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느닷없는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대남 강공모드로 일관했던 북한은 지난 25일 태세를 전환해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은 물론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내비쳤지만, 사흘만에 다시 미상 발사체를 발사해 대남·대미 도발을 강행했다. 미국 측의 태도 변화를 꾀하고 추후 남북·북미 대화에서 협상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28일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이날 오전 6시40분 내륙에서 동쪽으로 미상발사체를 1발 발사했다"며 "현재 포착된 제원의 특성을 고려해 한·미 정보당국이 정밀 분석중에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발사체 발사는 지난 15일 '철도기동미사일연대' 사격훈련 차원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한 지 13일 만이다.
청와대도 이날 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를 개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오늘 오전 8시부터 9시15분까지 원인철 합참의장으로부터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상황을 보고받고, 대응 방안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NSC 상임위원회는 한반도의 정세 안정이 매우 긴요한 시기에 이뤄진 발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 北 미사일 발사한 지 20분만에 "美 적대정책 철회 의지 없어" 비난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미상발사체를 발사한 지 20분만에 미국을 향해 한반도 주변의 합동군사연습과 전략무기 투입을 중단하면 화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이 현단계에서 적대정책을 철회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김 대사는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 참여해 "미국 행정부는 적대적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말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조선에 대한 이중 기준을 철회하는 용단을 보이면 기꺼이 화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누구도 북한이 보유하고 있거나 개발 중인 무기 체계와 동등한 자기방어권을 개발하고 시험하고 제조하고 보유할 권리를 부인할 수는 없다"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는데 책임 있는 것은 북한의 증가하는 억지력이지 미국의 자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북한은 미국이나 주변국가에 대한 직접적 위협은 피했다. 김 대사는 "우리는 침략을 막을 자위적 권리가 있고, 강력한 공격수단도 있지만 누구를 겨냥해 쓰고 싶지 않다"며 "미국이나 남조선 등 주변국가의 안전을 절대 침해하거나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비 증강을 방어 목적이라고 선을 그으며 미사일 개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추가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 올해 6차례 도발, 9월에만 3차례...바이든 정부 초기 협상력 우위 노림수
북한은 올해 △순항미사일 2발(1월22일) △순항미사일 2발(3월21일) △신형 전술유도탄(단거리 탄도미사일 KN-23 개량형) 2발(3월25일) △열차 발사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 (9월 15일)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2발(9월 11~12일)을 각각 시험 발사했다.
올해 들어 6차례의 무력시위가 감행됐는데, 그중 3차례가 이달 진행된 셈이다.
정권 수립 73주년(9월 9일)과 내달 당 창건 76주년(10월 10일) 등 외교 이벤트가 몰려 있는 가운데 대미·대남 메시지를 발신해 주목도를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날 북한의 도발 목적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한·미연합훈련 중단, 첨단무기 개발 중단, 대북제재 완화 등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담화 동향을 예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종합적으로 면밀히 평가하고 분석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을 아꼈다.
◆ 정부 '도발' 대신 '유감' 표명하며 신중 대응...北 추가 도발 가능성은?
특히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이전과 달리 '도발'로 규정하는 데는 신중한 모습이다. 이를 두고 남북화해 불씨를 살리기 위해 북한이 자신들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매도하지 말라고 요구한 점을 고려한 것이 아니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남측의 '유감' 표명에도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정부가 도발로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유감'을 표명해 북한이 다시 한국정부의 '이중기준', '이중잣대'를 비난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북한이 유화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대북 제재 완화 등에 대해 현실성 있는 로드맵을 수립해 미․중․북과 긴밀하게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북한은 남측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14기 5차 회의를 개최한다. 회의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추가 대남·대미 메시지를 내놓을 지 주목된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지난해 사업에 대한 전반적 평가, 올해 사업 계획, 예산 결산, 법제 정비 주로 다루는 기구로, 그동안 관행을 보면 남북 등 대외적 메시지 나올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며 "다만, 2019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정 연설로 남북관계를 밝힌 사례가 있어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