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3월 LG그룹이 처음으로 지주회사를 출범한 이후 국내 주요 그룹들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지배구조를 단순화한다는 차원에서 정부당국도 지주회사 체제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재계 11위인 신세계그룹은 사실 지주회사 체계를 갖추고 있는 기업집단은 아니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신세계그룹은 지주회사 체계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2011년 이마트 인적분할 후 두 지주 형태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와 신세계를 축으로 각각 계열회사를 지배하는 식으로 사실상 분리돼 있다. 지난 2011년 신세계가 신세계로부터 대형마트 부문을 인적분할해 이마트를 법인으로 출범하면서 사실상 신세계그룹은 두 개의 지주회사 형식을 갖췄다. 단 신세계와 이마트는 각각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지배하는 것을 주되 사업을 하는 회사가 아닌 사업을 직접 하는 업체로 지배구조상 제일 위에 있는 기업일 뿐이다.
대형마트·복합쇼핑몰·호텔 사업은 이마트가, 백화점·아울렛·면세점·패션 사업은 신세계가 지배하는 형태다. 그리고 이마트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신세계는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 맡아 경영을 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은 각각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맞교환하며 지금의 분리경영 체제가 만들어졌다. 당시 정 부회장은 보유 중인 신세계 지분 72만203주 전부를 정 총괄사장에게, 정 총괄사장은 이마트 지분 70만1203주 전량을 정 부회장에게 각각 넘겼다.
2년 후인 2018년에는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 신세계인터내셔날 지분 21.01%를 정 총괄사장에서 증여했다. 또 정 명예회장과 정 부회장이 보유하던 신세계인터내셔날 지분 0.68%와 011%도 넘겨받았다.
이때 이마트는 이 회장 일가가 보유한 신세계건설, 신세계I&C, 신세계푸드, 신세계조선호텔 등의 지분을 사들였다.
여기에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지난해 9월 28일 보유 중이던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 8.2%씩을 각각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에게 증여했다.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은 이마트 지분율이 10.33%에서 18.5%로,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 지분율이 10.3%에서 18.5%로 증가하면서 각각 회사 최대주주가 됐다.
신세계그룹 회장은 여전히 이들의 모친인 이명희 회장이지만 사실상 경영 뒷선으로 물러나고 남매가 각각 경영하는, 신세계그룹 내 두 개 지주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정용진, 광주신세계 지분 신세계에 매각 유력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명희 회장은 신세계와 이마트만 직접 지배하고 있으며 신세계는 11개, 이마트는 14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중 두 회사가 공동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SSG닷컴(이마트 50.1%, 신세계 26.8%)이 유일하다. 이 외에 이마트 자회사인 신세계건설이 신세계 자회사인 신세계의정부역사 지분 19.9%를 보유하고 있고, 정 부회장이 신세계 자회사인 광주신세계 지분 52.1%를 보유하고 있다. 이 3개사만 지분이 얽혀있을 뿐 남매간 계열사 교통정리는 사실상 끝난 상태다.
사실상 분리경영이 완성됐다는 점에서 신세계그룹의 계열분리도 멀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금 당장 신세계와 이마트가 계열분리를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신세계가 보유 중인 SSG닷컴 지분과 신세계건설이 보유한 신세계의정부역사 지분은 맞교환 형식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신세계그룹이 SK그룹에서 인수한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의 이름이 SSG랜더스로 정해진 것에서도 SSG닷컴이 이마트 계열로 넘어갈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다. 야구단 인수는 야구 광팬으로 알려진 정 부회장의 작품이다. SSG랜더스는 KIA타이거즈와 함께 유이하게(그룹사 계열이 아닌 히어로즈 제외) 그룹명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마트 대신 SSG를 사용한 것은 SSG닷컴의 홍보효과도 노렸겠지만 계열분리 후를 대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그룹명인 신세계를 사용할 경우 계열분리 후 팀명을 또다시 변경하는 수고를 거쳐야 한다.
정 부회장이 보유한 광주신세계 지분 52.1%는 조만간 신세계에 매각할 것으로 시장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이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이마트 지분에 대한 증여세를 낼 자금 확보가 필요하고, 신세계 입장에서 안정적인 지분을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광주신세계를 증여세 재원으로 사용할 경우 매각처는 신세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광주신세계 매출의 약 70%가 백화점 사업부문에서 나오기 때문에 명분도 뚜렷하다”고 말했다.
◆계열분리 서두르지 않을 듯
정용진・유경 남매가 신세계그룹 양대 축인 이마트와 신세계 최대주주가 되면서 경영권 승계구도는 확실해졌다. 이명희 회장의 증여와 사실상 분리경영이 완성됐다는 점에서 신세계그룹의 계열분리 시기도 멀리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신세계그룹이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으로 완전 계열분리를 서두르지는 않고 현재와 같은 사실상 한 그룹 두 지주 형식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도 있다. 이명희 회장이 아직 건재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유통환경이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자도생으로 가는 것보다는 유기적인 협조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 커머스가 급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SSG닷컴은 양쪽이 지분을 보유한 것만큼 유용한 유통망”이라며 “물론 계열분리 이후에도 서로 협력할 수 있지만 보다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동일 그룹 내에 있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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