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국회는 작년 12월 14일에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의 처리를 강행했다. 22일, 국무회의는 이를 심의·의결했다. 이에 국제사회가 들끓고 있다. 미 의회는 연초에 이와 관련하여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우리 정부와 국회는 이런 결과를 과연 예측하지 못했을까.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우리 정부와 국회의 대응 및 발언을 취합해 보면 문제점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사고하지 못한 결과 설득력이 없다. 다른 하나는 법안 발의 동기가 모순덩어리라는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특히 미국의 관련 인사 및 기관을 다층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설득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16일 강경화 외교장관의 미 CNN 방송 인터뷰가 그 신호탄이었다. 게다가 여당도 국제사회 비판에 반박하고 나섰다. 강 장관의 인터뷰 발언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안일하게 접근하고 있음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영어를 잘하고 미국을 잘 안다고 정평이 난 강 장관이 인터뷰서 전달한 메시지는 적절하지 못한 비유로 설득력이 없었다. 강 장관은 대북전단금지법의 필요성을 2014년의 북한 고사포 발포 사건에 빗대어 설명했다. 이 사실을 모른 듯 CNN 앵커는 놀라면서 “풍선에 고사포를 발사한 것은 균형적 대응은 아니다(It really is kind of way out of proportion)”라는 반응을 보였다. 리액션에 불과했다. 그런데 외교부는 이 인터뷰 영상에서 이를 “대북 전단 살포나 북측 발포 등의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라고 번역해 올렸다. 외교부는 강 장관의 인터뷰를 유의미 있게 포장하려했으나 실패했다. CNN 앵커의 발언을 오역했고 이를 실수라고 인정했다.
이런 정부의 왜곡 행위는 외교부뿐이 아니었다. 통일부 또한 작년 12월 15일에 낸 설명 자료에서 외국 인사의 입장을 오용했다. 자료는 작년 6월 칼 거시만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거시만은 “대북전단의 정보 전달 효과는 크지 않다”며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자 거시만 회장은 12월 23일 같은 방송에서 통일부의 왜곡 사실을 밝혔다. 그는 6월 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아주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라고는 보지 않기 때문에 관련 단체를 지원하지 않는 것”이라며 “대북전단이 위협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그의 말뜻은 그의 단체가 미국의 <북한인권법>으로 이런 행위에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그의 단체가 불참하기로 한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려 한 것이었다. 대신 NED는 한국의 다른 대북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강 장관의 발언으로 미국이 놀란 이유는 그가 잘못 비유한 미국의 사례 때문이다. 그는 형사법으로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해야하는 정당성을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의 자유 보장 행정명령’이 ‘기금으로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식의 예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0월 ‘대학 교정에서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행정 명령(Executive Order on Improving Free Inquiry, Transparency, and Accountability at Colleges and Universities)’에 서명했다. 그런데 그 내용과 취지를 알았으면 이런 비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행정명령의 내용은“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대학에 연방 정부의 연구 기금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미국 대학에서 어떤 이가 강연이든 행사에 학교 측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인사를 초청하는 데 저지당하면 이의 부당성을 유관 기관에 제기할 수 있다. 이 경우 부당한 조치로 판단되면 연방 및 지방 정부가 이 대학에 대한 기금과 재정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명령의 취지가 가히 비민주주적이고 미국의 헌법에 위배되어 벌써 그 실효성이 의심되고 있다. 왜냐면 미국의 가치를 수호하고 양산하는 교정에 이에 반하는 의식을 가진 인사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다. 가령, 비민주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의식을 가진 인사의 연설을 누가 정당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미국에는 전교생이 흑인인 대학이 중남부지역에 대거 집중되어 있다. 특히 테네시 주에 6개 대학이 있다. 이들 학교에서 만약 연고지의 이유로 이 주에서 탄생한 백인우월주의집단 ‘쿠 클럭스 클랜(KKK)’의 인사를 연사로 초청한다고 하자. 학교 당국은 당연히 거절할 것이다. 이를 이유로 정부가 지원을 금하는 것은 비민주적이고 미국의 헌법에도 위배된다. 유태인 학교에 나치 추종자의 활동도 금지하지 말라는 것이 트럼프가 서명한 행동명령의 문제다. 그런데 우리나라 외교장관은 ‘대북전단금지법’이 미국의 보수주의라며 이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부연했다. 미국인들에게 그의 비유가 설득력이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정부가 추진한 ‘대북전단금지법’이 지탄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발의 동기가 모순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이의 명확한 설명을 국제사회는 요구하고 나섰다. 현 정부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들의 불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년 상반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작년 5월 31일 우리의 탈북단체가 자행한 전단 살포에 대해 김여정은 6월 4일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그의 협박성 담화에 통일부는 예고도 없는 브리핑을 가지면서 대북전단과 관련한 법률 정비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가 열거한 보복조치 중 6월 16일에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정부는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 북한 인권 관련 단체와 활동에 대한 탄압을 즉각 개시했다. 7월 14일에는 탈북단체 2곳의 설립허가 취소를 염두에 둔 조치를 취했다. 하루 안에 취소 처분에 대한 의견을 내라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그리고 12월 3일 국회는 북한 인권 관련 단체의 예산을 줄줄이 삭감했다. 우리의 북한인권법이 내부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의 반증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북한 인권 관련 UN 결의안에서 역대 정부가 ‘포기표(abstain)’를 던진 입장을 더 이상 절충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 되었다.
국제사회가 이해를 못하는 또 하나는 정부가 ‘표현의 자유’ 제한을 우리 국민의 안전문제로 연계한 데 있다. 2014년 대북 전단 살포 때 북한의 고사포 도발이 이유였다. 따라서 남북접경지역에 주거하는 우리 국민 112만 명의 목숨을 담보할 수 없다는 논리다. 문제는 국제사회가 이미 정부가 우리 국민 한 사람의 목숨도 보호해주지 못한 사실을 목도한 데 있다. 작년 9월 21일 소연평도 해역에서 우리 공무원의 피격 사망 사건이었다. 그런데 112만명의 목숨과 안전을 보호하겠다니 어불성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미 의회 청문회 개최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반박 발언이다. 이를 내정 간섭으로 규정했다. 국민에게 이들의 언행은 가히 모순적이다. 중국의 사드보복조치야말로 우리 주권에 대한 무시와 내정간섭의 표본인데 이에 대해선 함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당의 주장은 세계화시대에 지극히 역발상적이다. 세계화시대에도 주권은 존중되고 보호되어야한다. 그러나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두고 주권은 타협의 대상이다. 특히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권익이다. 이의 보호와 존중에는 국경이 없다. 이런 이유로 586세대는 군사독재시기에 미국의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the Amnesty International)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은혜를 입었으면 결초보은(結草報恩)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배은망덕은 자제해야 한다. 이것이 세계화시대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미덕이다.
지난 2일 발표된 한 설문조사에 현 정부의 가장 시급한 외교문제로 국민의 50.2%가 한미동맹강화를 꼽았다. 다른 현안에 비해 압도적인 반응이었다. 한미동맹은 가치에 기반한다. 우리는 인류보편가치와 민주주의가치를 모두 수용한다. 북한 인권도 예외적일 수 없다. 우리의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및 부속도서로 정의한다. 따라서 이 모든 지역에 거주하는 이는 곧 우리 국민이라는 의미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과 성의를 다하는 것이 586세대 정치인들의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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