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주자들 사이에 도덕성 검증을 명분으로 한 네거티브 공세가 한창이다. 네거티브 공세는 좋은 구경거리다.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흥미를 돋우는 데는 최고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형수 욕설 파문과 여배우 염문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노무현 탄핵 찬성 여부 논란은 얼마나 재미있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의 술집 종업원 경력 논란과 검사 동거설은 또 어떤가. 그러나 이런 네거티브 공방이 대선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대목이 있다. 바로 대선주자들의 리더십 검증이다.
정치에서 네거티브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정치는 권력 투쟁이고 권력 투쟁에는 늘 음습하고 야비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는 동시에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을 꾀하는 리더십 경연이기도 하다.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모든 정치는 권력 투쟁과 리더십 경연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며 이를 ‘정치의 두 얼굴’이라고 했다. 정치를 두 얼굴을 가진 로마 신화 속의 신 야뉴스(Janus)에 빗대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려면 어느 한 얼굴만 보지 말고 두 얼굴을 모두 봐야 한다고 했다.
네거티브 공세만 넘치고 리더십 검증 없어
우리는 네거티브라는 원초적이고 감정적인 권력 투쟁에만 관심을 갖고 정치의 또 하나의 얼굴인 리더십 경연에는 소홀하기 쉽다. 정치를 권력 투쟁으로만 보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권력이냐’ 하는 정치의 또 다른 본질을 놓치기 쉽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 국면에서 진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네거티브 공세가 아니라 리더십 경연이다.
리더십 개념은 관점에 따라 다양하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정치학과 로버트 터커 교수는 정치와 리더십 분야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그는 리더십을 세 가지 기능으로 봤다. 상황 규정, 대안 제시, 대안 실행이다. 상황 규정이란 지금 집단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집단이 직면한 문제를 찾아내 제기한다는 점에서 문제 제기라고도 한다. 대안 제시는 상황 규정 또는 문제 제기에 따라 현재의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대안 실행은 집단 구성원들의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내 대안을 자발적으로 실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대선 후보자에게 적용한다면, 현재 우리나라와 사회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무슨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를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그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정부 각 부처와 사회 집단 및 국민들이 그 정책을 실행하도록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런 리더십 관점에서 여야 대선주자들을 살펴보는 것은 진정한 정치 리더를 골라내는 데 필수적인 일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최근 기본소득을 공약 1호로 발표했다. 전 국민에게 1인당 연간 100만원을 지급하고 19~29세 청년에게는 여기에 100만원을 추가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5180만명이고 이 중 20대는 700만명이다. 이 지사 정책대로 하려면 총 59조원이 필요하다. 연간 100만원이면 한달 8만3300원 꼴이다. 이 정책의 밑바탕이 된 상황 규정은 무엇일까? 지금 대한민국이 전 국민에게 월 8만원이라도 주지 않으면 안 될 절대적 빈곤 상황에 처해 있기라도 하다는 뜻일까? 과연 그런 상황인가?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 상황을 타개하는 대안으로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전 국민에게 월 8만원씩을 지급하는 게 최선책일까? 설득력 있는 상황 규정이고 대안 제시인지 의문스럽다.
이재명 ·윤석열, 리더십 잣대로 재보니
이 지사 공약에 대해 정세균 전 총리는 “취약 계층을 위해 쓰여야 할 국가 예산을 부자들에게(까지) 나눠 줘 양극화만 심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나랏돈으로 복지 정책을 펴려면 취약 계층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김두관 의원은 “내게 그 돈(59조원)을 준다면 지방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 4개를 더 만들겠다”고 했다. 일회성 현금 지급보다 나라 발전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은 공정과 상식을 내우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공정과 상식이 무너져 있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뜻일 게다.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우리 사회 상황을 공정과 상식의 붕괴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윤 전 총장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상황 규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정과 상식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 없다. 상황 규정을 제대로 했더라도 거기에서 비롯되는 설득력 있는 대안 제시가 없다면 훌륭한 리더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상황 규정과 대안 제시를 잘 하려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진단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상황 규정을 잘한 대표적 사례의 하나로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달 착륙 프로젝트인 아폴로 계획이 꼽힌다. 1957년 10월과 11월에 소련이 인류 사상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와 2호를 연달아 발사했다. 미국 국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미국 과학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믿고 있었다. 소련의 인공 위성 발사 성공은 미국인들의 믿음을 한순간에 깨뜨렸다. 미국인들을 두렵게 만든 것은 또 하나 있었다. 소련이 인공위성 기술로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개발해 미국을 선제 공격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었다.
그러나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인공위성 발사라는 우주 개발경쟁을 미친 짓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인공위성을 발사하느니 그 돈으로 고속도로, 비행장, 철도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을 만들어 경제를 일으키는 것이 나라 발전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론 압력에 못 이겨 1958년 6월 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하고 우주 개발에 나설 준비를 했다. 그러나 속으론 여전히 우주 개발에 부정적이었다. 그 사이 소련은 1961년 4월 인간을 태운 우주 비행선 발사에 성공했다. 인류 사상 첫 유인 우주선이었다. 미국인들은 또 한번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비전 제시 리더십의 모델 케네디 대통령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했다. 케네디는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을 아이젠하워와는 다른 시각에서 봤다. 우주 개발 경쟁은 단순한 경제 문제나 과학 기술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중심 자유주의 체제와 소련 중심 공산주의 체제 간의 경쟁이라고 규정했다. 그 당시만 해도 세계 여러 나라들은 미국식 자유주의 체제와 소련식 공산주의 체제 사이에서 선택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우주 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뒤지면 세계 여러 나라들이 미국식 자유주의 체제의 패배로 보고 소련식 공산주의 체제를 따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케네디는 항공우주국 관계자와 과학자들을 불러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새로운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케네디는 소련을 이기려면 새 대안은 ‘인류의 첫 발자국’이 될 만한 것이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인공위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그 길은 인류의 달 착륙뿐이라고 대답했다. 케네디는 즉각 수용했다. 그리고 1961년 5월 ‘아폴로 계획’을 발표했다. 아폴로 우주선에 인간을 싣고 달에 착륙하는 프로젝트였다. 20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데다 성공 가능성도 희박하고 우주선에 탄 비행사의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모험 가득한 계획이었다.
케네디는 국민과 의회를 상대로 ‘왜 달인가’를 역설하고 설득했다. “달에 가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미국이 세계 최고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다. 자유와 독재 사이의 전쟁에서 어느 체제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두 번째는 불가능에의 도전이라는 새로운 비전 제시다. 달에 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래서 가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1969년 7월 20일 우주 비행사 3명을 태운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미국은 자유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세계에 보여줬고 세계의 리더가 됐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이런 것이다. 상황을 정확히 읽고 판단하는 눈을 갖고 있고,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대안을 제시하고, 왜 그 대안을 실행해야 하는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상황 규정과 대안 제시는 우리가 흔히 리더의 자질로 여기는 철학과 비전의 제시다. 상황 규정과 대안 제시를 얼마나 설득력 있고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게 하느냐에 리더십 수준이 달려 있다.
링컨의 실용·루스벨트의 소통 리더십도 본받을 만
미국 대통령 중에는 케네디 말고도 리더십의 교본이라고 할 만한 대통령들이 많다. 흑인 노예 해방을 선언한 링컨도 그중 하나다. 링컨은 노예 해방 과정에서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현실을 수용하는 실용과 중도의 리더십을 보였다. 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미국 독립선언서를 성경처럼 받들었다. 그러면서도 흑인 노예를 당장 해방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흑인 노예를 당장 해방하면 평생 노예로 지내온 그들이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다고 했다. 또한 흑인 노예의 노동력에 의지해온 미국 남부 지역의 반발이 거세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되 그 평등은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노선을 택했다. 독립선언서의 원칙과 흑인 노예의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취한 것이다. 이런 실용과 중도의 원칙에 따라 노예 해방은 남부 일부 지역에서부터 서서히 이뤄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으로 꼽힌다. 루스벨트는 어려운 정책 문제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마치 난롯가에서 친구들과 정겹게 얘기를 나누듯 정책을 설명한다고 해서 이 라디오 연설을 사람들은 ‘노변 정담’이라고 불렀다. 루스벨트는 재임 중 30여회 노변 정담을 했다. 루스벨트는 언론과의 소통도 중시했다. 백악관 출입 기자들과 공식 기자회견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루스벨트다.
이재명, 이낙연, 정세균, 윤석열, 최재형, 원희룡 등 대선주자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과연 어떤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가?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그걸 돌파할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가? 자기만의 리더십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실용과 중도의 리더십을 보이기보다 일제 식민지 잔재 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아직도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편가름하는 주자들,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을 보이기보다 ‘누가 뭐래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주자들만 넘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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