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의 일환인 공공기관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좌초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공기관 노동조합의 잇단 제도 도입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면서다.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히려는 정부와 소관 부처의 소극적 행정이 맞물린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은 31일 임기가 끝나는 나명현 사외이사 후임 인사를 두고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수은은 28일까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지 않았다. 31일에도 추천위 가동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 결의를 통해 추천위가 꾸려지는데, 수은은 아직까지 이사회 일정을 잡지 못했다.
청와대 추가 개각 때까지 추천위 가동이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권 말 금융공기관 사외이사 자리에 '제 식구'를 임명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번 수은 노조의 시도가 문재인 정부에서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만큼, 문 대통령의 공공기관 지배구조 투명화 공약이 사실상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른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가 추천한 인사를 사외이사에 두는 제도다. '낙하산 기관장' 견제와 의사결정 투명성 개선을 위해 문 대통령이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금융공공기관 사외이사는 기관장이 제청해 소관 부처 장관이 임명하기 때문에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민간 금융회사보다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수월하다.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IBK기업은행 노조가 2019년 2월 전체 공공기관 중 처음으로 도입을 시도했다. 노조는 당시 박창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을 추천했지만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 반대로 무산됐다. 이듬해 1월과 8월 수출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노조가 각각 사외이사를 추천했으나 불발됐다. 올해 4월 기업은행 노조의 도입 재시도 역시 금융위 벽에 막혔다.
대통령 주요 공약임에도 도입하지 못한 것은 공공기관 인사에 대한 정부와 청와대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노조 측은 주장한다. 금융권 한 노조 관계자는 "야당 시절 '낙하산 근절'을 외쳤지만 정권을 잡은 후 낙하산 인사는 어느 때보다 심해졌다"며 "기관장은 물론 사외이사에도 입맛에 맞는 인사를 꽂으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조추천이사제가 제도화돼 있지 않아 강제력이 없다 보니 부처가 총대를 메고 나서지 않는다"며 소관 부처의 소극적 대응을 도입 실패 요인으로 꼽았다.
민간 금융회사에서도 도입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문 정부가 들어선 직후 가동된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민간 금융사에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권고했고, 지금까지 이를 시도한 곳은 KB국민은행뿐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네 차례에 걸쳐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부결되며 무산됐다. 특히 2018년 3월에는 국민연금도 찬성표를 던졌으나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강성 노조에 대한 시각 있어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시 경쟁력 하락을 우려하는 시각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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