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서 세종시대 조선 금속활자 1600점 '무더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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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1-06-2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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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한양 중심부…세종시대 천문시계 등 다양한 금속유물 출토

29일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종로구 공평구역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 종로구 인사동(공평구역)에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를 포함해 15∼16세기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오래된 조선 금속활자로 확인된 ‘을해자(1455년 주조)’보다 20여 년 앞선 ‘갑인자(1434년 주조)’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도 다량 확인됐다. 추후 연구를 통해 ‘갑인자’로 확인되면, 이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시기(1450년경)보다 앞선 것이다.

문화재청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은 29일 “탑골공원 인근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 서울 종로구 인사동 79번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을 비롯해 물시계 부속품 주전, 일성정시의, 화포인 총통(銃筒) 8점, 동종(銅鐘)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되는 금속활자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다. 일괄로 출토된 금속활자들은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활자가 한 곳에서 출토된 첫 발굴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되어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점,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모두 출토된 점 등은 최초의 사례이다. 15세기에 한정하여 사용한 한글인 ‘ㅱ, ㅸ, ㆆ, ㆅ’ 등의 활자들이 출토됐다.

그 외에도 전해지는 예가 극히 드문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표기하여 연결하는 어조사의 역할을 한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 점 출토됐다.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 ‘을해자(1455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된 점은 유례없는 성과다.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에 확인된 조선 전기 활자는 발굴조사를 통해 나온 출토품이기 때문에 출처가 명확하다”라며 의의를 짚었다.

또한, 현재 금속활자들의 종류가 다양하여 조선전기 인쇄본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활자의 실물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글 창제의 실제 여파와 더불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당시의 인쇄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백두현 경북대 교수는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의 활자가 발견됐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며 “‘연주활자’는 한문 사이에 자주 쓰는 한글토씨(~이나·~하고·~하며·~시니)를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주조한 활자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나온 금속활자 발견 당시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


세종 시대 과학 유물이 대거 출토된 점도 주목할 만다. 도기 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린 상태로 출토되었다.

주전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되며,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조선 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가 처음 확인된 것으로 의미가 크다.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주야간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출토되었다.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하여 시간을 가늠한 용도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7년(세종 19년) 세종은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은 일성정시의 중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들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로 보인다. 현존하는 자료 없이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세종대의 과학기술의 그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서울 인사동에서 나온 일성정시의 [사진=문화재청 제공]


동종은 일성정시의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나누어 출토되었다. 포탄을 엎어놓은 종형의 형태로,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용뉴(龍鈕)도 있다, 귀꽃 무늬와 연꽃봉우리, 잔물결 장식 등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계승하였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들은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활자들은 대체로 온전했지만 불에 녹아 서로 엉겨 붙은 것들도 일부 확인되었다. 이들의 사용, 폐기 시점은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만력(萬曆) 무자(戊子)년에 제작된 소승자총이 있어 1588년 이후에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여 안전하게 보관 중이다. 발굴조사를 맡은 수도문물연구원 오경택 원장은 "건물터 형태를 보면 매우 특이하다"며 "관(官)이 지은 건물은 아닌 듯하고, 서울 시내에서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주택의 일자형 혹은 ㄱ자형 창고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 원장은 "일정한 크기로 잘려 있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봤을 때 의도적으로 묻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종로구 청진동·관철동 일대에서 조사를 하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한 16∼17세기에 제사용 그릇이나 총통을 일부러 묻거나 도망치면서 버린 듯한 흔적이 나오기도 한다. 더 연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시계 부속품인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 제품 [사진=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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