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심서 2021] 'K스페이스' 완성할, 차기 리더의 '한국몽'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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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입력 2021-10-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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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작가, 언론인]

나는 1969년 7월 21일 오전 10시 17분, 친구 집의 TV 앞에 앉아 있었다. TV는 당시 부잣집에나 있었다. 나는 미국의 아폴로 11호 우주선의 달 착륙 장면을 보기 위해, 아버지가 도선사여서 잘사는 정호네 집을 찾았다. 도선사는 항구에 도착한 큰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도록 뱃길 안내를 하는 사람이다. 그 집에서 나는 ‘고요의 바다’라고 불리는 달 표면에 달 착륙선이 내려 앉는 걸 보았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두 사람이 달에 첫걸음을 디뎠고, 암스트롱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날 이후 한동안 나는 ‘우주비행사’가 되는 걸 꿈꿨다.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장래 꿈은 우주비행사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 얘기를 하는 건, 지난 2021년 10월 21일 오후 5시 누리호 발사를 봤기 때문이다. 3단 로켓 발사체인 누리호의 엄청난 하울링은 이제 한국인에게도 우주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수십년 전 미국의 달 탐사 프로그램을 보고 우주비행사가 되는 걸 꿈꿨던 내 세대는 그 꿈이 현실화되는 걸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10대 어린이는 우주비행사 꿈을 키운다면, 그 꿈이 실현되는 걸 볼 수 있다.

꿈, 그렇다. 이게 얼마 만인가? 한국인이 꿈을 얘기하는 게. 2021년 한국인은 꿈을 잃었다. 한국인은 좌표를 잃었고 현재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바라보는 지점이 없다. 사람들의 시선은 죄다 흩어졌다. 뿔뿔이 흩어진 마음을 갖고 있기에, 이 시대는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한다.

국가 리더도, 다음 리더가 되겠다는 사람도 한국인에게 꿈을 말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한국을 꿈꿨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에 이어 리더가 되겠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 그리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 대통령예비후보인 윤석열, 홍준표씨가 어떤 꿈을 꾸자고 한국인에게 말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듣지 못했다.

꿈을 가진 시대가 위대한 시대이고, 꿈을 가진 세대가 위대한 세대다. 미국은 오랫동안 꿈을 다른 나라에 자랑했다. 자신들이 잘산다고 하지 않았고, 아메리칸 드림을 내세워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다. 서부개척시대니, 프런티어 정신이니 하는 건 그런 도전 정신을 반영했다. 미국의 달 프로젝트를 시작한 존 에프 케네디는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오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했고, 아폴로 11호선이 그 꿈을 이뤄내 케네디는 위대한 미국 대통령의 반열에 올랐다.
 

 

누리호 발사를 통해 우리는 과학기술이 공동체를 묶는 힘을 재확인했다.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꿈을 불어넣는 데, 우주과학만 한 게 없다. 그리고 그게 담대한 도전일수록, 큰 꿈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지의 세계, 신천지는 한국인에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그래 이제 우리는 K-스페이스(space, 우주)를 개척해야 한다. K-팝(BTS), K-영화(기생충), K-콘텐츠(‘오징어게임’)에 그치지 않고, 우주에서 한국 브랜드인 K-스페이스를 일궈내야 한다.

누리호는 거의 성공했다. 앞으로 한국의 우주 도전은 어떻게 되나? 누리호가 내년 5월에 다시 발사되고, 최종적으로 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하면 임무는 끝난다. 그 다음은 ‘달로 가자‘라고 한다. 달 탐사, 물론 중요하다. 가야 한다. 하지만 새롭지 않다. 진부하다. 남들이 이미 다 한 것이다. 달에 가는 건 별다른 도전 의지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과거에 한 리더가 이미 우려먹은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20년까지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하겠다고 대통령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그가 달 탐사 프로젝트를 얘기한 건 좋았으나, 의지는 실리지 않았다.

일본의 하야부사 프로젝트는 독창적인 우주 프로젝트가 무엇인지를 한국인에게 생각하게 한다. 하야부사는 일본의 소행성 탐사 프로젝트이다. 일본은 하야부사를 통해 우주선진국 미국과 러시아가 가지 않은 길을 추구했다. 소행성에 착륙해 지표면 샘플을 채취하고 지구로 돌아온 건 하야부사가 처음이었다. 하야부사는 일본 말로 ‘매’를 가리킨다. 일본 매가 태양계를 돌며 크기 535m × 294m × 209m인 소행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했을 때 세계는 놀랐다. 가로 세로 높이 수백 미터의 천체란 작기 짝이 없는 존재다. 그 작은 천체에 일본이 정확히 우주선을 착륙시켰다니, 그건 일본 우주항공 기술의 수준을 뽐내는 멋진 장면이었다. 하야부사는 2005년 11월 소행성에 착륙했고, 지표면 샘플을 갖고 지난 2010년 6월에 지구에 돌아왔다. 하야부사는 또 기술면에서 독특했다. 제논 이온 분사 엔진을 장시간 가동할 수 있음을 보였다. 원자번호 54번인 제논을 동력원으로 해서 우주를 날았다.

하야부사의 성공에 힘입어 일본항공우주당국은 하야부사 2호를 2014년 쏘아올렸고, 이 우주선 역시 또 다른 소행성(류구. 용궁龍宮이라는 뜻)에 2018년 6월 착륙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6일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다.

하야부사 프로젝트는 예산액이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도전적이었다. 일본 정부가 2010년 8월 하야부사 2호 비용으로 승인한 건 164억엔(약 1640억 원)이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의 천문학자인 이시구로 마사테루 교수는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에서 일한 바 있다. 그는 한국의 우주탐사에 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하야부사 1호를 띄울 당시 JAXA 선배들은 다른 나라의 우주 탐사를 흉내 내서는 안 된다. 독창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패하더라도 항상 새롭고 독창적인 걸 목표로 전진해야 한다.”(헬로디디 2021년 10월 20일자 기사)

중동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우주 프로젝트는 너무나 담대해서 뭐라 한국이 흉내 내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아랍에미리트의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 총리가 7년 전인 2014년, 건국 5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우주 개발 기술도 관련 연구소도 행성과학자도 아랍에미리트에는 없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후 한국에 와서 위성 기술을 배워갔고 2018년에 독자 설계한 위성을 발사했다. 지난 7월에는 약속대로 화성에 성공적으로 탐사선을 보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제 화성을 넘어 심우주(deep space)로 나가겠다고 한다.

우주는 미개척지여서 미래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개발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국민적 에너지를 끌어내는 좋은 수단이라는 점이다. 아랍에미리트 우주항공 사이트는 그걸 보여준다. 화성 탐사 미션의 이름은 ‘희망 탐사’(Hope probe)다. 희망을 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를 개발하는 사람들을 ‘희망 대사’(hope ambassader)라고 그들은 부른다.

한국이 누리호 개발에 쓴 비용이 2조원이라고 한다. 엔진 설계부터 제작, 시험, 발사 운용까지 해서 들어간 돈이 그렇게 된다. 실제로 돈은 어디로 갔을까? 누리호 개발을 책임진 항공우주연구원 직원들에게 추가로 간 돈은 없다. 항우연의 공학자와 과학자는 그냥 급여를 받고 그 일을 했을 뿐이다. 누리호 개발을 하느라 수고했노라고, 정부에서 인센티브를 추가로 줬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들은 누리호 개발을 하든지 안 하든지, 정해진 대로 급여는 받는다. 그러면 2조원은 누구에게 지출되었다는 것일까? 대부분 기업으로 갔다.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기업들의 R&D와 제품 제작을 위해 쓰였다.

항공우주연구원이 배포한 자료를 보면 개발에 참여한 한국 기업은 300곳이다. 덕산넵코어스(위성항법), 단암시스템즈(전자탑재), 기가알에프(〃), 스페이스솔루션(추력기 시스템), 두원중공업(2,3단 추진체 탱크), 이앤이(제어계측계), 하이록 코리아(이상 기체공급계), 네오스펙(〃), 스페이스솔루션(〃), 한양이엔지(열제어화재안전계), 지브이엔지니어링(〃), 에너베스트(〃), 단암시스템즈(전자탑재) 등등 이름을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나로서는 이름이 낯선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의 기술력 향상에 쓰인 돈들이다. 국가가 나서 돈을 쓰지 않으면, 이들 기업이 어떻게 우주과학기술 개발에 나설 수 있겠는가? 서울시립대 물리학자 박인규 교수는 “사이언스에 투자된 돈은 과학자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국내 기업으로 들어가며 이들의 기술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라고 내게 몇 번이나 얘기한 바 있다. 그걸 나는 이번 누리호 사업에서도 확인한다.

한국은 이제 돈이 없나, 기술이 없나, 부족한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없는 건 ‘꿈’이다. 한국몽이 없다. 한국은 창의적인 우주 프로젝트 K-스페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달에 가고 화성에 가는 건 기본이다. 남들이 하는 건 비슷하게 하되, 그거 말고 남들이 하지 않았던 걸 찾아내 도전해야 한다. 리더는 그 일을 만드는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꿈을 꾸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멋진 꿈을 제시할 리더가 다음 대통령이 되는 걸 보고 싶다.

최준석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뉴델리 특파원 ▷카이로특파원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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