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규 택지를 개발해 새 아파트를 공급하기로 했다가 사업 지연 등으로 착공하지 못한 공공주택 물량이 전국 10만5000여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올 초 정부가 2·4 공급 대책에서 발표한 신규 택지 공급 물량(26만3000가구)의 40%에 해당하는 수치로, 이를 면적으로 환산하면 서울 여의도 (290만㎡)의 1.5배인 433만㎡다.
특히 사업승인 후 6년 이상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장기 미착공 물량도 2만1000여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계획된 택지 개발 지구 내 공급도 제대로 못 하면서 정부가 3기 신도시 '사전청약' 등 '공급 숫자' 늘리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미 사업승인을 받은 공공분양·공공임대·국민임대·영구임대·행복주택 등의 공공주택 중 아직 착공하지 못한 물량이 전국에 10만5200가구라고 5일 밝혔다.
홍 의원실 관계자는 "수요부족, 지자체 협의, 민원, 기반시설 부족 등으로 미착공이 된 물량은 6만여 가구가 넘는다”며 "5년 이상 장기 미착공인 물량도 전체의 20%를 넘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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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로 보면 경기도가 5만3609가구로 전체의 51.0%를 차지한다. 인천 1만415가구, 서울 1999가구 등으로 전체의 62.8%가 주택 수요가 많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서울에선 60㎡ 이하 행복주택 998가구를 공급하기로 한 송파위례 택지지구 A1-14블록이 2015년 12월 사업승인을 받았지만, 지자체와 협의 과정에서의 이견으로 사업이 5년 이상 지체되고 있다.
경기 평택시 고덕신도시의 경우 13개 블록 7371가구가 미착공 물량으로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3627가구가 들어설 땅은 조성공사 등으로 6년 이상 비어 있는 상황이다. 서울 접근성이 좋은 고양장항, 광명하안, 성남복정, 과천주암지구 등에서도 조성공사, 보상 난항 등으로 인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충남 홍성군 홍성남장지구 1/A블럭의 경우 공공분양으로 542가구를 공급하기로 했으나, 인근 어린이집 학부모의 반대로 14년째 사업 재검토 중이다. 미착공 기간 10년이 넘은 물량도 전국에 3233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홍 의원은 "기존 택지개발 지연과 같은 이유로 3기 신도시에도 덩그러니 땅만 남겨진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3기 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이 같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18년과 2019년 3기 신도시 후보지로 지정된 6곳 가운데 토지 보상을 마무리한 곳은 아직 없다. 보상 지연으로 미착공된 공공주택 물량은 전국에 3만8000가구에 달한다.
필수 기반 시설 설치를 둘러싸고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3기 신도시 과천 과천지구의 경우 하수처리장 증설 위치를 놓고 과천시와 서울 서초구가 갈등 중이다. 부천 대장지구와 남양주 평내지구 등도 하수처리장 신설과 쓰레기 소각장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주민 반대에 봉착했다.
이런 문제는 신도시 입지 선정 단계에서부터 예고됐지만, 집값 급등에 놀란 정부가 이런 요인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공급 물량 확보에만 열을 올린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최근 3기 신도시 등 사전청약을 확대하면서 1~2년 내 본청약을 통한 조기 공급을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보금자리주택의 경우 착공 지연으로 사전청약 후 입주까지 10년이 걸린 사례도 있다.
홍 의원은 "수요 예측 실패, 기반 시설 부족, 민원, 지자체와 협의 등 공공택지 개발에 전제돼야 할 사항조차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3기 신도시 등 2·4공급 대책에도 차질이 생길 위험이 있고 나아가 정책 불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LH는 미착공 공공주택에 대해 보상 및 조성공사 등 선행 일정을 서둘러 순차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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