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등 주요국이 경쟁당국을 중심으로 온라인 플랫폼과 빅테크에 대한 규제 개선방안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거대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 반독점법안 패키지가 발의됐고, EU에선 디지털세법안이 공개됐다. 영국은 디지털시장 규제를 전담할 관련 부서를 경쟁당국에 신설했고 이를 독립관청으로 승격할 것인지 논의 중이다.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주요국이 빅테크에 대한 반독점 강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빅테크 맞춤형 규제 등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GAFA 겨누는 미국, 반독점법 패키지 발의
최근 미국에서는 의회를 중심으로 빅테크 온라인 플랫폼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에 대한 규제 강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미 하원의 반독점 소위원회는 2019년 7월부터 GAFA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기 시작해 지난해 10월 디지털 시장의 경쟁상황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하고 법률 제정안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올해 6월 미 하원은 거대 플랫폼을 대상으로 하는 반독점법안 패키지로서 △미국 선택과 혁신 온라인 법 △플랫폼 독점 종식 법 △서비스 전환 활성화를 통한 호환성과 경쟁 증진 법 △플랫폼 경쟁과 기회 법 △기업 합병 신청비용 현대화 법 등 5개 법률안을 발의했고, 모두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구글과 애플을 대상으로 한 '오픈 앱 시장법'도 지난 8월 발의됐다.
미국이 이처럼 빅테크 플랫폼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은 기존의 경쟁법 체제가 빅테크 플랫폼을 규율하기가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빅테크 플랫폼이 사회·경제 전 분야로 업무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기존 반독점 규율체제에서는 시장획정, 독점력 및 경쟁제한성 판단 등에 오랜 시간이 걸림에 따라 새로운 산업환경에 맞춰 반독점 규율체계를 개편할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것이다.
이번 법률안 패키지에서 '지정 플랫폼' 제도는 이러한 배경에서 도입됐다. 이 제도는 신속한 규제 적용을 위해 플랫폼 반독점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0년간 유지하도록 한 제도다.
지정 플랫폼에 대해서는 자사 상품을 다른 회사의 상품에 비해 우대하지 못하도록 차별금지 조항을 뒀고, 지정 플랫폼이 다른 사업부를 두고 지정 플랫폼에서 상품을 파는 것도 이해상충을 이유로 금지했다. 또한 지정 플랫폼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의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자와 입점 업체의 요구가 있을 때 제3자에게 이전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밖에 지정 플랫폼이 시장지배력을 유지 또는 강화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잠재적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기업의 주식, 자산 등을 인수가 불가능해진다.
◇EU, 디지털서비스법 패키지...규정 위반시 연매출 최대 6% 벌금
EU는 2010년대 초부터 빅테크 기업의 반경쟁 행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디지털세 도입 시도, 데이터 공유 의무화 등 플랫폼에 대한 규제 강화도 비교적 빠르게 진행돼 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European Commission)는 2010년부터 OS(운용시스템) 시장에서 구글의 반독점 행위 여부를 조사했고, 독점방지법 위반 혐의로 세 차례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2018년 3월에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유럽 내 매출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디지털세' 법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2월에는 빅테크의 데이터 공유 법제화 검토를 시작했으며, 같은해 10월 데이터 공유를 의무화하는 빅테크 반독점 규제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은 매출, 시장점유율, 이용자 수 등을 기준으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규제대상기업목록(hit-list)에 포함하고, 규제대상 기업은 자사의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자사 기기 또는 플랫폼에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할 뿐 아니라 자사 플랫폼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유럽 내 경쟁 기업에 공유할 의무를 부과했다.
EU 차원에서 빅테크 및 플랫폼 규제 입법 추진이 본격화한 것은 2015년 5월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을 발표하면서다. 이후 EC는 갱쟁법 외 새로운 규제수단의 필요성을 내비쳐 왔다.
2016년부터 시작한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 대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2020년 6월 EC는 디지털서비스법 패키지와 새로운 경쟁법 수단 도입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했다. 같은해 12월에는 디지털서비스법 패키지에 해당하는 디지털서비스법과 디지털시장법 초안을 공개했다.
디지털서비스법안은 거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기본권을 침해하고 선거, 공중보건 등에 영향을 주기 위한 의도적 시도 등 플랫폼을 악용하는 일이나 불법 콘텐츠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플랫폼이 규정을 위반하면 연간 매출액의 6%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반복적으로 위반할 경우 플랫폼의 영업을 일시적으로 금지할 수도 있다.
디지털시장법안은 대규모 온라인 플랫폼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불공정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게이트키퍼가 이행해야 하는 의무사항과 금지사항을 제시했다. 게이터키퍼로 지정된 플랫폼이 법률을 위반할 경우 회사가 벌어들인 전세계 연간 매출액의 최대 10%를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경쟁당국 내 디지털시장부 신설...독립관청 승격 논의
영국에서도 의회를 중심으로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시장조사를 진행했고, 이에 따른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규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영국의 시장감시기구인 경쟁시장청(CMA)에 디지털시장부서를 신설했다. 디지털 분야의 규제 영향 평가, 규제 사각지대 해소, 디지털 시장에서의 새로운 위험 포착, 디지털 시장의 소비자 반응 조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CMA는 확고한 시장 지배력을 보유한 기업을 '전략적 시장지위'를 가진 것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새로운 행동강령을 제시했다. 강령에 법적 구속력을 부과해 빅테크 기업에 규정을 준수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미이행 시 전세계 수익의 최대 10%까지 벌금 부과가 가능하다.
또 CMA는 사회관계망서비스(SMS·social meadia service)에 대해 강화된 합병 규칙을 적용, SMS 합병과 관련된 거래를 보다 면밀하게 조사할 수 있게 했다. 빅테크 플랫폼이 관여하는 업무가 다양하기 때문에 디지털시장부서를 범정부적인 독립관청으로 승격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빅테크의 행위감독 기구 신설 필요성은 미국에서도 논의되는 중이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의 빅테크는 다른 부문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아직 금융부문에서는 시스템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성장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빅테크 금융플랫폼이 높은 접근성을 이용해 금융서비스 편의성을 노피고 비금융거래 정보를 활용해 금융포용을 확대하고 있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빅테크 플랫폼이 금융부문으로 진입해 빠르게 성장함으로써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부당 과잉경쟁을 초래해 금융 안정성 저해가 우려되고, 빅테크가 비인가 금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금산분리 등과 관련한 규제 사각지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빅테크 맞춤형 접근방식을 적용하는 포괄적인 정택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당국은 빅테크 기업이 금융플랫폼으로 진입하는 경우 금융규제·감독의 틀 내로 효과적으로 편입할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빅테크 플랫폼의 금융업 영위는 다른 금융시장 참가자와 동일한 규제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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