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 한국 경제는 올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정부의 예상도 다를 바 없다. 최근들어 코로나19 3차 유행이 거세지면서 오히려 내년이 더 걱정스럽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3.2%로 내다보고 있으나, 코로나 사태가 수습되지 않는다면 경제 상승세를 타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예상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3분기 가계·기업 빚, GDP의 2.1배
코로나19 여파로 가계와 기업의 자금 사정이 어려운 실정이다. 개인은 생활고에 전전긍긍할 뿐더러 기업은 자금 부족에 경영난을 겪으며 폐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그 사이 빚도 크게 늘었다.
28일 한국은행의 '금융안정 상황(2020년 12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말 현재 민간 부문의 신용(가계·기업의 부채)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11.2%로 나타났다.
가계 부채가 3분기 말 1682조1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7%나 늘었다. 주택담보대출과 기타대출(신용대출 포함)이 각 7.2%, 6.8% 증가한 상태다.
3분기 말 현재 가계 신용은 명목 GDP의 101.1%로, 2분기(98.6%)보다 2.5%포인트 올라 사상 처음 GDP를 웃돌 정도다.
기업 대출을 보더라도 3분기 말 현재 1332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1153조원)보다 15.5% 늘었다. 이와 같은 기업 대출 규모는 명목 GDP의 110.1%로, 3분기(108.3%)와 비교할 경우 3개월새 1.8%포인트, 작년 3분기(101%)보다 9.1%포인트나 급증한 규모다.
코로나 사태로 수익이 여의치 않다보니 가계나 기업 모두 부채만 늘려온 셈이다.
코로나 한파에 내년에도 구조조정 불가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기업 711곳을 대상으로 올해 구조조정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기업 4곳 가운데 1곳은 구조조정을 실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참여기업 가운데 24.7%에 달하는 규모다. 대기업 가운데 46.2%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중견기업 27.1%, 중소기업 22.9% 순이다.
구조조정의 배경은 역시나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 경영난'이 무려 37.2%로 구조조정 이유 1위에 꼽혔다.
업계에서는 올해 구조조정 규모가 예년 대비 컸던 것으로 평가한다. 코로나 한파에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은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면서 경영 정상화에 나선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내년이다. 이번 설문에서 내년도 구조조정 계획이 28.8%로 올해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에도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내년 경제 뇌관으로 한계 기업·가구 채무상환능력 저하 꼽혀
정부는 코로나19 백신을 내년 2월부터 의료인과 고령층 먼저 접종한다고 지난 27일 밝혔다. 늦어지는 백신 접종에 대한 전 국민의 불안감이 확산하자 부랴부랴 우선 접종 대상에 대한 일정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백신 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 면역 상태가 돼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내년까지는 코로나 경기 한파가 쉽사리 걷히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 한계기업과 가구 채무상환능력 저하가 꼽혔다.
한은은 지난 25일 '2021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 보고서를 통해 "레버리지 확대 및 이에 기반한 자산가격 상승 등 금융불균형 누적 가능성, 경기회복 지연에 따른 한계기업 및 취약가구의 채무상환능력 저하 등이 위험요인으로 잠재하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특히,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생명을 이어갈 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분위기다.
24일 발표된 한은의 '금융 안정 보고서'를 보더라도 정부의 금융 지원이 전면적으로 종료되면 내년에 기업의 유동성 부족 규모는 무려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내년에 기업실적이 회복되지 않고 매출액도 1.7% 감소하는 등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게 되면 유동성 부족 규모는 7조7000억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한계기업(좀비기업)이다. 한은은 코로나 충격으로 내년에도 기업 10곳 가운데 4곳은 돈벌어 이자를 갚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이라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하는데, 3년 연속 1미만인 상황이 이어질 경우엔 해당 기업을 한계기업으로 분류한다.
이런 조건에서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대기업은 올해 27.1%에서 내년 28.9%로 늘었다. 중소기업도 48.8%에서 50.1%로 확대됐다.
내년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폐업이 불가피한 상황인 셈이다.
내년 장밋빛 3%대 성장률...기저효과 착시
그렇더라도 정부와 경제분석 기관들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3%대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3% 성장률을 기록한 뒤 연이어 내리막길을 걷던 경제가 코로나 위기를 겪은 상황에서 곧바로 안정세로 반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경제 전문가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보인다.
올해 역성장에 따른 기저효과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현대경제연구원 한 연구원은 "성장 반전을 일궈낼 정도의 성장률을 보이려면 그 이상이 돼야 하는데, 신흥 국가 성장률 수준까지 현 상태에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올해 역성장에 따른 기저 효과이다보니 3% 성장을 경기 회복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을 것"으로 평가했다.
다만, 내년 3% 성장률도 확신하기엔 이르다는 시각도 포착된다.
백신 효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어느 정도까지 줄어들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최근 변종 바이러스 확산도 우려되는 요인 중 하나다.
한 의학계 전문가는 "백신이 모든 변종 바이러스까지 모두 방어해줄 수 있을 지는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라며 "더구나 백신 부작용 등 따져봐야 할 것도 많고, 전체적으로 국민 면역이 가능해져야 사태가 소강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 경제학 교수는 "백신이나 치료제 효과만 기대하고 경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본다면 현 정부의 정책 실기가 커질 수 있다"며 "이미 한국 경제는 장기 저성장 터널에 들어선 상태이다보니 급성장 정책보다는 저성장에서 규모를 키우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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