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기획칼럼] 4.가족…결혼-혈연-생계 이상의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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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1-05-2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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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누구이며, 무엇으로 맺어지고 이어질까.

대한민국 민법은 가족을 이렇게 정의한다.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제1항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


'미혼인 나'를 기준으로 하면 낳아주신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자매다. '결혼한 나'로 확대하면 남편 혹은 아내와, 내 피가 섞인 자녀 및 그 아래 세대다.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가 헷갈릴 수 있다. 쉽게 말해 내 동생의 배우자 혹은 조카가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는 법적으로 내 가족이다.

여기에 친양자(親養子) 조항이 추가된다. 입양한 자녀는 가족이 된다.

제908조의3(친양자 입양의 효력) ①친양자는 부부의 혼인 중 출생자로 본다.

즉 민법에 따르면 가족은 결혼과 직접적인 혈연 및 입양관계로 이뤄진다. 또 ‘2차적인 혈연 관계자’ 중 생계로 맺어진 사람들을 말한다.

가족 연결고리는 혼인, 혈연관계와 생계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고 말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 <어느 가족> 포스터]

<기생충>에 한 해 앞서 2018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원제: 좀도둑 가족·万引き家族)은 가족이 없는 가족 영화다. 

일본의 한 대도시 재개발 지역 쓰러져 가는 작은 집에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이모와 남매로 ‘보이는’ 여섯 명이 모여 산다. 이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다. 이들은 생계를 함께 하는 경제공동체다. 법적인 가족은 아니지만 가정경제를 꾸린다. 한 지붕 아래, 같은 밥을 먹는다. 싸우고 미워하다가도 농담하고 웃고 떠든다. 지지고 볶고 산다. 할머니는 노령연금으로 생활비 상당 부분을 낸다. 공사판 막일꾼 아버지, 세탁공장 노동자 어머니, 유사성행위업소에서 일하는 이모도 돈을 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동네 구멍가게에서 이들은 따로 또 같이 좀도둑질로 필요한 걸 얻는다. 혈연은 아니지만 생계를 함께 하는 이들은 절도 현장 발각, 할머니의 죽음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를 연결해 온 ‘그 무엇’을 찾는다. 엄마는 "낳아야만 엄마인가요"라고 뚝뚝 눈물을 흘리고, 아들은 입모양으로만 아저씨를 아버지라 부른다.

서너번 봤던 영화를 지난 주 다시 본 이유는 우리 민법에 나온 ‘생계’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일본 말로 오카네(お金), 돈을 언급한 나온 대사와 장면을 주목했다.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두 사람은 뭐로 연결돼 있어? 돈?”, “아니 다른 게 있어. 보통은 돈으로 이어져 있잖아, 우린 보통이 아니거든…”

관객들에게 감독은 혈연과 생계를 뛰어 넘는 가족 간의 그 무엇이 무엇인지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히로카즈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2009),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등 필모그래피(제작·연출 영화 목록) 내내 이 화두를 부여 잡고 있다.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의 개념도 사뭇 다를 수 있다. 미국 연수 시절 가깝게 지냈던 뉴욕 출신 4인 가족이 그랬다. 기자와 변호사인 레즈비언 커플은 정자은행을 통해 딸, 아들을 연달아 임신하고 출산해 4인 가족을 이뤘다. 여느 가족과 다름없이 아웅다웅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잘 먹고 잘 사는 가족이었다.
 

[4월 27일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브리핑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5년)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을 시작했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을 뛰어넘는다. 앞으로 5년 동안 가족이라는 개념을 점점 넓혀간다는 거다. 만약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커플도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방송인 사유리 씨처럼 법률적인 아버지가 없는 아이와 엄마로 구성된 가족도 가능해진다.

일부에서는 자녀가 아버지의 성(姓)을 따르지 않아도 되도록 법을 개정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이는 맞지 않다. 이미 민법 조항에 규정돼 있다. 단 이를 실제적으로 쉽게 할 수 있다고 한다는 거다.

민법 제781조(자의 성과 본) ①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이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런 가족 개념 확대에 대해 “국민 10명 중 7명이 혼인·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동의할 만큼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사회공감대가 높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법으로 정한 갖가지 가족 관련 내용이 바뀌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다. 지난 2015년 일명 ‘사랑이법’이 만들어졌다.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母)가 하여야 한다”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미혼부(未婚父-싱글대디)도 출생 신고를 할 수 있게 했다.

또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는 ‘구하라법’은 양육을 안 하거나 학대한, 사실상 가족이라 부르기 어려운 부모의 자녀 상속권을 상실시켰다.

이렇게 가족을 바꾸는 일에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수 백 년 간 이어져 온 기존 부계 중심 가족 제도가 무너져 혼란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없지 않다. 혼인과 가족, 그 제도와 윤리 역시 나름의 가치가 있다. 보수적인 입장에서 요지부동인 이들에게 ‘세상이 변했으니 법과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은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게다.

정영애 장관 역시 가족 개념 변경에 대해 “법적인 또는 윤리적인, 의학적인, 문화적인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쟁점이 수반되는 사항”이라며 그 한계와 어려움을 피력했다.

그 보다는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를 누려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게 나을 거라 본다.

제도와 윤리가 인권과 평등, 기본권을 해친다면 결국 그 제도와 윤리를 지키려고 애쓰는 이들 본인과 가족들의 절대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영화 <어느 가족>을 보면 알 수 있다. 과연 피를 나누고 생계를 같이 하는 이들'만'이 가족인지, 가족이 모여 사는 공간이 다 가정인지 아닌지를. 특히 영화에 나오는 '정상 가족'들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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