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금감원 CEO 제재’와 ‘금융사 자율규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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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 기자
입력 2021-09-06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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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법원의 한 판결 결과에 금융권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됐다.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부실판매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손태승 전 우리은행장에게 내린 중징계(문책경고)에 대한 취소청구 행정소송 1심 선고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감독당국 제재에 반기를 들고 소송에 나선 현직 금융권 수장이 전무했던 데다, 현 법령 상 내부통제 책임을 물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징계를 하는 것이 합당하냐에 대해 당국과 금융사가 다툰다는 측면에서 시장의 관심이 뜨거웠다. 특히 손 회장을 필두로 여타 금융회사 CEO까지 연달아 동일한 내용의 법적 공방에 나선 상태여서 이번 판결이 미칠 파장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 1심에서 재판부는 일단 손태승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금감원이 내세운 처분 사유 5가지 중 4가지는 불명확한 지배구조법 내용을 무리하게 적용했다”며 금감원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금융회사 CEO에 대한 금감원의 징계가 과도하다며 취소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금감원의 항소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현재로써는 금융회사가 '승기'를 잡은 듯한 모습이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법리를 제대로 구성하지 못했고 지배구조법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는 재판부 지적이 뼈아팠다. 금융권에 금융투자상품 취급과 관련한 내부통제 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은 데다 금융당국이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아 우리금융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였다. 실제 내부통제 미흡을 근거로 CEO 처벌이 가능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의 경우, 지난해 정부 입법 등을 통해 마련됐으나 1년 넘도록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재판부는 손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금융회사에도 책임이 있다며 DLF 사태에 대한 우리금융의 책임을 희석시키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인 우리금융 측에 상품 선정 및 판매 결정 과정에서의 형식적 절차와 내부통제 수단의 부실을 강도 높게 지적했다. 

판결문을 받아든 금융권의 대응은 발 빨랐다. 금융권 협회장들은 6일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와 관련해 이사회의 내부통제 역할 강화를 골자로 하는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금융사고 발생 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임직원을 제재하는 것이 아닌, 금융회사 이사회가 내부통제 오작동에 책임 있는 자체 징계를 내리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에는 개선방향 제시 등 '원칙' 중심의 감독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제는 금융당국이 화답해야 할 때다. 제재 근거 없이 ‘아니면 말고’ 식의 중징계를 내리기보다는 누구나 예측 가능한 입법적인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아울러 사전적 예방에 무게를 싣는 소비자보호 방안도 필요하다. 이번 소송 결과를 계기로 금융당국과 금융회사, 금융소비자 모두 각자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진=이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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