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채용비리 막을 모범규준 "역부족"…강력한 특별법 제정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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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근 기자
입력 2020-12-2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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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실한 제도로 부정채용자 필터링 효과 "뚝"

은행권 채용비리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수년째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업권이 자구책으로 제시한 모범규준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시중은행 공동 채용 박람회의 모습. [사진=남궁진웅 기자/자료사진]

[데일리동방] 검찰이 기소한 은행권 채용비리 인용건수가 수백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비리 근절을 위해 은행들이 합의·제정한 모범규준이 제역할을 하지 못해 개정이 시급하단 지적이다. 규준을 마련한지 2년 6개월이 흘렀어도 정작 부정합격자 본인을 제재할 근거가 마땅치 않아 오히려 은행들의 '제식구 감싸기'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관련기사:본지 12월 23일자 은행권, 숨겨진 채용비리 '수두룩'…시중은행들 "쉬쉬"]

24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은행권 협의기구인 은행연합회가 2018년 6월 제정한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은 부정합격자에 대한 처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모범규준 제31조(부정합격자의 처리)는 '지원자가 부정한 채용청탁을 통해 합격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 은행은 해당 합격자의 채용을 취소 또는 면직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은행권의 자구책으로 모범규준을 제시하면서 채용비리에 연루된 주요 은행들은 모두 "즉시 활용"을 공약했다. 하지만 모범규준 자체가 법적 강제력인 없고 이미 채용비리로 들어온 부정합격자들에게 소급 적용할 근거도 전무해 사실상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한 상태다.

2015년 이후 공개채용 과정에서 비위가 확인돼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된 곳은 우리·대구·부산·광주은행 등 4곳이다. 당사자가 자진 퇴사한 부산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은행에서는 모범규준의 소급적용이 안 된다는 이유로 현직 부정합격자의 채용 취소 결정을 3년째 보류중이다.

특히 하급심이 진행 중인 신한·KB국민·하나은행에서는 앞서 확정 판결이 난 은행들에 비해 검찰 기소에 인용된 건수가 최대 10배에 이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모범규준에 대한 은행별 해석이 분분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채용비리는 고위 공직자와 금융회사 임원 등 권력자들의 청탁 이후 은행장 또는 임원의 지시로 점수 조작 등이 이뤄진다. 그럼에도 부정합격자가 직접적으로 채용비리에 관여하지 않아 당사자의 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것이 은행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는 형법상 업무방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 등을 인사 담당자에게 적용할 순 있어도 탈락자 신분에서 최종 합격자로 뒤바뀐 부정합격자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부정합격자의 징벌을 적시한 모범규준을 만들고도 은행들은 스스로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자 채용비리에 따른 피해자들의 구제는 전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모범규준이 채용비리를 막는 최후의 보루인 것처럼 인식된 것도 문제다. 오히려 부실한 제도가 부정합격자의 추가 유입에 면죄부를 준 꼴이 된 것이다.

이와 관련, 국회 차원의 '채용비리 특별법(가제)' 제정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할 때 연합회가 선제적으로 모범규준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업계는 김광수 신임 은행연합회장의 대응에 주목한다.

업계 관계자는 "채용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금융권의 고질병인데, 부정합격자 자체를 징계할 규약을 만들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관건은 총대를 누가 멜 것인가, 신임 연합회장이 은행장들과 어떻게 협의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은행연합회와 지속적인 협의로 개선안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구속력이 없는 모범규준의 한계로 조속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당국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의 모범규준은 자율 규약에 불과하다"며 "부정합격자와 인사 담당자들에 대한 제재를 내리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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