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공모 청약에 나선다. 선박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발주량도 늘어나는 '빅사이클'이 조선업계에 도래하고 있는 만큼 투자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과 수주와 매출 간 괴리가 발생할 수 있는 발주산업의 특성이 발목을 잡는다. 현대중공업은 '친환경'과 '수소'를 앞세워 이 같은 우려를 잠식시킨다는 계획이다.
◆ 수요예측 성공한 현대重…청약으로도 열기 이어질까
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2일부터 3일까지 이틀간 진행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1000대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최종 경쟁률이 1500대1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투자자 대부분이 희망공모가 상단 이상을 적어낸 만큼 공모가는 상단 이상으로 확정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이 이번에 공모하는 물량은 총 1800만주다. 희망공모액은 5만2000~6만원으로 공모가가 상단으로 결정될 경우 모집 총액은 1조800억원에 달한다.
청약은 오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이 공동대표주관사를 맡았다. 이 밖에 하나금융투자와 KB증권, 삼성증권, 대신증권, DB금융투자, 신영증권 등에서도 청약이 가능하다. 중복청약은 금지됐다. 상장 예정일은 오는 16일이다.
◆ 훈풍 부는 조선업계…선가 상승세에 발주 '호황'
올해 조선업은 수주 측면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지난 7월까지 글로벌 신조선 발주량은 297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선박 발주는 당분간 양호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며 "연간 발주량은 3980만CGT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강재가격 급등으로 인해 3분기 발주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겠으나 카타르 등 대형 LNG선 프로젝트 발주가 재개되는 4분기에는 회복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조선사들은 선박 발주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들은 지난 1~7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43%에 달하는 1276만CGT를 수주했다. 글로벌 선박 수주를 싹쓸이하면서 조선사들의 수주 곳간도 가득 차는 중이다. 국내 주요 조선사(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의 올해 1~7월 조선 및 해양부문 누적 신규 수주는 286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연간 신규 수주 213억 달러보다 34.2% 높은 수치이자 연간 수주 목표치의 86.9%에 달하는 수준이다.
선박 발주 증가는 선박 수요 증가에서 기인했다. 백신 보급이 확대되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될 것이라는 전망이 부상하고 해상 물동량이 증가하면서 선가가 상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27일 기준 신조선가 지수는 145.8포인트로 지난해 말(125.5포인트) 대비 16.1% 상승했다. 특히 중고선가 지수는 지난해 말(93.0포인트) 대비 79.6% 급등한 167포인트를 기록했다. 중고 선박의 가격이 신조 선박보다 빠르게 상승하면서 '이 돈이면 선박을 새로 발주하겠다'는 기조가 조선사에 호황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 수주행진에도 주가는 약세…어떤 악재 있길래
다만 현대중공업 청약에 무작정 뛰어들기에는 불안 요소가 존재한다. 선박 발주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조선주 주가가 약세라는 점이다.
조선 3사의 주가는 지난 3~5월 기록했던 52주 최고가 대비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30% 이상 하락했다. 3일 대우조선해양 주가는 지난 5월 기록했던 최고가 4만750원 대비 33.37% 하락한 2만7150원에 마감했다. 한국조선해양도 같은 날 기록했던 최고가(16만3500원) 대비 30.58% 하락한 11만3500원으로, 삼성중공업은 지난 3월 기록한 8000원 대비 21.62% 하락한 627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악재는 선박의 주요 원자재가 되는 후판 가격의 급등이다. 지난해 톤당 66만7000원이었던 선박용 후판 가격은 올해 상반기 98만8000원으로 48.12% 급등했다. 후판 가격 급등은 후판의 원자재인 철광석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톤당 91달러였던 철광석 국내 수입 평균가격은 2020년 하반기 톤당 126달러, 2021년 상반기 톤당 182달러로 급등세를 기록하고 있다.
후판 가격 급등은 조선사로 하여금 대규모 공사손실충당금을 설정하게 하면서 재무상황을 크게 악화시켰다. 현대중공업그룹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2분기 실적에 반영한 공사손실충당금은 각각 8960억원, 3720억원, 8000억원에 달한다. 이로 인해 조선 3사는 전세계 선박 발주를 싹쓸이하면서도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 '조선'만으로는 한계 있다…현대重의 '친환경' 출사표
현대중공업은 전통산업인 조선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친환경'이라는 키워드를 준비했다. 지난 2일 개최한 간담회에서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친환경·디지털 선박 개발에 3100억원,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 32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셈이다.
친환경 선박 투자는 향후 현대중공업의 시장 지배율을 끌어올릴 전망이다. 최근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 국제해운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08년의 50%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는 등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후 선박을 교체해야 하는 수요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선주들 역시 향후 규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친환경 선박에 더 큰 관심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증시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수소' 분야에 대해서도 투자 계획을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해상 그린수소 인프라 구축에 13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앞서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3월 '수소 드림(Dream) 2030 로드맵'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수소 밸류 체인을 구축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수소는 원유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원자재다. 지난해 8700만톤이었던 글로벌 수소 수요는 2050년 5억3000만톤으로 6배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와 SK, 포스코 등이 공동 의장을 맡고 롯데와 한화, GS 등이 참여하는 수소기업협의체가 오는 8일 출범을 앞두고 있다.
◆ 증권가는 현대重에 합격점…"청약 해볼 만하다"
증권사들은 현대중공업의 주가가 상장 후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본업인 조선업에 호황기가 다가오는 중이고 해양 부문에서도 추가적인 성장이 전망된다는 이유에서다.
황어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달 27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9만원을 제시한다"며 "2023년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차별적 수주잔고 증가와 선가 인상이 전망된다. 해양 부문도 부유식 해상풍력과 그린수소 사업 분야가 향후 울산지역에서만 9조1000억원의 발주가 예상된다. 2028년이면 매출액이 1조3000억원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지난 2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현대중공업의 공모가는 상반기 말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의 0.8~0.9배 수준으로 업종 글로벌 비교기업 평균 1.12배 대비 낮다"며 "선박 교체 사이클과 환경규제에 따른 친환경 선박 관심도 증가 등을 고려하면 불황 탈출 시점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상장 후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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