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아니면 말고'식 금융당국 대출규제 실험, 이대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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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근미 기자
입력 2021-10-1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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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대길 기자]

연일 들려오는 금융기관들의 ‘대출절벽’ 소식에 시장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급증하는 가계부채의 선제적 관리 필요성을 언급하며 고강도 대출규제를 천명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를 번복하는가 하면, 또다른 가계대출 규제대책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규제 시행에 따른 대출 축소를 걱정해야 하는 차주들 입장에서 정책 관련 혼란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출 총량규제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이 워낙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 유독 잡음이 거셌다. 실제 이제 막 출범한 토스뱅크 역시 9일 만에 대출 한도가 소진되고 당국으로부터 추가 증액을 받지 못해 연말까지 대출 문을 닫은 상태다. 

여기에 대표적인 실수요자대출로 꼽히는 ‘전세대출’ 규제 필요성을 금융당국 수장이 거론한 점도 악화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올해 가계대출 증가분 중 절반 이상을 전세대출이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규제 강화에 대한 명분은 없지는 않았으나 그 속도와 방법이 문제였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정부의 대출 총량규제를 들어 전세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 창구를 걸어 잠갔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일선 차주에게 돌아갔다.

이처럼 대출이 축소·중단되면서 전세 갱신이나 이사를 준비하던 수요자들에게 악영향이 미치자 결국 정부가 사태 진화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전세대출과 잔금대출이 일선 지점에서 차질없이 공급되도록 관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가계부채 저승사자’로 불리던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4분기 전세대출에 대해서는 총량관리에 있어 유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수요자 대출도 상환능력 내에서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큰 폭으로 선회한 것이다.

당국의 입장 변화에 따라 일단은 대출에 숨통이 트이는 분위기지만 수요자들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번과 같은 대출정책 급변에 따른 불이익을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높아서다. 당장 전세대출 규제가 이번 가계부채 대책에서 어떻게 바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대출을) 받을 수 있을 때 받아놓자’라는 여론은 더욱 가중되는 모습이다. 이는 당국이 유도한 ‘실수요자 중심 대출 공급’ 기대와는 정반대되는 양상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대책 일환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조기시행’ 카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지난 7월부터 차주단위 DSR을 매년 순차적으로 확대 적용해 오는 2023년 전면 시행에 나서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현재는 1억원 이상 은행 신용대출, 규제지역 6억원 이상 주담대에 대해 차주별 DSR 40%를 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이를 적용하는 속도를 당초 예상보다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조급함에 따른 제도 조기시행 부작용이다. 대출규제의 조기시행은 물리적으로 가계대출을 축소하는 조치이니만큼 일정 수준의 대출 억제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예고되지 않은 만큼 갑작스레 대출길이 막힌 차주 입장에서는 다른 대안을 찾을 겨를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그에 따른 부작용이 정책 강화에 따른 대출 축소 효과보다 더 클 여지도 존재한다. 

세간에서는 이미 ‘선착순 대출’, ‘대출도 운’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금융권 대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차주의 신용도 또는 상환여력보다 이른바 '타이밍'에 따라 대출이 나올 수도,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은 이같은 내용을 뼈아프게 새기고 보다 체계적이고 일관된 대출규제 정책 구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정책 번복은 결국 정부와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에 치명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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