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44년 ‘일본에 가면 중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일본인 교장과 헌병의 꼬임에 넘어간 양금덕 할머니는 조선여자정신대에 지원했다. 그녀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다.
아버지의 극렬한 반대로 일본인 교장에게 “진학을 포기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렇다면 너(양금덕 할머니)의 부모를 체포하겠다”는 협박만 되돌아왔다. 겁을 먹은 그녀는 담임에게 아버지 몰래 도장을 가져다 주었다.
그녀는 일본 나고야 지역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갔다. 일본인 교장의 말과 달리 그녀는 그들한테서 동물 취급을 받으며 강제노역을 해야만 했다.
양금덕 할머니가 일본에 머물던 19개월 동안 미쓰비시 중공업은 “(양금덕 할머니가) 중학교에 다니면서 밥도 배부르게 먹고 옷도 잘 입고 살고 있다”고 쓴 거짓 편지를 그녀의 가족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1944년 12월 도난카이 대지진이 그녀가 강제노역을 당하고 있던 곳을 덮쳤다. 무너진 담장에 깔려 희생된 10대 한국인들만 해도 6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도 벽면 틈새에 갇혀 왼쪽 어깨를 다치긴 했지만 겨우 목숨은 보전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미쓰비시는 그녀에게 “(급여를) 통장에 넣어뒀다가 한국에 돌아갈 때 한꺼번에 주겠다”며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벗어나 독립한 해인 지난 1945년 10월 미쓰비시는 “너의 고향 집으로 월급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며 그녀를 고향으로 돌려보냈지만 미쓰비시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조차 없었다.
그녀는 해방 후 돌아와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일본에 끌려갔다 왔다는 이유로 이상한 눈총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일본에 갔다 왔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때리고 외면하기도 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부터는 생선 장사를 하면서 홀로 6남매를 키웠다.
양금덕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당한 강제노역에 대한 응어리를 풀고자 피해자들과 함께 지난 1999년 3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2008년 일본 최고 재판소에서 결국 패소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일본 외무 장관 오히라 마사요시와 회담을 하면서 대일 청구권 문제에 대해 타협점에 도달헸다.
일본이 한국에게 3억 달러와 경제 차관 3억 달러를 주는 대신 한국은 일본이 한 식민 지배 때문에 발생한 피해에 대한 배상을 전부 포기하기로 약속한 것이 골자다. 경제 차관이란 경제 부문의 일을 처리하는 데 쓰려고 낸 외국 빚을 말한다.
그리고 같은 달 2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케다 하야토 일본 총리와 한일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지난 1964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일 회담 반대 투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급기야 같은 해 6월 3일에는 ‘굴욕적인 한일 회담 반대’를 외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했다. 그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진압한 후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마무리 지은 바 있다.
일본 정부와 법원은 이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없어졌다는 태도를 고수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난 2012년 “남성 강제징용 피해자들도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같은 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이 사건을 담당한 1심 재판부는 “미쓰비시 측이 양금덕 할머니 등 피해 당사자 4명에게 위자료로 각각 1억 5000만 원씩을 배상하라”는 판단을 내렸다.
미쓰비시는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쓰비시 측은 “구 미쓰비시중공업과 현 미쓰비시중공업은 회사가 달라 배상 책임이 없다. 1심 법원이 내린 판단이 일본 재판소가 한 판결과 모순된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담당 항소심 법원인 광주고등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홍동기 부장판사)는 미쓰비시 측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 미쓰비시중공업은 한반도를 불법적으로 점유한 일본 정부의 강제적 인력 동원 정책에 적극적으로 편승해 13∼14세의 어린 학생들을 속여 강제 동원하고 열악한 조건에서 위험한 노동을 강요하고 급여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이는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미쓰비시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없다고 하지만 협정은 개인의 청구권 포기까지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미쓰비시중공업은 위자료를 지급할 이유가 있다”라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항소심 법원과 같은 취지의 판단을 하면서 원심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미쓰비시중공업은 지금까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고, 어떤 주장도 할 수 없게 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라며 판결을 이행하지 않아 왔다.
앞서 피해자들은 지난 2019년 3월 대전지방법원으로부터 “약 8억 400만 원의 가치를 지닌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특허권 6건과 상표권 2건을 압류한다”는 결정을 받아낸 바 있다. 하지만 정작 대전지방법원이 이 권리들에 대한 매각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상표권 등과 같은 권리는 일반적인 재산과 달리 바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매각 명령과 같은 특별 현금화 절차를 거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손에 돈을 쥘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법원이 매각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압류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셈이다.
피해자들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LS 그룹 계열사인 LS엠트론이 트렉터 엔진 등 부품을 산 뒤 미쓰비시중공업에게 보내야 할 물품 대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달 초 강제동원 피해자 1명과 사망한 피해자 3명의 유족은 강제집행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에 “LS엠트론한테서 받게 될 물품 대금과 관련한 채권을 압류해달라”며 압류 및 추심명령을 냈다.
그리고 지난 12일 담당 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이 LS엠트론으로부터 받기로 되어 있던 물품대금 채권에 대해 압류 및 추심명령”을 내렸다. LS 엠트론이 미쓰비시중공업에게 줘야 할 돈이 있다면 그 중 배상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보낼 수 없으며, 그 돈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직접 줘야 한다는 취지다.
압류된 채권액은 8억 5319만 원이다. 지난 2018년 대법원이 판결로 확정한 1인당 1억 5000만 원의 위자료와 지연손해금, 집행 비용 등을 합한 금액이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실질적 배상이 이뤄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실제 배상금을 받기까지는 여러 법적 변수가 남아 있다.
우선 피해자들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지는 LS 엠트론이 법원이 내린 추심명령에 따라 미쓰비시중공업에게 줘야 할 물품대금 중 8억 5천여만 원을 피해자들에게 자진해서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현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다.
LS 엠트론은 “우리가 거래한 회사는 미쓰비시중공업이 아니라 그 자회사인 미쓰비시중공업엔진시스템”이라는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미쓰비시중공업 측과 거래를 한 사실이 없어 미쓰비시중공업에게 줘야 할 돈도 없다는 취지다.
이와 다르게 LS 엠트론이 법원이 내린 명령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피해자들은 부득이 추가 소송에 나서야 한다. 법원에 LS 엠트론을 상대로 “압류된 돈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추심금 청구소송을 제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소송에서 담당 재판부가 ‘LS 엠트론이 미쓰비시중공업에게 줘야 할 물품대금이 존재한다’라는 사실관계를 확정한 다음 “그중 법원의 압류결정에 따른 배상액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라”는 판단을 법원으로부터 받아야만 비로소 피해자들은 LS 엠트론한테서 배상액을 상당의 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와 별도로 미쓰비시중공업이 법원의 명령에 불복한다는 뜻과 그 이유를 적은 즉시항고장을 법원에 제출하는 방법으로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즉시항고란 법원이 내린 명령이나 결정에 대해 불복할 뜻을 가진 사람이 법률로 정한 일정한 기간 내에 상급 법원에 상소하는 일을 말한다.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에 대한 즉시항고 기간은 법원이 보낸 결정문을 받은 날로부터 1주일 이내다(민사집행법 제15조 제2항).
이 경우에도 피해자들은 추심금 청구소송을 진행할 수 있어 LS 엠트론한테서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다. 민사집행법 제15조 제6항에 따르면 이 경우에도 추심명령 효력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이 만약 미쓰비시중공업의 즉시항고를 받아들여 “추심명령은 위법하다”고 판단한다면 추심명령은 곧바로 그 효력을 잃게 돼 피해자들이 LS 엠트론을 상대로 낸 추심금 청구 소송에서도 패소할 수 있다.
하지만 미쓰비시 측이 즉시항고를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난 2018년 대법원이 이미 미쓰비시 측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다만 피해자들이 배상금을 받기까지는 3년 이상 걸릴 전망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이 법원이 보낸 명령문 수령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1년 정도의 시간을 끌 수 있다.
그리고 “명령문이 미쓰비시중공업에 도달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법원이 결정이 내려져도 그때부터 미쓰비시중공업 측이 법원에 즉시항고를 제기하면 대법원 판단이 나오기까지 1년이 더 걸릴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LS엠트론을 상대로 추심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이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가 “미쓰비시중공업이 낸 즉시항고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을 보고 해당 사건을 판단할 것”이라는 방침을 정하면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일본의 강력한 반발도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지난 19일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에 있는 채권에 대한 압류 명령을 내린 것을 두고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또 가토 장관은 “만약 현금화에 이르게 되면 한일관계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 측에 반복해서 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외교부는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며 “정부는 피해자 권리 실현 및 한일 양국 관계 등을 고려하면서 다양한 합리적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일본 측과 긴밀히 협의 중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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