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팻 겔싱어는 21일(미국 현지시간)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이같이 말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면서 급증하는 반도체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반도체 업체의 생산 증대 계획이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이 같은 자체 생산 계획은 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관련 투자 계획을 잇달아 부채질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파운드리(위탁생산)’에 대한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았다. 겔싱어는 이날 “특정 기술과 제품”의 경우 위탁생산이 늘어날 수 있다고 확인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인텔은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고집하며 최고의 성능을 자부해왔지만, 최근 AMD와 같은 후발 경쟁사에 설계 기술마저 밀리면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한때 미국의 유명 행동주의 투자자는 인텔이 반도체 제조사업을 아예 없애고 핵심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주문까지 했다. 이를 의식한 듯 인텔은 최근 외주생산을 가시화한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최근 인텔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외주생산 물량을 수주했고, 삼성전자는 사우스브리지 반도체(PC 메인보드에 들어가는 칩셋) 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TSMC가 최근 의욕적인 투자를 통해 생산량 증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가히 ‘역대급 투자’를 단행해 최대 라이벌인 삼성전자에 강한 압박을 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올해 투자 규모만 30조원으로, 지난해 대비 약 11조원 증가한 수치다.
전세계 파운드리 분야 1위인 TSMC는 최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투자 확대에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초격차’를 앞세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지난해만 약 6조원의 투자비를 지출했다.
전체 파운드리 시장에선 TSMC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며 삼성전자와 격차가 크지만, 14nm 미만 미세공정 분야에선 삼성전자의 맹추격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는 작년 4분기 기준 14nm 미만 미세공정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70%를 기록했고 삼성전자가 나머지 30%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 연말이면 삼성전자가 5% 포인트 상승한 35%의 점유율을 기록할 것이란 관측이다.
당장 TSMC가 삼성전자를 따돌릴 관건은 ‘첨단 장비’에 달렸다. 5nm 이하의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극자외선(EUV) 제조 장비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공급난이 심각하다. EUV 제조장치를 만드는 업체는 세계에서 네덜란드 ASML사 단 한 곳뿐인 상황이다.
특히 최근 공급난이 심각한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도 생산량 증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은 네덜란드 NXP가 선두를 차지하고 있고 뒤이어 일본 르네사스, 독일 인피니온, 미국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말 그대로 ‘춘추전국 시대’라 압도적인 시장 1위는 없는 상황이다. 이런 시장에서 첨단 기술력을 앞세운 삼성전자와 TSMC가 자동차 반도체 점유율 확대까지 넘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 이어 올해는 스마트폰과 IT 기기 수요가 폭증하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예견된 상황”이라면서 “이를 대비해 선제적인 투자로 생산량 증대에 나선 기업만이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도 반도체 강자로 남을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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