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배구 OK금융그룹 두 선수도 중고교 시절 학교폭력을 휘두른 가해자로 지목됐다. 두 선수는 잘못을 인정하고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또 다른 여자배구 스타도 과거 행적으로 인해 선수 자격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앞서 아이돌 그룹 멤버와 유명 셰프의 아내에 이어 트롯 오디션에서 주목받은 가수 역시도 청소년기에 주변 학생을 괴롭혔다는 이유로 무대에서 스스로 내려와야만 했다.
체육계 학교폭력 피해는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망가뜨리는 엄청난 고통과 트라우마로 평생을 시달리고, 피해자 대부분은 운동을 그만두게 되거나 후유증으로 사회생활조차 어렵다고 한다. 힘겹게 문제를 헤쳐나가더라도 회복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많은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이 이러다 보니 “징계 수위가 약하다며 일벌백계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쌍둥이 자매 선수를 영구제명해야 한다’라는 청원에 11만 명이 넘게 동참할 정도로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고,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체육계의 학교폭력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일벌백계로 처리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70.1%로 나타났다. 국가대표 자격 박탈이 지나치다고 답한 응답자는 23.8%에 그쳤다. 출장정지 등 일회성, 보여주기식 솜방망이 처벌로는 체육계 학교폭력의 악습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배구계의 학교폭력 논란은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가 폭력 문제로 희생된 지 채 1년도 안 돼 또다시 폭력 문제가 불거진 만큼 체육계 전체로 급속히 비화하고 있다. ‘성적 지상주의’가 부른 고질병인 체육계의 학교폭력이 도처에 만연해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감독과 코치는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명분으로 선수들을 때렸고, 선배들은 기강을 잡는다는 이유로 후배들을 괴롭혔으며, 유망 선수들은 유명세를 무기로 동료들에게 위세를 부렸다. 맞고 자란 선수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선배가 되거나 지도자가 됐을 때 똑같은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학대를 자행했다. 그렇게 체육계의 학교폭력은 지속되었고 대물림됐다. 그야말로 ‘성적 만능주의’에 매몰된 고질적인 병폐로 학교 체육에 켜켜이 쌓여온 적폐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문제 중 하나인 자녀 체벌을 훈육이라는 핑계로 합리화시켜온 것과 유사하게, 체육계에서도 학교폭력은 수직이나 상하 관계를 기반으로 해서 일어났던 폐단으로 사실은 성적이나 출전, 진학 등을 위해서 참고 견디고 방조하고 묵인하던 병폐들이 곪고 곪아서 터져 나온 것으로 일반 폭력 사안보다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얽힌, 복합적이고 특수한 위계관계의 틀 안에서 운동해야만 하고, 전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참고 견뎌야만 하는 피해자와 또 아무렇지도 않게 권력 구조에서 특권의식을 가진 가해자가 공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성적만 좋으면 잘못된 행동도 묵인되는 엘리트 특권의식이 관행처럼 저변에 짙게 깔려 있고, 선수 선발ㆍ훈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비리와 폭력에 대해서도 오직 금메달만 바라보는 성적 지상주의 풍토에 매몰되어 선수는 물론 지도자, 체육단체, 심지어 부모까지 침묵하거나 침묵을 강요당하는 구조 때문이다.
교육부가 2019년 8월 27일 발표한 ‘2019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전국의 학생 410만 명 중 372만 명(90.7%)이 조사에 참여했는데 이중 약 6만 명(1.6%)이 학교폭력을 당한 적 있다고 답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2월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출범하고 초·중·고 학생 선수 인권상황 전수 특별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효응답 학생 선수 57,557명 중 14.7%인 8,440명이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 피해자의 79.6%는 신고조차 하지 않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결과를 감안하면 실제 피해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짐작되고, 여기에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적 폭력까지 추산한다면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 철학자 ‘에이브러햄 캐플런(Abraham Kaplan)’은 “어린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다닐 것이다”라고 했고,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는 1966년에 그의 저서 「과학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Science)」에서 “누구나 망치를 쥐면 본능적으로 두드릴 대상부터 찾는다”라는 소위 ‘망치의 법칙’을 언급했다. 1989년 방영된 문화방송 월화 미니시리즈 ‘완장’이 떠오른다. 조그마한 권력과 우월의식으로 망치를 들었다고 못만 찾고, 완장을 찼다고 권위 의식에 도취해서 폭력과 학대를 자행하는 것은 불법이며 반인권 범죄다.
다른 사람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고 가슴에 멍을 주며 영혼에 주름살을 잡는 체육계 학교폭력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더는 관행이나 구습 또는 훈육이나 교육도 아니며, 더구나 용납될 수 없는 악행일 뿐만 아니라 스포츠 정신에 대한 모독이며, 벌어진 시기와 내용에 따라서는 가해자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폭행죄’(공소시효 5년)나 ‘특수상해죄’(2인 이상이 함께 하거나 흉기 등 위험한 물건 사용 경우 공소시효 10년)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감독과 코치 등 체육계 지도자들은 깊이 깨닫고 각별 유념하여 몸소 실천하고 솔선수범하며,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스페인 교육자 ‘프란시스코 페레(Francisco Ferrer)’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강조하고, “가장 대표적인 권위의 행태는 ‘폭력’이라며, 제아무리 선한 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나쁜 것”이라 했다. 물론 체육계 학교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지도자와 선배의 무소불위 권력을 원천적으로 없애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성은 등한시하고 오직 성적만을 중시했던 엘리트 중심의 성적 만능주의가 더는 용납돼선 안 된다.
체육계가 폭력이 정당화되는 인권의 사각지대나 정의 가치와 공정 이념의 불모지대가 될 수는 없다. 차제에 일벌백계로 추상같이 준엄한 폭력 근절 의지와 엄중한 대처로 아무리 실력과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인성이 바르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고, 체육계에서 폭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새로운 스포츠문화를 일궈내야 할 것이며, 체육계 스스로 폭력을 추방하는 자구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학교폭력 전수조사와 예방기구 설치 등 다양한 대책을 서둘러 강구하고 체육계를 넘어 사회 전반의 폭력 실태를 재점검하고 정의로운 해법을 서둘러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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