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는 요즘 딱 제철이다. 향이 강한 먹는 채소(허브) 중 유독 한국인들이 즐긴다. 외국 어디를 봐도 미나리를 주된 식재료로 쓰는 나라는 없는 듯하다. 한국이 미나리 소비 세계 최대 국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
한반도 곳곳에서 사시사철 나지만 2~3월 봄을 깨우는 맛이 가장 좋다. 해산물, 육고기 모두에 잘 어울린다. 생선 맑은 탕과 어우러지면 최고의 해독 음식이다. 꼬막에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식 궁합이다. 기름기 적당히 뺀 삼겹살을 멜젓이나 갈치속젓 살짝 바르거나, 마늘쌈장을 얹어 미나리로 돌돌 말면 봄은 와 있다. 채식주의자라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와사비 초(간)장 찍으면 끝.
미나리꽝은 미나리를 키우는 땅인데, 물이 찰랑찰랑, 논인지 밭인지 구분하는 건 재미없다. 여하튼 미나리는 물이 많은 지역에서 잘 자라 옛날 서울에는 중랑천과 정릉천 일대가 미나리꽝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요즘 서울 근처에서 미나리꽝을 볼 순 없고 경북 청도 한재미나리가 유명하다. 이 곳 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미나리는 나름 저마다의 향과 맛이 일품이다.
▶2019년부터 작년까지 전 세계 영화제를 휩쓸었던 <기생충>에 이어 한국인의 삶을 다룬 영화 ‘미나리’(Minari)가 큰 주목을 끌고 있다.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젊은 한국 이민자 가족이 시골에서 농장을 일구는 이야기다. 한인 이민이 많은 캘리포니아주에서 병아리 감별사인 남편이 자신만의 농장을 갖고픈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깡촌’인 아칸소주에 정착하러 온다. 딸네 가족을 돌보러 한국에서 온 장모는 미국 손주와 미나리를 키운다.
한국계 미국인인 리 아이삭 정(이하 한국명 정이삭) 감독이 자기와 가족의 실제 얘기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역시 한국계 미국인인 유명 배우 스티븐 연(연상엽)이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올해로 데뷔 55년, 명배우 윤여정이 할머니, ‘미래 명배우 후보’ 한예리가 여자 주인공 역할을 했다.
미나리는 영어로 워터 파슬리(water parsley)인데, 영화 제목을 굳이 한글로 한 이유는 받침 없이 영어로도 발음하기 쉬운 아름다운 우리말 그대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2020 아카데미 작품상 ‘기생충’에 이어 미나리는 2020~21 시즌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상, 여우조연상, 관객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23일 현재 모든 상 다 합쳐 74개, 이중 윤여정 배우가 26관왕이다. 4월 25일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지난해 기생충의 기세를 이어갈지 기대를 모은다.
무엇보다 윤 배우의 한국식 영어가 시상식장에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지난해 아카데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통역을 맡았던 샤론 최(최성재)가 큰 화제를 모았다. 그와 다르게 윤여정은 영어를 직접 말한다. 혀를 잘 말고 굴리면서 미국, 영국 현지인처럼 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의 영어는 ‘야 너두 할 수 있어’의 생생한 예다. 물론 그가 젊은 시절 몇 년 동안 미국 생활을 한 경험에서 나왔지만 그의 ‘또박또박 영어’는 따라 배울 만하다. 한국식 발음이라도 천천히 핵심적인 키워드를,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윤여정식 영어’에 많은 외국인들이 감탄하고 있다.
윤여정의 영어만큼이나 배우 한예리의 노래도 인상적이다. 담담하고 진솔하게 읊조리듯 부르는 영화 주제가 ‘레인 송(rain song)’은 아직 못 본 영화인데도 마치 영화를 다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늘 한결 같은 밤 속삭이는 마음 어우러지네
작은 발자욱 위로 한 방울씩 또 비가 내리네
고개를 들고 떠나가는 계절을 배웅하네
긴 기다림 끝에 따스함 속에 노래를 부르네
겨울이 가는 사이 봄을 반기는 아이 온 세상과 숨을 쉬네
함께 맞이하는 새로운 밤의 꿈
영화 엔딩 크레딧(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올라가는 영화 정보 자막)에 입혀지며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 곡은 아카데미상 음악·주제가상 예비 후보에 올랐다.
▶미국의 유명 영화 시상식 중 아카데미에 앞서 열려 ‘아카데미 예고편’으로 불리는 게 골든글러브다. 미국 영화의 심장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 90여명이 소속된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미국 영화 산업을 다루는 비미국 기자 단체)가 주관한다. 올해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미나리가 올랐는데, 환호 보다는 아리송, 나아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제작사(플랜 비)에서 만든 미국 작품인데 대사의 50% 이상이 외국어라 그렇다는 설명에 많은 미국 언론, 영화인들이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윤여정은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다.
지난해 기생충 때도 골든글러브는 똑같았다.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는데 작품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기생충에게 작품상을 선사하면서 골든글러브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다. 미국 영화를 다루는 외국기자들이 얼마나 고루하고 차별적인지를 전 세계 수 천명 아카데미 회원들이 잘 보여줬다. 올해 어떨 지 다시 궁금하다.
오는 4월 25일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의 영어, 한혜리의 노래가 코닥극장에 울려 퍼지는 광경을 기다린다. 스티븐 연이 아시아인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는 장면 역시 고대한다. 그리하여 미나리라는 고운 우리말이 세계적 유행어가 되길 바란다. 미나리는 3월 3일 국내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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