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꾸라 제안한다. 공간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과 감정, 생각의 방식과 욕망의 형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20세기는 산업화 시대였다. 국가와 시장이라는 거대한 체제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빨려간 시기다. 가난한 시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율과 이윤, 경쟁이라는 가치를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 또는 마을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모두의 성장을 위해서는 양보가 미덕이었던 시대였다.
그 결과 우리는 고유의 지역정체성인 로컬리티를 상실했다. 나도 모르게 모든 공간을 효율과 이윤의 시각만으로 읽어내는 존재가 됐다.
오늘날 부동산 광풍과 양극화의 폐해도 공간을 자본과 효율의 욕망에 따라 직조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효율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삶도 역사도 유대도 없는 오직 상품의 세계만 펼쳐진다. 이 세계 속에서 우리는 오로지 끝없이 증식하는 자본만 욕망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꿈도 건물주를 욕망한다. 이러한 획일화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대한민국에 희망은 없다.
최근 평택당진항 매립지에 대한 대법원 결정은 유감이다.
여전히 우리는 효율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대법원은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 온 평택당진항 매립지 분쟁을 오로지 효율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평택에 손을 들어줬다.
관습적으로 당진 시민의 삶과 로컬리티를 형성해 온 해상 경계의 공간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번 대법원의 판단은 효율 만능주의와 지난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논리를 재생산하는 시대착오적 결정이다.
효율을 근거로 매립지에 대한 법적 처리 문제는 끝난 듯 보이나, 진정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지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공간의 문제는 칼로 무를 자르듯 효율과 법적 논리만으로 풀 수 없다.
승자와 패자 이분법 구도를 만드는 법적 결정은 지역 간 맺어야 하는 인륜의 관계와 공공성을 회복시키지 못한다. 여기서 매립지 문제가 끝났다 생각하는 자는 당진과 평택 주민들이 적대적 이웃으로 대립하기를 바라는 자들일 뿐이다.
저항이 필요한 시기다. 충남의 바다를 메워 만든 땅은 충남의 것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그 속에서 우리는 단독적이고 고유한 지역성과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다.
21세기 자치분권의 시대에는 그것이 당연한 진리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세워야 한다. 충남도의회 의장이자 당진시민의 한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고 로컬리티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장소로써 평택당진항이 다시 태어나도록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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