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점차 해소되는 등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론’이 대표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원자재 시장은 올해 들어 급등세를 보였다. 원유, 금속 등 산업 원자재는 물론 대두 등 식품 원자재 가격이 치솟았다. 특히 지난해 마이너스권으로 추락했던 국제유가는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원자재 시장의 상승세를 ‘이례적’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시장이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고, 당분간 현재의 랠리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추진에 따른 경기개선과 미국 달러 약세, 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원자재 수요 증가 전망으로 이어진다는 이유에서다.
FT는 자산운용사 서머헤이븐의 27개 원자재 선물가격 지수를 인용해 커피, 니켈 등 27개 원자재 가격이 지난달 중순까지 6개월간 일제히 상승했다고 전했다. 서머헤이븐의 커트 넬슨 파트너는 “원자재들이 모두 한 번에 같이 오르는 건 보지 못했다”며 이례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FT는 설명했다.
◆ 원자재 ‘고공행진’ 중···치솟는 유가
15일(이하 현지시간)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구리 선물 가격은 올해 들어 45.97% 뛰었고, 미국 대두 선물 가격은 53.56% 상승했다. 이는 앞서 FT가 전한 상승률보다 소폭 오른 수치다. FT는 지난 9일 구리와 대두의 올해 가격 상승률이 각각 40%, 50% 이상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 기조와 연관되는 철광석, 은 등의 가격도 크게 올랐다. 은 가격은 올해에만 54.33%가 뛰었고, 국제 철광석 가격은 톤당 160달러를 웃돌며 10년 만에 최고치에 달하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제유가의 급등세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마이너스로 추락했던 국제유가는 배럴당 60달러를 돌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이날 오전 1시 14분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시간 외 거래에서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일 대비 배럴당 1.39달러(2.29%)가 상승한 60.83달러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12일 2.1%가 급등해 배럴당 59.47달러로 마감, 종가 기준 지난해 1월 10일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또 2%가 오른 것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4월 인도분 브렌트유의 가격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12일 2.11%가 올라 배럴당 62.43달러로 거래를 마친 브렌트유는 이날도 1.92%가 상승한 63.63달러에서 거래되고 있다.
◆弱달러 속 인플레이션 헤지수단된 원자재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 달러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원자재가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주목을 받는 것을 가격 상승 요인으로 꼽았다. 국제 원자재는 주로 달러로 거래된다. 이 때문에 달러 가치와 원자재 가격은 반비례한다.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원자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가격이 상승하게 되는 구조다.지난 12일 미국 달러 지수는 90.48로, 주간 기준 0.62%가 하락했다. 유로 대비 달러 환율은 1.212달러를 기록, 유로화 가치가 전주 대비 0.61% 절상됐다.
여기에 더해 저금리 환경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원자재 가치를 높이고 있다.
코어 커뮤니티의 엘리엇 젤러 파트너는 FT에 “원자재를 둘러싼 거시 경제적 환경이 지난 10년의 어느 때보다 강력해지고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상승 우려, 달러 약세, 저금리 등이 원자재 투자 매력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젤러 파트너는 “2010년 이후 주식시장 랠리, 강달러, 금리하락과 인플레이션 기대 감소를 봤다면, 지금은 인플레이션 상승, 달러 강세, 제로(0) 또는 마이너스 금리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충격 극복을 위해 추진한 재정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자 펀드매니저들이 이를 대비하는 수단으로 원유, 금속 등을 선택한 것이 원자재 시장 상승세로 이어졌단 의미다.
◆“슈퍼사이클 진입” vs “시기상조”
원자재 가격 상승세와 관련 시장이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중국 경제성장에 힘입어 유가, 금속 가격이 치솟았던 2000년대 ‘슈퍼사이클’이 재현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원자재 시장이 V자 형태로, 성장으로 제시하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V자형의 원자재 가격 회복이 훨씬 더 길고 구조적인 강세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제프 커리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상승장에 진입했다. 이런 강세장이 향후 10년간 가격을 지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크 루이스 BNP파리바자산운용 지속가능전략부문 수석애널리스트는 “지난 30년간 이 시장을 지켜봤지만, 이런 열기를 보지 못했다”면서 “향후 30년간 친환경 전환을 위한 모든 분야 투자에 슈퍼 사이클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스위스 투자은행인 줄리어스 베 어의 노르베르트 뤼커 이코노미스트는 “역사적으로 슈퍼사이클은 30~40년마다 일어났고, 가장 마지막은 2000년대의 중국 산업화 때였다”며 원자재 시장의 슈퍼사이클 진입 평가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자산관리기관 나인티원의 조지 세블리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원자재 시장이 사이클적인 회복에 나서고 있는 상황은 맞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 중국, 유럽에서의 공급과 관련이 있다”면서 “더 광범위한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선 2~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재의 원자재 가격 강세가 수요 증가가 공급 위축에 따른 결과로, 과거 수요 급증으로 나타난 슈퍼사이클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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