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명예회장 제사는 고인이 생전에 거처했던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서 가집니다. 올해도 역시 20일 범현대가가 청운동 자택에 들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예전과 달리 모두 한자리에 모이지 않고 형제별로 시간대를 달리해 제사를 지냈습니다.
위대한 기업가 정주영 명예회장의 20주기를 맞으면서 현대가 적통(嫡統)을 이어받은 현대자동차그룹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그룹 시작은 1947년 설립한 ‘현대토건사’입니다. 지금의 현대건설입니다.
그러나 그룹 모태인 현대건설은 2000년대 들어 잠시 현대그룹을 떠납니다. 3조원에 가까운 부실로 워크아웃 절차에 들어갑니다. 현대건설은 2010년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매물로 나옵니다. 이때 현대그룹 적통문제가 불거집니다.
현대차그룹은 싫든 좋든 간에 모체인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형제간 분쟁에서 밀리면서 모그룹을 승계받지 못했습니다.
현대건설 인수전에는 고인이 된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과 형제의 난 이후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분리한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이 맞붙게 됩니다.
양 그룹 관계가 틀어진 상황에서 시작된 현대건설 인수전은 과열됐습니다. 당초 현대건설은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에 낙점됐습니다. 그러나 인수대금 출처를 제시하지 못해 MOU가 해지됩니다. 결국 현대건설은 현대차그룹에서 인수하고 범현대그룹의 모태를 이어받은 곳이 됩니다.
현대건설 인수전 당시 정몽구 회장은 현대건설 우선협상자로 현대그룹이 선정되면서 현대차 주거래은행인 한국외환은행과 거래를 끊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외환은행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그룹 시절부터 주거래은행이었습니다. 당시 시장에서는 외환은행이 현대차와 거래가 끊기는 것을 우려해 인수자를 바꿨다는 소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현대차의 공식적인 연혁은 1967년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든 것으로 시작됩니다. 연보상으로는 현대건설보다 20년이 늦습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의 본격적 사업 시작은 현대토건보다 앞선 1940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입니다. 정 명예회장은 아도서비스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만듭니다. 현대자동차공업은 지금의 현대자동차와는 다른 회사입니다. 현대자동차공업은 1950년 현대토건과 합병되면서 사라집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자동차산업 관련 예언(?)을 하나 합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1998년 출간한 회고록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자동차의 전기화가 장차 자동차 산업의 성패를 가늠할 궁극적 핵심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전기자동차를 미리 내다본 것은 아니겠지만, 미래 자동차 산업의 핵심을 정확히 예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건설 이미지가 강하지만 자동차에서도 일가견이 있었던 것입니다.
흔히 현대차는 ‘포니정’이라고 불린 고 정세영 HDC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키웠다고 합니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몽구 명예회장이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실상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현대차를 물려받은 것은 아닙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차 과장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현대차에 합병된 현대자동차서비스를 오랜 기간 경영했습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동차 산업 도전, 정몽구 명예회장이 몸소 체험한 A/S의 중요성은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의 현재와 미래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10월 취임하면서 “정주영 선대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의 업적과 경영철학을 계승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의선 회장은 단순히 정주영 명예회장의 가계도상의 장손이 아니라 범현대가 기업의 장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동차의 전기화’를 예언한 정주영 명예회장이 전기차 시대 현대차를 글로벌 리더로 부상시킨 정의선 회장을 봤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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