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家) 3세인 구본상 LIG그룹 회장이 또다시 법정에 섰다. 이번엔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1330억원 상당을 포탈한 혐의다. 구본상 회장은 앞서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기도 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구 회장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조세) 혐의로 지난해 12월 17일 불구속기소됐다. 동생인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과 LIG그룹 전·현직 임직원 4명 등도 같은 혐의로 나란히 재판에 넘겨졌다.
구 회장 형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주식 매매과정에서 양도가액과 양도시기를 조작해 양도세·증여세 등 세금 1330억원가량을 포탈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북부지검 조세범죄형사부에 따르면 이들은 2015년 5월 말 그룹 자회사인 방위사업체 LIG넥스원 공모가를 반영한 LIG 주식 평가액이 주당 1만481원인데도 3846원으로 조작하고, 1개월 뒤 이런 허위 금액으로 주식 매매를 한 혐의를 받는다.
LIG넥스원 유가증권신고는 2015년 8월 시행된 만큼 같은 해 6월에 이뤄진 LIG 주식 매매는 LIG넥스원 공모가 적용 대상이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특수관계인인 대주주끼리 주식을 사고팔 땐 3개월 이내 유가증권신고 예정인 자회사 공모가를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유가증권신고 예정인 LIG넥스원 공모가를 반영해 1만2036원에 매매하는 것으로 신고해야 합법이다.
하지만 구 회장 형제는 주주명부와 주권의 명의변경 시점을 그해 4월로 조작, 주당 3876원으로 매매가로 낮춰 신고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이런 방식으로 구본상 회장을 비롯한 LIG 총수 일가와 관계자 6명이 증여세 919억9826만원과 양도소득세 399억5192만원, 증권거래세 10억514만원 등 1329억5533만원에 달하는 세금을 탈루했다고 봤다.
서울북부지검은 "LIG그룹 창업자 구자원 LIG 명예회장이 사망한 뒤 장남인 구본상 회장과 차남인 구본엽 전 부사장 중심으로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하려고 다른 대주주들이 가진 지주사인 LIG그룹 지분을 두 형제에게 옮기는 과정에서 세금을 포탈했다"고 판단했다. 구자원 명예회장은 지난해 3월 별세했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서울지방국세청 고발로 수사에 착수했다. 기소 전까지 LIG그룹 사무실 등을 네 차례 압수수색하고, 구 회장 등 회사 관계자 30여명을 조사했다.
구 회장의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권성수·박정제·박사랑 부장판사)가 심리 중이다.
구 회장 측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검찰이 주장하는 범행 시기엔 구자원 명예회장 등 그룹 윗세대가 의사결정권자여서 구 회장을 비롯한 아랫세대는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 관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구 회장이 당시 수감 상태였던 점도 무죄 근거로 내세웠다. 구 회장은 LIG건설이 부도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버지 구자원 명예회장·동생 구본엽 전 부사장과 짜고 2000억원대 사기 CP를 발행한 혐의로 2012년 10월 31일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를 적용해 같은 해 11월 이들 모두를 재판에 넘겼다.
그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돼 2016년 10월 29일 만기 출소했다. 대기업 총수 가운데 만기 형량을 다 채우고 교도소에서 나온 건 구 회장이 처음이었다. 구 회장은 1심 재판 중 방어권 차원에서 보석을 신청했지만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기각되기도 했다.
LIG건설은 건설경기 침체로 1조원에 달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융비용 부담과 미분양 물량 등으로 재무구조와 경영 상태가 크게 나빠져 2011년 3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 그해 9월 회생계획을 인가받았다.
그런데도 구 회장 측은 법정관리 신청 계획을 숨긴 채 담보로 맡긴 주식을 되찾을 자금을 마련하려고 2010년 10월~2011년 3월 금융기관에서 1894억원 상당의 사기성 CP와 260억원 상당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피해를 본 사람만 수백명에 달한다.
1심은 구본상 회장(당시 LIG넥스원 부회장)에게 징역 8년, 구자원 명예회장(당시 회장)에게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했다. 구본엽 전 부사장은 무죄가 나왔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구 회장에겐 1심보다 적은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했다. 구자원 명예회장 역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형량이 줄었다. 구본엽 전 부사장 혐의는 유죄로 판단이 뒤집혀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2014년 대법원은 구 회장 형제에게 실형을 내린 2심 선고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허위로 재무제표를 공시하고, CP 상환 능력이 상실됐다거나 회생계획 신청을 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등 기본적으로 기망 행위가 인정된다"고 이들을 꾸짖었다. 그러면서 "기망 행위 가운데 일부를 구자원 회장 부자가 각각 다른 피고인들과 공모했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1330억원 조세 포탈 혐의에 관한 다음 재판은 오는 31일 열릴 예정이다.
앞서 지난 5월 열린 2차 공판에 구 회장은 자가격리를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당시 구 회장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이 확인돼 방역당국 지침에 따라 자가격리 중이었다. 형사재판 공판기일엔 피고인이 출석해야 하지만 불가피한 사유가 있으면 재판장 허락을 받아 불참할 수 있다.
구 회장은 LG가 3세다. 할아버지가 LG 창업주 고(故) 구인회의 첫째 동생이자 창업 동지인 고 구철회 전 LIG그룹 회장이다. 구철회 전 회장 장남인 구자원 명예회장이 1999년 LG에서 독립해 LIG그룹을 만들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