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마포구의 한 치킨 업체는 쏟아지는 전화와 메시지에 결국 영업중단이란 백기를 들어야만 했다. 언뜻 보면 소비자에게 혼쭐이 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응원 전화와 주문 폭주로 영업을 중단한 훈훈한 '미담'이다. 이를 두고 전국 각지 소비자에게 '돈쭐'을 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돈쭐이란 돈으로 혼쭐을 낸다는 표현으로, 선행을 베푼 업주나 업체에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팔아주기' 운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치킨 프랜차이즈 '철인7호' 홍대점이 돈쭐이 난 건 박재휘 점주의 선행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면서다. 김현석 철인7호 프랜차이즈 대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고등학생 A군이 본사로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A군은 편지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편찮은 할머니를 모시며 11살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고 밝혔다. A군은 "어린 동생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보채서 달래주기 위해 밖으로 나왔지만, 50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집 근처 치킨집은 (우리를) 내쫓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때 박 씨는 자신의 가게 앞을 서성거리는 형제를 불러 2만원어치 치킨을 내준 뒤 돈을 받지 않았다. 박 씨는 이후에도 A군 동생에게 치킨을 대접하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아 보내기도 했다. A군은 말미에 "처음 보는 저희 형제에게 따뜻한 치킨과 관심을 주신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앞으로 성인이 되고 돈 많이 벌면 저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 수 있는 사장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런 사연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퍼지자 전국 각지 누리꾼들이 돈쭐을 내주겠다며 가게 매상을 올려주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한 누리꾼은 치킨을 주문한 뒤 치킨은 보내주지 않아도 된다며 일종의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
돈으로 혼쭐 내준다는 뜻의 '돈쭐'…배경엔 미닝아웃 추구하는 MZ세대
이런 돈쭐 문화의 배경에는 '미닝아웃'을 추구하는 MZ세대(1980년대 후반~2000년대 태어난 젊은 세대)가 있다. 미닝아웃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커밍아웃(Coming out)을 더한 말로,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치·사회적 성향을 드러내는 소비 습관을 말한다. 실제로 크리테오의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52%가 ‘친환경·비건 등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맞는 소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MZ세대는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특성이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에 따르면, 소비자 10명 중 7명은 '내 소비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답했다. 특히 MZ세대의 주축인 10대와 20대는 절반 이상(10대 58.3%·20대 53.7%)이 올바른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더 들일 의향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MZ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부상하자 기업들도 이들을 붙잡기 위한 '착한 마케팅'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볼보코리아는 러닝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 캠페인 '플로깅'을 진행하면서 친환경 마케팅을 확대했다. 또한 플로깅용 장갑과 가방, 섬유활용 끈 등을 참가자에게 제공하고 2억4000만원을 환경재단에 기부하며 환경을 중시하는 착한 소비자 붙잡기에 나섰다.
미국 아웃도어 의류 회사인 '파타고니아'도 미닝아웃 분위기에 많은 혜택을 받은 기업이다. 파타고니아는 다른 기업 동일한 제품군보다 가격대가 높지만 최근 3년간 연평균 35%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파타고니아 제품이 비싼데도 구매율이 높은 이유를 친환경 제품이란 마케팅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파타고니아는 1985년부터 매년 전체 매출의 1%를 전 세계 환경단체를 지원하는 데 쓰고 있다. 최우혁 파타고니아 한국 지사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동안 친환경의 가치를 지지했지만 마땅한 선택처를 찾지 못했던 소비자들이 최근 파타고니아를 향하는 것 같다"고 매출 신장의 이유를 설명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칸타월드패널에 따르면, 상당수의 밀레니얼(46%)과 Z세대(42%)가 사회적 문제에 중요한 역할을 할 용감한 브랜드를 찾고 있다고 답했다. MZ세대가 SNS를 통해 기업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자신의 의사를 소비 행위로 적극적으로 표출한다는 의미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누리꾼의 돈쭐 문화를 적극적인 소비 운동의 일환인 바이콧(buycott)에 빗댔다. 바이콧은 불매운동을 뜻하는 보이콧과 달리, 소비자가 단결해 착한 기업의 제품을 사주자는 운동이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 착한 업체를 대상으로 이른바 '돈쭐'을 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기업을 부각하는 일종의 소비자 운동이다. MZ세대는 이런 운동을 통해 사회에 바람직한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과거 소비자운동이 활동가와 운동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MZ세대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누리꾼의 돈쭐 문화를 적극적인 소비 운동의 일환인 바이콧(buycott)에 빗댔다. 바이콧은 불매운동을 뜻하는 보이콧과 달리, 소비자가 단결해 착한 기업의 제품을 사주자는 운동이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 착한 업체를 대상으로 이른바 '돈쭐'을 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기업을 부각하는 일종의 소비자 운동이다. MZ세대는 이런 운동을 통해 사회에 바람직한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과거 소비자운동이 활동가와 운동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MZ세대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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