부과했다. 최고경영자와 석유류 판매업무 담당 임직원은 향후 3년간 매년 2시간 이상 공정거래법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나 고발 없이 시정명령만 결정한 것은 사업자들이 동일한 행위로 이미 미국에서 제재를 받은 점 등을 고려해서다.
앞서 미국 법무부(DOJ)는 2018년 말부터 2020년 초 6개사와 민·형사 합의를 체결해 전체적으로 민사배상금 약 2300억원, 형사벌금 약 1700억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주한미군용 유류공급 시장에서 발생한 담합도 제재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한 데 의의가 있다"며 "사업자들의 담합 합의와 실행이 국내에서 이뤄졌고, 담합의 대상이 된 주한미군용 유류가 국내에서 공급된 점 등에서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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