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는 지재권 면제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야 분명 효과가 있겠지만, 이를 통해 국내 백신 생산 기업들이 탄력을 받기엔 사실상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평을 내놓고 있다.
3일 AP 통신에 따르면 론 클레인 백악관 비서실장은 2일(현지시간) "미국 무역대표부가 코로나19 백신을 더 많이 공급·허가하고, 공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국제 사회는 사실상 코로나19 백신 수급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에 대해 지재권의 한시적 면제를 누차 강조해왔다.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전 세계 코로나 감염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지재권 제한으로 백신 생산이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제 사회의 광범위한 압박으로 미국이 코로나19 지재권 면제를 검토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면서, 국내 기업들도 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다만 업계는 지재권 면제 검토가 장기적 측면에서 호재로 작용할 순 있겠지만, 중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기업은 △SK바이오사이언스 △셀리드 △유바이오로직스 △제넥신 △진원생명과학 등 총 5곳이다. 이들 기업 모두 현재 임상 1·2상 중이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미국이 지재권 면제에 나설 경우 국제 백신 기업들에게 장기적으로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당장 2분기 국내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기술 이전에 따른 생산 설비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상대가 다국적 제약사들이다 보니 협의해야 할 사항도 많다. 백신을 당장 상용화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촉박하다"고 설명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미국의 지재권 면제 검토 자체는 희소식이긴 하다. 다만 우리 나라 기업들이 기술 이전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환경 및 여건이 마련돼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문제는 감염 효과가 높은 화이자, 모더나 등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반 방식의 기술 이전이 핵심인데, 현시점에서는 이를 개발할 수 있는 생산 설비를 갖춘 곳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백신 개발 업체도 지재권 면제에 따른 생산 준비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무엇보다 지재권만 공유되고 공장 설치 등의 노하우가 공유되지 않으면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와 같이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CMO)을 할 수 있는 기업의 경우, 이미 기존 기업들(아스트라제네카·노바백스)과의 계약을 통해 회사가 생산할 수 있는 캐파(물량 규모)는 정해져있다"며 "지재권이 공개된다 하더라도, 대부분 업체는 물리적으로 (캐파를 벗어나) 생산망을 가동할 수 있는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또 mRNA 방식으로 처음 상용화된 화이자나 모더나의 경우 지재권이 공유된다 해도 시설 설비나 기술 노하우 등이 공유가 안되면, 사실상 업체 입장에서 백신을 만들 방법이 없다"며 "이를 위해 공장을 일시적으로 지을 수 없는 노릇이고, 또 공장을 설립한다 해도 이 과정만 해도 약 1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고 덧붙였다.
지재권 면제 검토에 앞서 글로벌 제약 기업들에게 인센티브 부여가 필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신광민 한국바이오협회 산업육성부문장은 "다국적 기업의 지재권 면제는 사실상 기업에게 이익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포기에 상응하는 보상이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면역 생성 차원에서 개발도상국에 백신이 공급돼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이 같은 부분은 용인되는 것이 맞다"면서도 "기업들이 지재권을 포기하기보다는 가격 이중 정책을 운용하는 방향 등, 좀 더 현실적인 백신 정책이 마련돼야 지재권 면제 검토도 의미가 있다"고 조언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